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자와 전대장은 숙소에서 이치카와 중대장과 아와모리를 마시면서 만주에서 중국군 및 러시아군과 60번 전투를 했는데 자기의 부하는 3명밖에 죽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을 보라. 정확하진 않지만 30분 만에 정규 일본군 60명이 죽고, 적어도 10명 이상의 방위대원이 희생됐다. 다시 말해 30분 만에 70명 이상이 사살된 것이다. 60번 이상 전투를 치른 부대장이 이렇게 달빛이 환한 야간에 기습을 하겠다는 판단이 애초의 잘못인데다 부대장은 전투현장에 가지도 않았으니...

미군이 진지를 구축한 다카쓰키산은 원추형 산봉우리여서 사방 또는 팔방에서 공격이 가능한데도 일본군은 단지 북쪽 한 방향에서만 공격했고, 그것도 횡대로가 아니라 종대로 진입했다. 포복자세도 아니고 모두가 허리만 약간 구부려 전진했으니까 미군의 눈에 일본군의 움직임이 환히 보였을 수밖에.

더 심한 건 오후 5시부터 출전을 준비했다는데 척후병을 전혀 내보내지도 않았을 뿐더러 미군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다카쓰키산 정상 근방에 있을 거란 개연성만 믿고 70명이 무조건 돌격했는데 미군은 반도쿠루산 쪽으로 전진해서 잠복,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미군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이미 미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애초부터 의무병은 동원되지도 않았다. 정규군의 뒤를 따르던 여자방위대를 임시 의무반으로 결성해 부상자를 단 한명이라고 구해야 할 판인데도 부상자들은 모두 권총과 수류탄으로 자결해버렸다.

이건 ‘전투’를 핑계로 한 ‘집단자살’에 불과하다. 이수는 이런 ‘옥쇄’를 미화하는 허구에 사로잡힌 황군들로부터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일본군 가운데 유일하게 친했던 이치카와 중대장마저 의혹적으로 전사했으니 이제 더 이상 일본군에 남아 있을 까닭이 완전히 없어졌다.

일본군과의 결별을 결정했는데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우메자와 전대장의 우왕좌왕이다. 그는 히로시마 앞바다에 있는 도요섬에서 특공대원들을 지독하게 훈련시켰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지난 24일 밤과 25일 밤에 특공정을 발진시키지 않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300명의 조선인 군부들을 강제로 끌고 와 손발 부르트게 바위굴을 뚫어 숨겨놓은 특공정 ‘마루레’를 초저녁엔 공격을 하겠다며 끌어내라고 하다가, 밤중에 다시 은닉하라고 하는 통에 배를 다 숨기지 못해 결국 미군 함재기가 이 특공정을 박살내버리지 않았는가.

특공대원들은 폭탄을 투척하는 훈련만 했지 소총을 쏘는 훈련은 제대로 받은 적도 없는데 이런 16~19세의 어린 청년 특공대원들 83명을 이 산기슭으로 몰고 와 헌신짝 버리듯 육박전을 치르라고 하다니...이 얼마나 얼빠진 짓인가.

순간, 도쿄대학을 다닐 때 학생들 사이에 돌려가며 읽던 시가 떠올랐다. 그건 도쿄 국학원대학 문학부를 다니다가 중국전선에 끌려간 학도병 마츠나카 시게오가 쓴 시였다.

전우의 편지 속에는 허구가 있다.

많은 ‘아름다운 허구’가 있다.

모든 것은 허구에서 태어나

이렇게 허구 속에서 죽어간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가미카제특공대를 자원, 미군의 전함에 충돌해 사쿠라 꽃잎처럼 바람에 흩날리겠다고 했던가. 이수는 지금이라도 학생들이 사쿠라 꽃잎처럼 흩날리는 ‘아름다운 허구’보다는 ‘진흙속의 진실’을 선택해주길 빌었다.

이수는 우타를 찾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치시해안을 돌아서 새벽 3시쯤 아카사치 임시 전대본부에 뒤편으로 내려갔다. 진지 앞쪽으로 올라가면 초병이 미군인줄 알고 발사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보초에게 발각되면 우타를 만나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뒤쪽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진지에 도착해보니 아직 별도의 막사를 설치하지 않고 은폐물만 보여서 어디에 우타가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이수는 양손을 어깨 위로 올린 채 소리 나지 않게 움직이며 병사들의 동태를 살폈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여자의 속삭임 소리가 들렸다.

“조장님, 저 토미요에요...거기 움직이지 말고 계세요...”

속삭이는 사람은 우타의 안채에서 만났던 위안소 관리자인 토미요였는데, 항상 기모노차림이던 그녀가 지금 보니 놀랍게도 일본군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토미요는 이수 옆으로 살금살금 기어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조장님, 우타는 저기 왼쪽 소나무 아래에 선잠을 자고 있어요...오늘 부상병 치료하느라 지금 심하게 지쳐 쓰러졌어요...근데, 조장님, 혹시 우타와 함께 미군에 투항하실 거예요?...만약 투항하시면 ‘우리 아이들’ 7명을 아사마을 뒤 라쿠스이호에 피신시켜놨는데...제발 좀 구출해주세요!”

