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와 중대장은 일단 싱가포르에서 겪었던 상황부터 얘기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중대장의 기억력은 정말 놀라웠다.

“쇼와 17년(1942년) 2월15일 싱가포르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군이 일본군 제 25군에 항복했지. 이날 항복한 영국군은 약 8만 명이었어. 3만 명뿐인 우리 일본군이 감당하기엔 너무 엄청난 숫자였어.”

“싱가포르엔 중국인들이 더 많지 않았나요?”

“물론, 영국이 지배했지만 주민은 대부분 중국인이었어. 그런데 이 중국인들은 일본편이 아니었지. 그래서 2월 21일부터 야마시타 도모유키 산하 제 25군 사령부는 중국인 항일분자를 적발해 처단하기로 했어.”

“항일분자를 어떻게 가려냈죠?”

“싱가포르 시가지를 담당하는 소남(昭南)경비대, 싱가포르의 기카지역을 관할하는 근위사단, 말레이반도 조호르지역을 하는 18사단, 그리고 제5사단의 정보담당들이 각각 자기 지역의 중국인집을 일일이 방문해서 골라냈지”

“단번에 선별할 수가 있었습니까?”

“당연히 가능하지 않았지...하지만 조직원들은 눈빛이 달랐어...중국인들은 1938년 10월 남화교총회를 열어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1941년 12월 중화총상회를 중심으로 ‘싱가포르 화교항적동원총회’를 발족해 항일운동을 펼쳤는데...그 조직원들은 우리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어...분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놈은 모두 잡아들였지”

“아...항일조직이 있었군요...”

“그럼...2월 16일부터 시내치안유지를 하던 영국군의 무장해제를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 제2야전 헌병대가 싱가포르 시내에 진입했어. 일단 항일 세력 아지트를 알려주는 사람들은 살려주고, 그 아지트를 찾아내 체포하기 시작했어.”

이치카와 중대장은 그때 일본군이 항일 중국인을 처리한 방법을 이렇게 간추렸다.

“선별 인원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처리하기 힘들어지자 방위사단 보병 가운데 행정능력을 갖춘 보병을 헌병으로 임명해 처리했어.

나도 그때 ‘보병장교’에서 ‘헌병장교’가 된 거지...가가호호 방문 조사를 통해 반동분자들을 끌어냈고...2월 20일 창이 해안과 부킷팀마에서 66명의 중국인을 헌병대가 총살했어. 줄을 세워놓고 쏘았지.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

카통에선 텔록 카라우 학교에 반동주민을 모이게 한 뒤 700명을 단번에 처단했고, 탄나 메라 해안에서도 200명을 사살해 창이공항 모퉁이에 버렸어.

나는 그때 전쟁 중에 죽인 영국인보다 더 많은 중국인을 죽게 했어...영국군과의 전투에서 눈에 화약이 들어가 오른쪽 눈을 실명하면서 그 분노가 풀리지 않아 더 혹독하게 처리했는데...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 너무 많은 죄를 지은 것 같아...그들이 반일운동을 한 건 사실이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거든...군인이 민간인을 총살해서는 안 되지...그때 죽은 중국인은 아마 1만 명이 넘을 거야”

이치카와 중대장의 눈에 물기가 젖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치카와 중대장이 눈물을 흘리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공포에 빠진 스머프...싱가포르의 공포를 이렇게 표현해보았다....그림=이파]

“민간인 처단이 시작되자 시노자키 마모루 기자가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냈지. 시노자키 기자는 참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데 메이지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전보통신사 취재기자로 근무하다가, 싱가포르 일본총영사관의 보도기자로서 동방통신사에 근무하며 싱가포르헤랄드에 일본 뉴스를 팔았어.

