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자와 전대장이 자마미해안에 있는 수근부대 제 103중대를 아침 일찍 찾아왔다. 전대장은 이치가와 중대장 막사 안으로 들어오더니 함께 다카쓰키산으로 정찰을 나서자고 했다. 막사 밖으로 먼저 나가던 우메자와는 이치가와 중대장에게 슬쩍 얘기했다.

“오늘은 저기 이시타 조장도 함께 가지”

이수는 이미 두 사람의 움직임을 옆에서 지켜보던 터라, 이치가와 중대장이 따라오라고 손짓하자 재빨리 뛰어가서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우메자와, 이치카와, 이시타 세 사람은 후루자마미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다카스키 산등성이로 바닷바람을 등에 업고 이슬 젖은 풀잎 밟으며 묵묵히 올라갔다.

다카스키산 정상 바로 아래쪽에 있는 바람막이나무인 오키나와마쓰 군락 아래 우메자와가 먼저 엉덩이를 붙였고 눈치를 보던 이치가와도 그 옆자리에 앉았다.이수는 망설이며 아래쪽에 서 있다가, 얼른 태도를 바꾸어 우메자와 뒤쪽으로 가서 조심스레 주저 않았다.

이수는 이 섬 전체를 관할하는 전대장이 군인에도 끼지 못하는 연락병 서이수를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는지를 혼자서 여러 가지로 가늠해봤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다.조금씩 해가 솟아오르면서 바다로 쏟아지던 붉은 동녘 빛줄기가 세 사람의 이마를 정 조준했지만 세 사람은 아침햇살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밤새 서쪽 바다에서 몰려온 수없이 많은 미군 군함과 함정들이 야카비섬과 자마미섬 사이 바다로 서서히 밀려들어왔으며 저편 바다 빛은 군함들에 의해 검게 물들었다.망원경을 꺼내 바다를 유심히 내려다보던 우메자와 전대장이 이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망원경을 건네주며 눈앞에 보이는 선박의 종류와 숫자를 파악해보라고 했다.

“지금 자마미와 야카비 너머 바다에 LST, 14LSM, 40LCI 등이 대기 중이고 이들을 보호하는 호위함 2척, 구축함 1척이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그래?”

“LST 운반선엔 상륙작전에 필요한 수륙양용 탱크들이 40대 이상 실려 있습니다.”

“그럼, 저 미군 놈들이 언제쯤 상륙해올 것 같나?”

“어제 밤에 자마미섬과 가히섬 사이에 있는 암초와 삐져나온 산호초를 폭파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미군의 잠수파괴팀(UDT) 대원들이 산호초를 소해하고 자미미항구 앞에 있는 제방벽도 함포사격으로 파괴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 하루 정도 소해작전을 더 편 뒤 모레 아침에 상륙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 정도 화력이라면 절대 밤에 침투하지 않을 겁니다. 이곳 지리에 밝지 않은 미군으로서는 낮에 공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테니까요. 모레 아침 해가 뜨자마자 상륙을 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메자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 함재기의 공격편대가 날라 올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우메자와는 그 특유의 재는 몸짓으로 천천히 일어서더니 자신의 용기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밀려오는 미군 한 대를 굳게 서서 한참이나 찬찬히 내려다보았다.이때 아키섬과 자마미 사이로 접근해온 구축함에서 다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제에 이어 미군이 바다 속을 또 소해하기 시작한 것.

“이시타, 미군들이 소해작전을 펼치느라 바빠서 이쪽 산 능선을 공격하진 않으러 테니까 걱정 말고 자세히 살펴봐!”

자마미섬과 아카섬 사이에는 아름다운 무인도와 거대한 산호초가 형성되어있는데, 이 산호초 때문에 LST와 공격정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으니까, 미군들은 이 바다 바닥에 폭탄을 떨어트려 그 아름다운 산호초를 마구 파괴했다.

“식물학자!...저걸 보라고. 미군의 저런 행위가 과연 올바른 짓인가?”

전대장의 망원경을 받아든 이수는 미군의 소해 과정을 세세히 살펴봤다. 구축함에서 소해부대원들이 계속 오르내렸다.

이들은 거대한 산호초에 폭발물을 장착 한 뒤 시차를 두고 적당한 거리로 벗어나면 산호초 전체를 폭파해버렸다.

수천만 년에 걸쳐 형성된 산호초는 수중폭파 한 번에 모조리 작살나는 중이었는데 그냥 파괴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자마미 앞바다 속을 평지로 만드는 중이었다.이 지구에서 가장 특이하고 아름다운 우타의 ‘바다정원’은 지금 이수의 눈앞에서 무참하게 부스러졌다. 이건 ‘인류’보다 ‘지구’가 먼저란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지금 미군에겐 이제 전쟁의 승리만 중요할 뿐 오키나와 섬 따위는 전체를 날려버려도 좋다는 심사이니까 아름다운 산호초의 가치나 의미는 한갓 물고기 몇 마리의 생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미군으로서는 이 파괴 전략이 당연히 합당하고 최선책이겠지만, 이수의 눈에 지금 미군의 소해작전은 민간인을 마구 살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만큼 참혹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시타 조장, 우리는 먼저 내려 갈테니까. 자네는 마루레를 숨겨둔 후루자마미 해안 엄폐호에 수상한 고무보트나 소형선박이 숨어들어오지 않는지도 빠짐없이 조사해서 보고 해줘.”

