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 대표(홍석환의 HR전략 컨설팅)

자발적 참여를 통한 즐거움
수백대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고, 호숫가 주변에 펼쳐진 야시장을 돌아 보았다. 전 세계인이 모였고, 좁은 거리에는 음식, 옷, 장남감, 민속공예품, 신발, 온갖 물건들을 사고 파는 인파로 나아가기조차 힘들었다. 큰 거리에는 자발적으로 춤추는 사람들, 노래하고 공연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가 시켜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즐긴다. 마치 팔팔 뛰는 생선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표정이었다.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아무 생각과 감정이 없는 표정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자발적 참여를 통한 즐거움이 이곳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게 했다.
회사 생활에서 자발적 참여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주말이 끝나고 직장인들은 월요일 아침이 그렇게 힘들다고 한다. 또 다시 반복되는 생활의 단조로움, 상사와 직무와 연계된 사람들과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 최선을 다해 작성한 보고서와 일들이 번번이 수정되고, 밥 한 끼 먹는 것도 누구와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된다고 한다. 내가 없다고 한다. 수 많은 갈등 상황에서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집단 속의 하나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개성이 아닌 팀워크가 강조되며, 튀지 말라는 말이 뇌리에 박혀 새로운 제안을 하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는다. 표출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고 묶여 있다는 생각으로 하는 일에 재미가 없다. 이렇게 해서는 성과가 나올 수가 없다. 회사와 자신이 하는 직무를 100% 자신이 이끌어 갈 수는 없어도, 주도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계획 하에서 실천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 달성해 나가야 한다. 자발적 참여가 이 곳 저 곳에서 일어나 전체가 즐거워야 한다. 무엇이 자발적 참여를 이끌며, 이러한 참여가 성과를 창출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문화인가?
수업시간에 학생이 소변이 마렵다고 선생님에게 호소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무엇을 했냐며 거절했고, 학생이 다시 정말 급하다고 이야기 하니 성적을 낮게 받으려면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수단과 목적이 바뀌었다. 선생님은 학생의 잠재된 가능성을 키워주고 사회 준비생으로서 건전한 시민이 되도록 인성과 지식 그리고 체력을 돌봐줘야 한다. 성적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서 바라봐야 하는데 어느 순간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인격적 완성이 아닌 성적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판단해 버린다.

직장이 사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직장생활에서 지향하는 바가 임직원의 성장과 일에 대한 자부심을 통한 행복이 아닌, 회사는 이익이고 개인은 돈이라면 어떤 문화, 어떤 행동이 우선시될까? 이익만 추구하면 되기 때문에 사회와 후손을 고려하지 않고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반대로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질책받게 된다. 단기적 실적에 매여 길고 멀리보는 경영을 할 수 없게 된다. 지역과 가난한 이를 위한 봉사활동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개인이 추구하는 것도 돈이기 때문에 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직무에 대한 로열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돈 1원이라고 더 주는 곳이 있다면 떠난다. 상사와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당장 돈이 되지 않으면 배우려 하지 않는다. 수단인 돈이 목적이 되어버린 사회와 조직에서는 돈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중요하고 경쟁력이라고 한다. 제품이나 사무 환경은 전부 모방할 수 있어도 사람은 모방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 중심의 경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직원이 행복한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정에서 처럼 사람이 우선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속성장을 하기 위해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기업도 그 이익의 원천인 사람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 사람이 우선시 되고 ‘내가 이곳에서 존경받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시키지 않았음에도 보이지 않는 틀 속에서 무엇인가 자발적 참여가 있고, 이익은 저절로 창출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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