겉으론 기자 행세를 했지만 실은 선천적인 스파이였지. 독일여자와 부적절한 관계가 문제시 되면서 싱가포르로 전임되었는데, 거기서 영국군 장교들과 화교갑부들을 사귀면서 영국군의 군사정보와 중국계 주민사회의 정보를 수집해 본국에 알려주는 스파이 노릇을 했어.

1940년 9월21일 영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목적의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영국의 해협식민지경찰에 체포되어 1000달러의 벌금과 3년 반의 형을 받고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 수감되었지.

형무소에 있던 그가 일본군이 점령하자 풀려나와 야마시타 사령관을 따라 다니며 싱가포르사정을 설명하면서 싱가포르거주 중국인가운데 갑부가 많다는 걸 귀띔했어...그리고 나서 그는 경비사령부 특외과 명의의 보호증을 발행해주는 특권을 얻어 돈 많은 중국인들이 살해당하지 않도록 해주었어.”

“보호증을 발행해주는 대신 어마어마한 재물을 받았겠군요...”

“당연하지 그 보호증이야말로 ‘목숨의 가격’이었으니까...이때 구해준 사람 중엔 임문경(림분켕)이란 의사출신의 사업가도 있었지... 임문경은 중국 중경에 있는 장개석 정부에 헌금 보내는 걸 주도했는데도 살아남았지...살려준 대가로 일본군과의 협력을 약속하고, 화교협회 회장을 맡아 일본군을 위한 강제 헌금을 주도하도록 했어. 25군 점령 하에 중국계 주민으로부터 거둬들인 강제헌금이 엄청났는데 이때 보물을 평가해서 납부한 거지.  저 아래 자네가 발견한 동굴에 들어있는 보석은 중국인의 목숨과 맞바꾼 보석들이지...”

“예...그렇군요”

“이어서 1942년 4월8일 극비문서 ‘화교공작실시요령’에 따라 싱가포르 군정부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와타나베가 다시 중국인의 헌금을 강요했어.

6월20일 싱가포르 풀러튼(Fullerton)빌딩에서 헌금 봉납식을 가졌는데 화교협회의 중국 상인 약 60여명이 참석했고, 임문경 박사가 헌사를 했으며, 5000만 달러 약정서를 받은 야마시타 사령관은 친영행위를 벌하지 않고 구해주는 만큼 일본군에 더욱 협력하길 촉구한다고 경고했어.나도 경비업무를 맡아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야마시타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영미와의 전쟁목적과 일본인의 도덕적 미덕을 강조하며 1시간이나 연설을 하더군...”

“야마시타 사령관은 그 돈을 다 어디에 쓰려고 한 거죠?”

“물론 공식적인 헌납금은 군수용에 활용하기 위한 거였지만 보석은 본국으로 수송하려했던 것 같아...보석을 비밀리에 본국으로 운송해 천황의 소유로 만들고 싶었던 거지.”
“역시...저 보석들은 천황께 바치려고 한 거군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거지...야마시타 사령관이 싱가포르 점령으로 일본국민의 영웅이 되자 도조 히데키 총리는 야마시타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야마시타가 천황을 만나지 못하도록 조치했지.하지만 야마시타는 싱가포르에서 모은 다이아몬드 등 보석을 언젠가는 천황에게 직접 전달할 기회를 찾기 위해 싱가포르 앞바다의 라자루스섬에 숨겨놓았던 거야”

“중대장님이 라자루스섬에 보석을 매장하셨다면서요?”

“음...이시타, 저 보석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어김없이 살해될 거야...나도 야마시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보석들을 라자루스섬에 매장한 중국인 인부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사살했으니까...저 보석들이 이 자마미섬에 오기까지 비밀유지를 위해 사살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을 테지...보석을 이곳으로 옮겨온 선박대 장교들의 목숨도 위태하다고 봐야지...”
이파(李波)...소설가.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연구소장,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 도키와대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콘텐츠개발업체 (주)기업&미디어 대표.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지난 15년간 도쿄 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를 계속 찾아가 현장에서 취재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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