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코드(dress code)는 장소에 맞춤한 차림새다. 조문하는 사람은 파티를 즐기는 사람과 옷차림이 다른 게 정상이다. 옷차림은 패션이자 예의이고, 때로는 ‘우리’라는 동질감이다. 특정 조직원이 유니폼을 입는 이유다. 산을 오르는 데는 등산화가 제격이고, 운동장을 뛰는 데는 운동화가 제격이다. 만물은 제자리에서 가장 아름답다. 제자리를 아는 것은 삶의 큰 지혜다.

진나라 도읍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3세 황제 자영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진시황의 아방궁에도 불을 질렀다. 심지어 진시황 무덤까지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쌓아둔 보물을 모두 차지하고, 주지육림에 빠져 승리를 자축했다. 그건 몰락의 예고편이었다. 승리 직후의 태도는 승리자의 앞길이 어떨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신(謀臣) 범증이 항우에게 제왕의 바른길을 간곡히 간했으나 듣지 않았다. 항우는 되레

재물과 미녀들을 손에 넣고 고향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제왕보다 금의환향(錦衣還鄕)에 마음을 둔 것이다. 항우의 이런 속내를 꿴 한생이란 자가 말했다. “함양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땅 또한 비옥합니다.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시어 천하에 세력을 떨치시옵소서.”
하지만 항우는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출세를 자랑하고 싶었다. 속내를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귀해졌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다. 누가 이것을 알아주겠는가.” 한생이 항우 앞을 물러나며 중얼댔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나라는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웠을 뿐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구나.”

이 말을 전해들은 항우는 한생을 삶아 죽였다. 결국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훗날 유방이 함양에 들어와 천하를 거머쥔다. ≪한서≫ 항적전과 ≪사기≫항우본기에 나오는 얘기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금의야행(錦衣夜行)은 보람이나 의미가 없는 행동을 비유한다. 금의환향과는 달리 출세해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음을 뜻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행위에도 쓰인다. 수의야행(繡衣夜行) 야행피수(夜行被繡) 의금야행(衣錦夜行) 모두 뜻이 같다.

회복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제 직분을 지키고, 제 분수를 아는 거다.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비단옷은 그 값에 더 어울리는 장소와 때가 있다. 만물이 다 그렇다. 그 자리를 아는 게 지혜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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