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개론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내용 중 '국민경제의 3요소'가 있다. 국민경제의 3요소는 경제 시스템을 구성하는 가계, 기업, 정부를 의미한다. 이들의 특징은 순환(Circulate)한다는 것이다. 가계는 기업에게 노동, 자본, 토지를 제공하고 임금, 이자, 지대를 받는다. 그 돈으로 가계는 기업으로부터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고 대금을 지불한다. 가계와 기업은 정부에게 세금을 내고 정부는 세금을 이용해 공공서비스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이렇게 3요소 안에서 재화/서비스와 돈은 순환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가 탄생하면서 토크노믹스(Tokenomics)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암호화폐를 가리키는 토큰(Token)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의 합성어다. 암호화폐가 단순한 지불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환과 거래가 일어나는 경제생태계의 근간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암호화폐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토크노믹스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암호화폐는 상장 후 거래소에 매각해 시세차익을 얻는 단순 투기의 용도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토크노믹스의 성패는 재화/서비스와 토큰을 순환시킬 수 있냐는 데 달려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진행중인 블록체인 프로젝트은 토크노믹스에 대한 이해없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받은 토큰을 사용할 곳이 없다. 누군가에게 판매, 공여된 토큰은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화폐의 본원적 기능 중 한가지인 교환매개로서의 기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발행된 토큰을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스팀잇의 경우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스팀잇의 토큰은 거래소 판매를 제외하고는 커뮤니티 내 영향력(스팀파워)을 강화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영향력을 증가시키려는 목적 또한 커뮤니티에 더 많이 기여하고 싶다는 심리적 동기의 발현 보다는 영향력을 증가시켜 향후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함이 크다. 신규회원들이 유입되면 될 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화될 것이다. 좋은 컨텐츠를 창작하고 보상으로 받은 토큰을 소비할 곳을 만들지 않는다면 스팀잇의 토크노믹스는 영속성을 가지기 힘들다.

두번째 형태는 생태계 내 토큰을 받을 주체만 있고 공급해줄 참여자가 없는 경우이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데이터 제공, 콘텐츠 창작, 컴퓨팅 파워 제공 등 다양한 행위에 대해 토큰으로 보상할 것을 약속한다. 발행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보상만 늘어나면 나중에는 생태계에 토큰이 부족해진다. 정부가 세금으로 다양한 재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세금은 더 이상 걷히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추가발행을 하면 되지만 이는 임시 방편으로 그 정도가 과해지면 토큰 가치 급락을 불러올 수 있다.

스팀잇의 경우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토큰을 추가 발행하고 있다. 현재의 회원 수 증가 추세 수준에서는 추가 발행만으로 적정한 화폐가치를 유지할 수 있지만 향후 규모가 더 커진다면 다른 참여자가 토큰을 구매하여 플랫폼에 지불하는 모델을 반드시 추가해야 할 것이다. 광고주가 토큰을 구매하여 커뮤니티 내 광고를 하거나 콘텐츠 제작자가 자신의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해 토큰을 사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마지막 유형은 암호화폐 가치의 변동성과 관련이 깊다. 토큰이 실질적으로 사용되려면 실제 재화, 서비스 이용에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치는 거래소에서 큰 등락폭을 보이며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10토큰으로 맥주 한 캔을 살 수 있는데 내일은 같은 맥주에 100토큰, 혹은 1토큰을 줘야 한다면 정상적인 소비활동을 할 수 없다. 나아가 생태계 내 토큰이 지나치게 많이 유출되거나 유입됨으로써 화폐의 정상적인 순환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직 암호화폐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다보니 일시적인 시장의 수급 상황에 따라 거래가격이 쉽게 변동하는 탓이다. 테더, 트루USD와 같이 달러 등 현물에 가치를 연동시킨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 등장하여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해소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구현하기엔 기술적, 경험적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좋은 토크노믹스는 토큰, 그리고 토큰과 연계되는 제품/서비스의 공급과 수요가 안정적으로 순환하는 경제 생태계이다. 생태계에서 순환이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으면 토큰의 가치는 파괴된다. 허술한 토크노믹스를 기반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ICO를 하는 것은 투자자에 대한 기망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까지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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