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인가 사치품인가?

입력 2011-11-20 16:39 수정 2011-11-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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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명품이란 용어가 종종 나옵니다. 그런데 막상 명품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면 진짜 명품(masterpiece)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고가의 수입상품, 즉 사치품(luxury)에 대한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현상은 굳이 언론 보도에 국한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검색으로 “명품”을 찾아보면 진짜 명품이 아니라 사치품에 대한 내용이 주로

나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언론계 내부에서, 국내패션산업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칭하는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Luxury를 굳이 명품으로 번안하는 관행은 한국사회 언어습관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대체로 한국사회는 영어단어를 번안하기 보다 그대로 사용합니다. Fashion이란 단어도 적절한 한국어로 번안하기 보다 발음을 그대로 적어

‘패션’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문화면의 ‘뷰티/패션’로 분류된 기사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한 ‘커플 룩 이것만 기억하면,당신은 패셔니스타’란 제목의 기사입니다.



“유명 패션지의 패션 에디터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옷을

잘 입고 싶거든, 타인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지적하라.' 그녀가

말한 뜻은 그 사람에게 가서 베스트라고, 워스트라고 단정짓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 타인의 팬션을 혼자

생각해보라는 뜻. 물론 그도 언제나 베스트는 아니다. 누구든

늘 베스트 스타일을 연출할 순 없다.”



제목부터, 커플 룩, 패셔니스타라는

영어 단어로 시작해서, 본문에는 스타일, 베스트, 워스트, 팬션, 에디터, 스타일 등 온통 영어 단어로 돼 있습니다. 한국에서 영어단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luxury에 대해서만 ‘럭숴리’라고 하지 않고 ‘명품’이라고 번안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사전에는 luxury는 사치품이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는데 말입니다.



Luxury를 명품으로 번안해 쓰기 시작한 것은 1990년이라고 합니다. 강남의 한 백화점이 패션전문점을 ‘명품관’이라고 내건게 계기라고 하는군요. 맞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Luxury를 ‘명품’으로 번안해 사용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은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은 한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고, 사용하는 말의 틀짓기(framing)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틀짓기란

같은 내용이라도 묘사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전달되는 현상입니다. “6백명 중 2백명을 살릴 수 있다”는 말과

“6백명 중 4백명이 죽는다”는 말의 내용은

같지만, 전달되는 느낌은 정반대입니다.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면서

그 과정에서 틀짓기를 통해 언론은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Luxury를 ‘명품’이라고 번안한 것 역시 명백한 틀짓기입니다. 한국 언론은 고가의 수입상품에

대해 왜 하필 ‘명품’이라고 틀을 지어주는 것일까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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