미뇽

                          괴테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

그늘진 잎 속에서 금빛 오렌지 빛나고

푸른 하늘에선 부드러운 바람 불어 오고

도금양은 고요히, 월계수는 높이 서 있는 나라?

그곳으로!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내 사랑이여.

 

당신은 아시나요. 그 집을? 둥근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고, 홀은 휘황찬란, 방은 빛나고,

대리석 입상들이 날 바라보며,

“가엾은 아이야, 무슨 일을 당했니?” 물어주는 곳,

그곳으로!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나의 보호자.

 

당신은 아시나요, 그 산, 그 구름다리를?

노새가 안개 속에서 갈 길을 찾고

동굴 속에는 오래된 용이 살고 있으며

무너져 내리는 바위 위로는 다시

폭포수 내려 쏟아지는 곳,

그곳으로! 그곳으로!

우리의 길이 뻗어 있어요. 오 아버지, 우리 그리로 가요.

 

괴테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 나오는 시. 12세 소녀 미뇽이 주인공 빌헬름을 사모하며 부르는 노래다. 미뇽은 어린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유괴돼 곡마단에 끌려 다녔다. 여행 중이던 빌헬름이 매 맞는 그녀를 구해주자 고마움과 정을 느끼게 됐다.

이 시는 미뇽의 마음을 통해 아름다운 남국과 그곳을 향한 사랑의 갈망을 함께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뇽의 연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괴테의 관점에서 보자면 ‘따뜻한 남쪽 나라’ 이탈리아를 동경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연에 나오는 도금양(桃金孃)은 지중해 연안에 많이 자라는 늘푸른 떨기나무로 평화와 감사, 사랑을 상징한다. ‘레몬꽃 피는 나라’ ‘금빛 오렌지’도 이탈리아를 가리킨다. 1연의 자연, 2연의 예술, 3연의 풍경 역시 이탈리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괴테는 두 번에 걸쳐 이탈리아 여행(1786~1788)을 다녀온 뒤 1815년 시집을 내면서 이 시의 제목을 ‘미뇽’이라고 붙였다. 이 시는 프랑스 작곡가 앙브루아즈 토마가 1866년 발표한 오페라 ‘미뇽(Mignon)’의 아리아로도 유명하다. 플루트의 아련한 전주에 이어 펼쳐지는 미뇽 역의 메조소프라노 선율이 가슴을 파고든다. 슈베르트도 ‘미뇽의 노래’를 작곡했다. 베토벤과 리스트, 프랑스의 앙리 뒤파르크까지 노래로 만들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시 가운데 더 많이 작곡된 것은 미뇽이 부른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Nur wer die Sehnsucht kennt)’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가 무엇을 괴로워하는지 아네./ 모든 기쁨에서/ 홀로 동떨어져/ 저 창공을 바라보네.// 아, 나를 사랑하고 아는 이/ 먼 곳에 있구나!/ 어지럽고, 속은 타들어가는 듯./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가 무엇을 괴로워하는지 아네.’

베토벤과 슈만, 볼프, 차이콥스키 등 수많은 작곡가가 이 시에 곡을 붙였다. 슈베르트는 네 곡이나 작곡했는데 맨 나중의 ‘D. 877-4’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미뇽의 노래 ‘말하라 하지 말고’도 감동적이다.

 

말하라고 하지 말고 침묵하게 내버려 두세요.
비밀을 지키는 건 나의 의무니까요.

당신에게 내 마음 다 보여드리고 싶지만

운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네요.

 

때가 되어 아침 해가 떠오르면

어두운 밤은 쫓겨나며 제 정체를 밝히지요.

단단한 바위도 제 가슴 풀어헤쳐

깊이 감춰둔 샘물 대지에 선사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임의 품 안에서 안식을 찾고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어도

이 내 입술만은 맹세코 굳게 닫혀

신이 아니면 열 수 없어요.

이 노래는 소설 5부 끝 부분에 나온다. 미뇽이 여러 차례 불렀지만 주인공 빌헬름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미처 소개하지 못했다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소개한다고 쓰고 있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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