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료상관손수원(破了傷官損壽源)

입력 2010-05-24 11:50 수정 2010-05-24 13:37
변사장은 공대 토목건축학과를 졸업,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큰 건설회사의 핵심 기술자로 성장, 중동지역에 파견돼 7년쯤 나가 있기도 했다.

아내는 딸, 아들 낳고 살림을 잘 살아 남부럽지않은 가정을 꾸려갔다.
남편이 해외에서 보내준 월급을 착실히 모아 집도 장만하고 땅도 조금 사두었다.

변사장은 귀국후 국내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건설업자들이 돈을 쓸어담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못할바가 없다고 여겨 창업했다.
아내가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밑천으로 집을 짓거나 싼 집을 사서 리모델링해서 되팔았다.
사업은 잘 돼나갔다.
상가도 짓고 아파트 하청도 맡기에 이를만큼 성장했다.

원가계산, 설계도, 자재구입등 건설핵심부문에의 실력이 탁월한 변사장은 사업수완도 좋은 편이었다.
규모가 커지면서 대기업에의 진입이 가시화되고 그렇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듯 했다.

그러다가 IMF를 맞았다.
회사는 휘청거리면서 난파선을 닮아갔다.
받은 어음중 몇군데가 부도처리되면서 자금난에 휘말렸다.
변사장은 자신의 실력으로 회사가 큰줄로만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면도 있긴 하지만 경기가 좋았고 여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은 차리랬다.
변사장도 정신을 차렸으면 좋았을 것을...
변사장은 잠수를 탈 지경이 되면서 "에라, 나몰라라"하는 심경이 됐다.

애인 만들어서 돈통과 함께 숨어지내는 변사장은 "이만하면 재미있는 인생"이라고까지 여겼다.
회사, 가정, 가족에 대한 책임감, 도덕윤리는 팽개쳐 버렸다.
도피생활중 변사장은 아내와 딸 등 가족이 교회에 간 사이에 집에 들러 아내의 저금, 적금통장, 딸의 결혼자금이 든 통장을 몰래 가져가 찾고는 잠적했다.

변사장의 명은 임진(壬辰)년, 무신(戊申)월, 병술(丙戌)일, 경인(庚寅)시. 대운은 10.

얼핏보면 시상편재가 눈에 들어와 좋은 운을 만나 발복하면 재벌진입이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변사장은 20세이후 경술 대운중에 대학졸업, 재벌회사 입사, 결혼등 인생의 중대사가 결정됐다.
40세이후 임자 대운중 창업했고 자(子)운중에 IMF를 맞았으며 경진년, 일주와 천극지충이 되면서 잠수를 탔다.
이혼 도장은 계미년에 찍었고 병술년에는 사기와 연루됐고 애인도 떨어져 나갔으며 외톨이가 됐다.
기축년에는 거지신세가 돼 더는 어찌할 수도 없게 되자 노부모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명을 보면 인생의 굴곡이 너무 심한 것과 맞지 않는다.
이러한 명이 회사의 사장과 가정의 가장이라는 직분과 명예를 내팽개칠리 없는 것이다.
아무리해도 납득이 가지 않아 명을 다시 구성해 보기로 했다.
전날 해시와 다음날 자시, 그리고 축시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 것이다.
전날 해시면 을유일 정해시, 다음날은 병술일 무자시와 기축시.

변사장의 망가짐과 딱들어 맞는 대목이 눈에 띈다.
병술일 기축시가 틀림없는 것이다.
기축시라야 계미년에 이혼도장 찍는 것과 맞아 떨어진다.(천극지충이므로)

기축년에 태어난 곳으로 다시 찾아들어감은 손수원(損壽源)「생명력 고갈」에 해당된다.
병술일주가 기축시면 이른바 파료상관손수원(破了傷官損壽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상관 관리가 잘못되면 사기꾼, 미친놈, 거지꼴, 정신병자 등의 소리를 듣게 된다.
상관 관리가 잘되면 발명특허로 벼락부자가 되거나, 예.체능계의 대스타가 된다.
상관은 자식, 밥그릇도 되니 파료상관이되면 사랑하는 자식이 죽거나 직장을 잃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위기속으로 말려들수 있는 것이다.
파료상관의 무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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