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샷! 벙커샷! 벙커샷!”
고 후배는 노래를 불렀다.


‘가르쳐준 어프러치 연습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뱁새 김용준 프로가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뱁새는 어프러치와 벙커샷이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둘 다 풀 스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고
주로 웨지를 갖고 한다는 점도 그렇다.
특히 높게 띄우는 어프러치는 클럽 페이스를 열고 쳐야 하는데 벙커샷도 그와 흡사하지 않은가?

물론 벙커샷을 할 때는
어프러치샷보다 클럽 페이스를 더 많이 열고
볼 위치를 바꾸고(더 왼발쪽으로 옮기고)
타깃 왼쪽을 더 겨눈다는 점 따위는 다르지만.

두 샷은 원리가 비슷하니 어프러치샷에 익숙해지면 벙커샷도 금방 익힐 수 있다고 뱁새는 믿는 것이다.

그런데 고 후배가 어프러치를 배운지 두 주도 채 되지 않아 벌써 벙커샷을 배우겠다고 보채니
뱁새 입장에서는 죽도 밥도 아닌 결과가 될까 봐 걱정할 만도 하다.

그래도
'우는 아이 밥 한 술 더 준다'고 하지 않던가!

어쩔 수 없이(?) 뱁새와 고 후배는 어느 봄 토요일 이른 아침 파주 모 골프장 연습장에서 재회할 수 밖에 없었다.

“벙커 샷은 크게 네 가지 경우가 있지요?”
뱁새는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뱁새는 터벅터벅 걸어가 아이들이 놀이할 때 쓰는 노란 원반 하나를 그린 위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연습 그린 바로 옆 벙커에 볼 네 개를 들고 들어간다.

볼 하나는 좋은 라이에 놓고
다른 하나는 반쯤 파 묻고
또 하나는 볼 정수리만 겨우 보이게 파 묻고
마지막 하나는 비탈에 반쯤 박아 놓는다.

“물론 페어웨이 벙커샷도 있지만 오늘 다루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인지 나중에 월사금을 더 챙길 요량인지 뱁새가 선을 긋는다.
(최근 들어 뱁새가 잇속을 속으로 따져보기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 속을 다 알아차려 버려서 무척 난처하다고 한다)

“라이가 좋은 벙커샷은 클럽 페이스를 많이 오픈하고 볼 뒤 4인치 정도 되는 지점부터 볼 밑을 지나 볼 앞으로 나온다는 느낌으로 스윙을 하면 됩니다”
뱁새가 혹시나 실수를 할까 살짝 걱정을 하며 시범을 보이는데 웬걸!

웨지 바운스가 볼 밑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싶더니 볼은 '퓨웅' 하고 떠서 가볍게 그린 위로 날아간다.

“클럽 페이스를 많이 연 탓에 볼이 볼과 목표를 이은 선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날아가기 마련이니 스탠스는 목표보다 왼쪽 17도를 겨누고 서는 것이 표준이에요”
일단 시범 보이기에 성공한 뱁새가 존경하는 눈빛을 보이는 고 후배에게 거침없이 설명을 이어간다.

‘17도 왼쪽을 봐야 한다’고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니 순전히 뱁새 혼자 머리로 벙커샷을 연구한 것 같지는 않고 어디 교과서라도 보면서 터득한 것이 분명하다.

(봤으면 교과서를 빨리 밝혀라! 독자들도 같이 늘게)

 

“이렇게 클럽 페이스를 열고 치면 웨지 엉덩이격인 바운스가 클럽이 모래에 콱 박히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웨지가 볼 밑을 지난 뒤에 저절로 모래 위로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뱁새가 쭈그려 앉아 웨지 목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고 웨지 헤드가 모래에 파고 든 다음 볼 아래를 지나 다시 나오는 것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보여준다.

더 가까이 볼 셈으로 고 후배도 뱁새 앞에 같이 쭈그려 앉는다.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눈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니 제법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이래서 시범이 중요하다니깐!’
고 후배와 잠깐 눈이 마주친 뱁새는 우쭐해 하며 계속 선생질(결코 교사 비하할 의도가 아님)을 이어간다.
“이렇게 클럽 페이스를 오픈하는 샷을 '블라스트 샷' 또는 '익스플로젼 샷'이라고 해요. 모래를 폭발시켜 모래가 볼을 튕겨내도록 한다는 뜻이죠. 이 샷으로 쳐야 볼이 더 높게 뜨고 백 스핀도 더 많이 먹습니다”
뱁새가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껏 저는 클럽 페이스를 닫고 볼 바로 뒤를 쳐서 벙커샷을 했는데요”
고 후배가 토를 다는 데 바로 뱁새가 기다리고 있던 말이다.