이수는 그제야 왜 우메자와 전대장이 이수를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짐작이 갔다. 후루자마미 엄폐호로 접근하는 고무보트를 점검하라는 걸 보면 이미 우메자와 전대장도 ‘보석동굴’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수를 이곳에 보초 서게 한 건 바로 보석동굴로 진입하거나 보석동굴에서 나가는 선박을 철저히 조사해달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그 일을 일본군 장교나 하사관에게 지시하기엔 결코 적합하지 않았을 테니까.우메자와 전대장은 일어서서 아래쪽으로 향했다. 서너 걸음이나 갔을까. 우메자와 전대장은 다시 이수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눈에 힘을 주며 당부했다.

“어쨌든 오늘은 이쪽 해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면 쥐새끼 한마리라도 모두 다 파악해!”

이치가와 중대장은 이상할 만큼 오늘 한마디도 말하지 않더니 우메자와를 따라 후루자마미 부대로 내려가기 전 이수를 꽉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귓불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이시타 몸조심 잘 해...”

이수는 온종일 소해정들이 몰려와 오키나와 바다를 유린하는 걸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했다.3월 25일 아침이 밝자 미군은 드디어 바다 밑을 빗자루로 쓸어내 듯 산호초를 모래알로 만드는 중이었다.

[파괴된 산호 흔적...시루해안은 전체가 이런 산호로 뒤덮여 있다.]

이수가 나중에 알아낸 사실이지만 미군은 당시 ‘모터 마인스위퍼’라는 디젤 모터 소해정 십 수척을 동원했다는 것. 소해전단의 모토는 ‘노 스위프, 노 인베이전(소해없이 침공없다)’이었다. 이 모토는 소해 없는 상륙작전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미군으로선 이런 소해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945년 3월 24일 오후 6시25분 자마미섬 옆 섬인 도카시키 인근에서 미군 구축함이 일본군의 기뢰에 의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나중에 이수가 확인한 미군 기록에 따르면 이날 저녁 제 54임무부대 제 2분대의 구축함 핼리건(DD-584)이 도카시키섬과 마에섬 사이 소해되지 않은 해역으로 진입했다. 함장 그레이스 소령은 이 해역이 아직 소해되지 않을 걸 알아차리고 뱃길을 돌리려 했으나 구축함의 진행방향을 변경하는 순간 일본군이 설치한 기뢰를 건드리고 말았다.

수중에서 기뢰가 폭발하자 구축함 앞쪽에 있는 탄약고 2개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파편과 물길이 공중으로 치솟았고, 함정의 앞부분이 파괴되는 바람에 생존자들은 선미로 몰려갔다.배가 곧 침몰할 것으로 보이자 생존자 가운데 가장 고위 장교인 가드너 소위가 구축함을 포기할 것을 명령했다.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초계정 1128호가 가장 먼저 달려와 바다에 빠진 6명의 해군을 먼저 구조했고, 이어 달려온 초계정 584호와 중형상륙함 LSMR-194호가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이 같은 재빠른 구조작전에도 불구하고 핼리건의 승무원 325명 가운데 함장 그레이스 소령을 비롯 장교 19명과 153명의 해군이 전사하고, 39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군으로선 처참한 피해였다.
이 구축함 핼리건 DD-584는 미군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이 구축함은 미국 보스턴에서 진수되어, 마셜제도, 필리핀해역, 이오지마전투 등에서 놀라운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 핼리건의 침몰은 미군의 상륙작전 패턴을 바꾸고 말았다.

침몰사건 이후 미군 제2 소해전단이 이미 전날 소해작업을 했음에도 25일 아침 수중파괴팀을 태운 수송함 5척이 자마미 앞바다에 도착했다. 수중 파괴반이 자마미 해안 바닥을 모래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미군의 소해작전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발악적일 만큼 철저해졌고 상륙작전에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암초라면 싹쓸이를 해버렸다. 이제 이들의 모토는 ‘파괴해야 산다’로 바뀌었다. 미군의 이런 싹쓸이 소해전략으로 산호로 가득 찬 자마미 앞바다속의 ‘아름다운 정원’이 모래밭으로 변하는 걸 내려다보며 이수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목소리를 그르렁거렸다.

“하아...역시, 영미귀축이야!”
이파(李波)...소설가.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연구소장,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 도키와대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콘텐츠개발업체 (주)기업&미디어 대표.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지난 15년간 도쿄 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를 계속 찾아가 현장에서 취재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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