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을 노래하다(詠金山)

                                              왕양명


한 점 주먹만 한 저 금산 집어 던져

물속에 잠긴 하늘 두들겨 부숴볼까.

묘고대 달빛에 취해 기대섰노라니

어디선가 옥피리 소리 잠든 용 깨워 일으킬 듯.

金山一點大如拳, 打破維揚水底天.

醉倚妙高臺上月, 玉簫吹徹洞龍眠.

명나라 시인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이 열 살 때 쓴 시다. 양명은 그의 호, 본명은 수인(守仁)이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말이 트이지 않아 부모가 애를 태우다가 이름을 수인으로 바꾸자 말문이 터졌다고 한다.

그가 열 살 때 아버지가 과거에 수석 합격했는데, 과거 길에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금산사(金山寺)를 들렀다. 금산사는 장쑤성(江蘇省)에 있는 고찰. 양쯔강 가운데 우뚝 서 있어 예로부터 택심사(澤心寺), 용유사(龍游寺)로도 불리다가 청나라 때 강천사(江天寺)로 이름이 바뀐 절이다.

시에 나오는 묘고대는 금산사 뒤쪽에 돌로 쌓은 누대다. 송나라 때 불인(佛印) 선사가 절벽을 깎아 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양쯔강 경치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소동파의 ‘유금산사(游金山寺)’와 ‘금산 묘고대(金山妙高臺)’라는 시도 여기서 나왔다.

이곳에서 지인들과 모여 흥겹게 시를 주고받던 아버지가 “너도 한 수 지어 보겠느냐”고 하자 양명이 즉석에서 이 시를 읊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 아버지를 따라 폐월산방(弊月山房)에 가서 또 한 번 시를 지었는데, 그 유명한 시 ‘산에서 보는 달(蔽月山房詩)’이 그때 나왔다.

 
산에서 보는 달(蔽月山房詩)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

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更闊

열한 살에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놀랍다. 세상을 큰 눈으로 보려는 시각이 어릴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시 원문 제목에 나오는 폐월산방은 금산(金山) 위에 있던 승방인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절묘하게 표현한 시다. 단순한 원근법을 넘어 우주의 근본 이치를 꿰뚫는 혜안이 놀랍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얘기한 게 1543년이고, 갈릴레이가 이를 확인한 것이 1632년인데, 10대 소년이 1473년에 이런 시를 썼으니 천재가 아닐 수 없다.

달은 하늘 높이 떠 있을 때보다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 더 커 보인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달 착시’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육체적인 ‘뇌의 인식작용’은 종종 착시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성작용’은 우리들 영혼의 촉수를 움직이게 만든다. 세상의 높낮이와 내면의 크기를 스스로 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양명이 워낙 총명해서 아버지가 개인 교사를 붙여줬는데, 천하에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생이 과거에 급제하는 일이라고 말하자 양명은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하여 성현이 되는 것이 천하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4세 때에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우고 병서를 읽으며 꿈을 키운 크는 15세에 집을 떠나 용관, 산해관 등 변방 지역을 유람하며 영웅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21세에 향시에 합격한 뒤로 본격적인 유학 연구에 매진했으나,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과거 시험에 25세까지 두 번이나 떨어졌다. 그때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자 “세상은 낙방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나는 낙방한 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네!”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윽고 28세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고, 이후 학문과 시문 모두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소년기에 ‘물속에 잠긴 하늘’을 노래하고 ‘잠든 용 깨워 일으킬’ 기개를 자랑하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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