“그 샷은 파서 미는 샷 즉 '딕 앤드 푸시'라고 부르는데 정확히 볼 뒤를 쳐야만 결과가 좋다는 단점이 있지요”
제법 잘 아는 주제를 다룬다고 오늘 뱁새 언변은 청산유수다.

“딕 앤드 푸시 벙커샷은 조금만 볼 뒤를 멀리 치게 되면 벙커에서 탈출하는 데 실패하게 되고 너무 가까이 치면 볼이 멈추지 않고 많이 굴러간다는 한계가 있어요”
뱁새는 자신이 가르치려는 블라스트 샷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고 후배가 여태까지 해오던 벙커샷 방법을 깔아뭉갠다.
(책임은 지려나?)

“자 그럼 지금부터 블라스트 벙커샷을 익혀볼까요?”
고 후배 얼굴에서 존경을 넘어 갈망하는 눈빛을 읽은 뱁새는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런데
어라?
고무래로 모래를 고른 뱁새가 벙커 안에 볼을 잔뜩 붓고 고 후배에게 ‘한 번 쳐봐요’라고 할 줄 알았더니
느닷없이 벙커 옆에 떨어져 있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오더니 모래 위에 줄을 길게 주욱 긋는다.
벙커에 볼이 하나도 없는 채로 말이다.
(아까 그 네 개는 어느새 치우고)

그리곤 자기 웨지를 집어들고 스윙 시범을 보인다.

“이렇게 줄을 스탠스 중심에 두고 스윙해서 클럽의 헤드가 줄을 먼저 치고 더 앞으로 나가도록 해봐요”
뱁새는 첫번째 시범 스윙에서는 줄보다 뒤를 치더니(이러니까 '바담 풍'이라고 하지) 그 뒤로 서너 번은 깔끔하게 줄부터 쳐낸다.

'뭐 하는 건가' 싶어도 쓸 데 없는 것은 시키지 않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으로 아는 고 후배인지라 군말없이 웨지를 들고 줄 위에 걸터 선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아니?
숨 쉴 새도 없이 웨지를 휘두르는 고 후배는 '시키면 시킨대로 하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을 연상시킨다.

“아이고 천천히 하나씩 해요! 실제 벙커샷을 하는 템포로”
뱁새가 참견을 한다.

“넵!”
고 후배 스윙이 조금 더뎌진다.

“체중이 오른발로 너무 갔다가 오면 뒷땅이 나서 망하기 십상이에요. 기본 벙커샷을 할 때는 되도록 체중을 뒷쪽으로 이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욱 그어진 줄을 따라 고 후배가 발걸음을 옮기며 열심히 연습 스윙을 하는 동안에도 뱁새는 잔소리(아니 가르침)을 계속 한다.

고 후배는 한 번 치고 한 발 옮기고 다시 한 번 치고 다시 한 발 옮기기를 거듭하며 순식간에 스무 번도 더 휘두르는 데 어느새 건너편 벙커가장자리에 이른다.

‘다음은 뭔가요?’
하는 뜻으로 뱁새를 쳐다보는 고 후배.

뱁새는 고무래를 들고 고 후배가 만든 발자국과 샷 자국을 고르더니 말 없이 줄을 한 번 더 긋는다.
다시 쳐보라는 뜻이다.
(뱁새 너 혹시 '시간 떼우기' 하는 건 아니니?)

이른 봄 쌀쌀한 날씨인데도 더워졌는지 고 후배가 얇은 점퍼를 벗어 벙커 밖으로 던진다.
묵묵히 줄을 따라 다시 수 십 번 스윙을 하는 고 후배.

첫 줄보다 이 번 줄에 대고 하는 스트로크가 더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데 선이 있는 곳부터 앞으로 '턱'하고 깨끗하게 모래를 파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순식간에 두번째 줄에 수 십 개나 되는 샷 흔적을 만든 고 후배는 잠깐 벙커밖으로 나와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 사이 뱁새는 고무래로 모래를 정리하더니 다시 나뭇가지로 줄을 하나 긋는가 싶더니 그 줄을 따라 한 줄을 더 그어 두 줄이 기찻길처럼 나란히 가게 만든다.

‘뭐 하려는 속셈이지?’
고 후배는 생각한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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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 김용준 프로 고향인 해남 송지면 갈두리 땅끝마을 여명을 정지승 작가가 사진에 담았다. 여명은 희망이다. 새 시즌을 시작할 때는 여명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부푼다. 그러나 어디 희망이 저절로 이뤄지던가.  땀 흘린 골퍼만이 희망을 현실로 바꾼다. 뱁새 너는 지난 겨울에 땀 좀 흘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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