아니, 지금 그녀가 하는 귓속말은 일본말이 아니고 한국말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위안부)’을 피신시켜놨다는 그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또 투항한다고 얘기하면 금방 전대장과 나카타 정보하사의 귀에 전달될 것 같은 예감이 치솟았다.

“조장님, 우메자와 전대장님의 발목 부상이 심해 치료해주고 나서...저도 뒤 따라 갈게요...자, 우타에게 빨리 가보세요!”

이수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우타가 있다는 쪽으로 기어갔다. 토미요가 얘기한 대로 우타는 작은 류큐마츠에 머리를 기댄 채 선잠을 자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보초병도 졸았다.

이수는 보초에게 들키지 않게 우타의 어깨를 살짝 흔들어 깨운 뒤, 수통을 챙겨주며 빨리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달빛 때문에 몸을 숨기기 어려웠지만 이수는 지금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지금 두 사람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나카타 하사’이기 때문.

이치카와 중대장을 쏴 죽인 그가 이수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게 뻔한데, 더욱이 우타와 함께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되면 끝까지 수색하고 추적할 것이다.

임시 본부에서 약 200미터쯤 내려왔을 때 이수는 우타에게 다카쓰키 전투에서 이치카와 중대장이 전사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나카타의 짓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우타의 얼굴은 놀라움과 괴로움으로 일그러지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이수씨, 오늘도 저 아래 곳곳에서 나카타 패거리들이 투항하는 마을주민들에게 총질을 해댔데요. 이 등성이 길로 내려가면 너무 위험해요!”

“맞아, 그러니까, 우리는 등성이길이나 해안 길로 가지 말고 힘들더라도 산기슭 수풀을 헤치며 내려가야 겠어...중간 쯤 내가 두 달 전 해안 벼랑에 자연호를 하나 발견했는데 거기서 미군이 이쪽 진지로 진격해 올라올 때까지 하루 더 머물렀다가 내려갔으면 해...”

이수는 두 달 전 특공정 은닉호를 떠받칠 목재를 찾으러 왔다가 은나사치 벼랑에 바다 쪽으로 뚫린 입구가 좁은 작은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이 동굴은 난간으로 타고 내려가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식물채집에 위험을 무릅쓰던 이수의 눈에만 뜨인 곳이다.

두 사람은 이 곳에 들어가 수통의 물과 우타 주머니에 있던 고구마 하나와 이수가 가지고 있던 코카인만으로 하루를 버티기로 했다.

[이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이수와 우타가 숨어있던 벼랑동굴이 있다]

아침이 오자 굴 바깥에서 나카타 하사와 상병 2명이 끈질기게 수색하며 주고받는 휘파람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엔 미군들의 자동소총 소리가 여러 차례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왔다.

저녁 해가 지자 이수와 우타는 산 비탈길의 솔가지와 억새풀을 헤치며 자마미 마을로 내려갔다. 얼굴, 손등, 팔 곳곳에 생채기가 나 피로 물들었지만, 혹시 ‘나카타 하사’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계속 풀숲 사이를 헤치고 걸었다.

막상 자마미 마을에 도착해보니, 여긴 사흘 전의 자마미가 아니었다. 대낮처럼 환하게 불빛을 밝힌 미군 막사들이 두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26일 오전 9시에 상륙했던 305연대 제1대대는 철수하고, 아기나시쿠섬에 상륙했던 305연대 제2대대가 자마미 마을에 주둔하면서 이렇게 시설물을 대규모로 설치한 거였다.

주둔한 305연대 제2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제 242공병대대 B중대가 각종 중장비를 가지고 상륙해 이틀 만에 자마미 마을 전체를 평지로 만들어 막사를 건설하고, 중장비로 도로와 수로를 건설해 자마미 서쪽 언덕까지 차량이 다닐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항구쪽을 바라보니 앞바다에 떠있는 LST, LSM, LCT 등 대형 운반선과 마을선착장을 연결하는 부교가 놓여졌고, 그 위를 트럭이 부지런히 통행하는 게 아닌가. 트럭엔 화염방사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일본군의 ‘아름다운 허구’는 곧 저 화염방사기에 불타 ‘허구 안에서’ 재만 남기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수는 포로수용소 사이의 허술한 수로에 푹 빠졌다. 이수의 손을 잡고 끌어내려던 우타도 발을 헛디뎌 두 사람 다 무릎 절반까지 오는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이수는 “그래, 이 진흙탕 속에 진실이 있을지도 몰라”라고 중얼거리며, 우타와 함께 자마미 포로수용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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