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와 선

입력 2011-10-02 11:00 수정 2011-10-0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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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특별한 능력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공감입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가만 들여다

보면, 근대경제학의 근본원리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현상입니다. 개인은

이기적이고, 각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 슬픈 영화를 통해 고통을 경험할 것을 뻔히 알면서 개인의 비용을 들여 슬픈 영화를 본다는 것은 모순이지요.



슬픈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즐기는 현상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있습니다. 카타리시스가

대표적인 설명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카타르시스는

당초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카타르시스와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와 슬픈 경험의 정화라는

의미로 썼지만, 요즘에는 감정의 “배출” 혹은 “배설”이란 의미로

씁니다. 이는 프로이드가 쓴 개념으로 “정화”와는 그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배출로서의 카타르시스는 슬픈 영화를 선택해 즐기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될수 없습니다. 슬퍼하거나 운 다음, 사람들의

감정이 “배출” 혹은 “배설”돼 후련해지기는 커녕, 감정이 더욱 더 격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험실에서 여러차례 입증된 사실이지만,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수 있습니다. 슬퍼 울다가 감정이 격해져, 더욱 더 서럽게

울게 되지요.



가장 최근의 설명은 친사회적 행동에 대한 내적보상입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고 함께 슬퍼하는 일은 친 사회적 행동이고, 친 사회적 행동은 그 자체로 보상적이기에, 슬픈 영화를 보고 슬퍼하는게 영화를 보고 나서 즐겼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슬픔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을 갖고 함께 슬퍼하기 위해서는 슬픈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부정 정서, 즉 슬픔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비극적 주인공의 슬픈 이야기에 감정이입하면서,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 마치 실제 일어난

일처럼 경험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감정이 “내”가 실제로 겪는게 아니라고 분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무의식적인 작용입니다.)
실제로 감정조절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슬픈 영화를 보면서 슬퍼하기 보다는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서가 불안한 사람들은 영화 속의 비극적 주인공을

보고, 그 슬픔에 공감하기 보다, 비극을 초래한 환경에 주목하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근심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슬픈 영화를 즐길 수 없지요. 따라서 감정조절 능력은 슬픈 영화를 보고 즐기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슬픈영화뿐 아니라,

감정 조절은 일상에서도 공감하는데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심리학 학술지 “성격과 개인차이(Personalit and Individual

Differences)” 51권 7호에 실렸습니다.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191886911003370)



스위스 베른 대학교 데이빗 바이벨 연구팀은 감정

조절능력의 한 지표인 신경증(정서적 안정성의 반대. 신경증의 정도가 높으면 감정조절능력이 떨어짐)을 측정한 다음, 슬픈 영화(챔프)와 웃긴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여주었습니다. 신경증 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영화에 몰입하는 정도가 컸지만, 슬픈 영화의 즐김 정도는 떨어졌고, 웃긴 영화만 즐김 정도가 높았습니다. 반대로 정서적으로 안정될수록 슬픈 영화를 더 즐겼다고

답했고요.
슬픈 영화를 보면서 "저런 비극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에 빠지니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되지만, 그런 불안감은 영화를 즐길수 없데 만든다는 설명과 일치하는 결과라 할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도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몰입과 즐김의 관계입니다. 이전까지 "몰입=즐김"이라고 보았는데, 반드시 몰입이 즐김으로 이어지는게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 타인의 아픔을 내 문제가 아닌, 그 사람의 문제로허 함께 느끼는 공감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슬픈 영화의 즐김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지요. 슬픈 영화가 영화의 한 주요 장르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간성의 선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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