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후에 차를 써야 해서 시간 맞춰 가봐야 합니다”

토 달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고 후배는 뱁새 김용준 프로를 재촉한다.

 

물을 몇 모금 들이키고 숨을 고르고 있던 뱁새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갑자기 손발을 바쁘게 놀린다.

(결코 고 후배가 본전을 뽑으려고 꾀를 내서 뱁새에게 서두르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며칠 전에 예고한 일이다)

 

뱁새는 후다닥 고무래를 들고 벙커에 들어가 모래를 고른 다음 볼 한 개를 3분의 2쯤까지 모래 속에 묻는다.

골프볼 크키가 42.67mm(1.680인치)이니 1cm남짓 모래 위로 나온 것인데 위에서 내려다 보면 볼 정수리만 빼꼼한 것이 폭 묻힌 것 같다.

(아따! 뱁새가 한국프로골프협회 경기위원 됐다고 하더니 골프 볼 규격도 알고 많이 발전했네?)

 

“이렇게 볼이 모래에 묻힌 라이에서는 기본 벙커 샷을 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아요”

뱁새는 손에 어느새 웨지 하나를 들었다.

 

“이럴 때는 볼을 왼발 뒤꿈치보다 살짝 우측에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와 나란하게 서야 하구요”

기본 벙커샷 때는 볼은 왼발 뒤꿈치에 두고 목표 왼쪽 17도 방향으로 정렬하라고 가르친 뱁새 아닌가?.

(뱁새가 볼을 놓은 자리를 보니 기본 벙커샷 때보다 볼을 더 오른쪽에 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몸 가운데 보다는 더 왼쪽이다)

 

“클럽 페이스도 목표와 스퀘어 하게 놓아야 합니다”

엥?

기본 벙커샷 때는 클럽 페이스를 많이 열어야 한다고 하던 뱁새 아닌가?

 

“그리고 피니쉬를 할 때는 클럽 페이스가 닫히는 보통 샷을 하면 됩니다”

가만 있어보자.

이건 기본 벙커샷 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뱁새가 가르치던 방법인데?

 

“라이가 좋을 때와는 방법이 상당히 다르네요?”

고 후배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질문을 하는 것은 결코 사부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엉터리로 가르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 전까지 배운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벙커샷을 하는 방법을 ‘블래스트 샷’ 혹은 ‘익스플로젼 샷’이라 부른다고 했지요? 모래를 폭발시켜서 그 힘으로 볼이 뜨게 만든다는 뜻인 것도 알지요?”

(‘블래스트 샷’과 ‘익스플로젼 샷’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뱁새가 혀를 상당히 꼬는 데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이 혀를 심하게 꼴 때의 그 어색함이 묻어난다)

 

“넵!”

한 시간 남짓 전에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고 후배는 시원스레 대답한다.

 

“그 방법과 달리 묻힌 라이에서 치는 방법은 ‘딕 앤 푸쉬’라고 부릅니다. ‘파서 밀어낸다’는 말이지요”

뱁새가 ‘딕 앤 푸쉬’에서 또 한 번 혀를 꼬아보려고 했으나 혀를 많이 써야 하는 자음이 들어있지 않은 탓에 그냥 평범한 한국어 발음처럼 되고 만다.

 

고 후배는 눈에 힘을 바싹 준 채로 사부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역시 영어를 한 두 마디 섞어주면 교육 효과가 높아진다는 신기한 사실!)

 

“푹 파묻힌 라이에서는 익스플로젼 샷을 해서는 클럽 헤드가 볼 밑으로 충분히 파고 들 수가 없어요. 잘못하면 볼 옆구리를 쳐서 참사가 나기도 합니다”

뱁새 설명을 듣고 고 후배는 잠깐 눈을 감고 모래 속에 놓인 볼을 떠올려 본다.

기본 벙커샷처럼 클럽 헤드가 1/2인치 정도 모래 속으로 파고 드는 정도로는 42.67mm나 되는 볼보다 더 밑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고 후배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서너 번 작게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뱁새가 살짝 웃는다.

 

“'딕 앤 푸쉬'를 하면 볼이 낮게 떠서 날아가고 백스핀 양도 적기 때문에 그린 위에 떨어진 뒤에 많이 굴러가는 한계점이 있어요”

뱁새가 하는 이 설명을 듣고 나자 고 후배는 자신이 여태까지 벙커에서 탈출하는데 급급했을 뿐 핀 옆에 볼을 세운 적이 드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도 묻힌 라이에서는 이 방법을 쓰는 것이 안전해요. 워낙 고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벙커에서 한 번에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요”

뱁새가 설명을 마치고 잘 고른 모래를 따라 볼을 하나 파 묻더니 시범을 보인다.

아뿔싸?

(실수를 기대했다면 뱁새를 너무 얕본 것이다)

볼은 낮게 날아가 거뜬히 벙커를 탈출한다.

그린 위에 떨어진 다음 한참 굴러가는 것도 뱁새가 미리 설명한 것과 일치한다.

여기서 문제.

딕 앤 푸쉬 샷을 할 때와 익스플로젼 샷을 할 때 중 언제가 모래가 더 많이 튈까?

  1. 딕 앤 푸쉬

  2. 익스플로젼

  3. 같다


 

독자가 답을 생각하는 동안 고 후배는 볼 여남은 개를 모래 속에 묻어 놓고 순서대로 쳐 낸다.

기초 벙커샷을 배우기 전에 늘 하던 방법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어렵지 않게 벙커 탈출에 성공한다.

여남은 개를 쳐낸 고 후배는 어부인과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 든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은채로 작별인사를 하는 고 후배.

 

“연습은 '배울 연' '익힐 습'이에요.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좋은 학생이 되는 겁니다”

뱁새는 떠나는 고 후배 뒤통수에 대고 돌멩이를 하나 던진다.

(좋은 학생이란 '돈 내고 배우고 금방 잊어먹고 다시 수업료 내고 배우러 오는 멋진 제자'를 말한다는 게 뱁새 생각이다. 고 후배는 좋은 학생일까?)

 

겨우 두 시간 배운 것으로 고 후배는 벙커샷을 잘 할 수 있게 됐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고 후배가 뱁새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로 대신한다.

 

‘ㅎㅎㅎ~지난주 필드서 제 키만한 벙커에서 멋지게 탈출했다는…다들 와~~~. 나름 뿌듯했다는 ㅎ 캄사합니당 싸부님!~~~^^’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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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든 연줄기만 보고 초라하다고 안타까워하지 마라. 하룻밤새 몇 뼘을 자라는 연 줄기는 다시새 꽃을 피우리니. 뱁새 김용준 프로 친구 정지승 작가가 찍은 초봄 연못 사진이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뱁새 눈에는 마른 연줄기와 맑은 물빛이 어우러져 희망이 느껴진다. 우리 골프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희망이 안 보일만큼 뒤엉켰을 때 다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 꽃을 피울 지도 모르는 일.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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