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후배는 옹기종기 흩어져 있는 볼 가운데 한 개를 웨지 헤드로 갈퀴질하듯 긁어 자기 앞에 놓는다.

얼핏 보면 무심결에 하는 짓 같지만 천만의 말씀.

 

‘그러면 그렇지’

고 후배가 볼을 끌어다 놓은 곳이 그 주변에서는 잔디가 제일 도톰하고 바닥도 가장 평평한 곳이라는 사실을 그 틈에 알아차린 뱁새 김용준 프로가 속으로 웃는다.

(가재 속은 게가 안다고 하지 않던가? 과부 속을 홀아비였던가?)

 

포대 그린이고 바로 앞에는 높이가 사람 키에 버금가는 벙커가 있다.

그 벙커를 넘겨서 다시 열댓 발짝 뒤에 있는 목표까지 볼을 보내야 하는 상황.

벙커를 넘기려면 열대여섯 발짝은 가야 한다.

제법 구력이 있는 골퍼에게도 부담스러운 샷이다.

 

‘어디 한 번 혼나 봐라’

이런 숙제를 초보 제자에게 내주고 속으로 요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뱁새가 선생이 맞기는 맞아?

(교사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교육자를 비하할 의도가 아님을 새삼 밝힌다)

 

그러나 뱁새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고 후배는 놀랍게도 첫샷부터 무난하게 벙커를 넘긴다.

 

뱁새가 놀랄 새도 없이 연거푸 몇 개를 그린 위로 보내는 고 후배.

 

아쉬운 점은 볼이 높게 뜨지 못한다는 것이다.

낮게 떠서 벙커를 겨우 넘어 그린 혹은 그린 주변에 떨어진 볼은 생수병 앞에 서지 못하고 거의 그린 끝까지 굴러가기를 되풀이 한다.

 

‘흐흐흐. 그러면 그렇지!’

꼬집을 부분을 찾아낸 뱁새는 속으로 좋아한다.

 

드디어 클럽 페이스를 오픈하는 법을 알려줄 때가 온 것이다.

“고 후배! 이런 상황에서는 낮게 날아가는 피칭 샷으로는 핀에 가까이 붙이기가 어렵겠지요?”

상대의 무지를 틈타 의기양양하게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는 뱁새.

 

“넵!”

아쉬운 고 후배인지라 고분고분 할 수 밖에 없을 터.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클럽 페이스를 열고 치는 로브 샷이에요”

뱁새가 바닥에 있던 자기 웨지 하나를 집어들었다가 54도인 것을 알고 내팽개치고 58도를 골라 잡고 시범을 보인다.

 

“로브 샷을 칠 때는 볼 위치가 칩 샷이나 피칭 샷을 칠 때 보다는 상당히 왼쪽으로 와야 해요”

뱁새가 볼을 먼저 자신의 오른발쪽에 놓고 칩샷할 때 하는 셋업을 시범 보인다.

그런 후 다시 볼을 몸 중심쪽으로 한참 옮기고는 클럽 페이스를 많이 여는 로브 샷 셋업을 보여준다.

 

“이렇게 페이스를 열면 볼이 오른쪽으로 가기 때문에 셋업 할 때 목표보다 살짝 왼쪽을 보고 정렬해야 하고요”

뱁새가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고 후배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백 스윙 할 때 체중이 오른쪽으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체중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채 오지 못하고 다운 스윙을 하면 뒷땅이 날 수도 있고 톱볼이 날 때도 있으니까요”

뱁새가 체중을 살짝 왼쪽에 실은 채로 빈 스윙 시범을 보인다.

이어서 체중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미처 왼쪽으로 오지 못하고 쳤을 때 클럽이 볼 뒤를 치는 시늉을 한다.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과장된 뒷땅이지만 '원래 교육이라는 것이 좀 부풀려야 머리에 쏙 들어온다'고 뱁새는 애써 자위한다)

이런 뱁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 후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한 번 해봐요!”

뱁새가 고 후배에게 웨지를 넘겨주려다 그것이 자신 것인 줄 알고 다시 받아들고 뒤로 물러난다.

 

고 후배는 빈 스윙을 여남은 번쯤 하면서뭔가 느낌이 오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끄덕이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샷을 하는 데 처음 몇 개는 엉터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볼이 제법 높이 뜨기 시작한다.

그런데 스윙 템포가 좀 빠르다 싶더니 볼은 한 참 멀리 날아간다.

 

'평소에 두던 볼 위치보다 상당히 왼쪽으로 옮기고 웨지 샷을 하려다 보니 컨택이 잘 이뤄질까 순간적으로 걱정을 하면서 급하게 다운 스윙했을 것'이라고 뱁새는 짐작한다.

 

고 후배가 몇 번 더 샷을 하는 데 결과는 들쑥날쑥이다.

그래도 볼이 제법 높이 떠서 날아간 다음 덜 구르는 것을 보는 고 후배는 낯이 밝아진다.

뱁새도 조마조마 하던 가슴이 트이는 느낌이다.

 

“피니쉬를 조금 더 높게까지 해봐요”

고 후배가 다소 거칠게 치는 것을 본 뱁새가 한마디 거든다.

 

“넵!”

고 후배는 간결한 답변을 남기고 샷을 계속한다.

몇 번 피니쉬가 매끄럽게 이뤄졌다 싶을 때는 볼이 부드럽게 그린에 떨어진다.

좀 거칠다 싶은 샷은 아니나 다를까 피니쉬가 없거나 낮다.

 

“피니쉬! 피니쉬!”

기억에 남으라고 뱁새도 톤을 높인다.

'어린 학생이었다면 이 대목에서 등짝을 한 대 찰싹 때려서라도 뇌리에 박히게 해야 하는데' 하고 뱁새는 생각한다.

뱁새가 보기에는 겨우 뜨기만 뜨지 목표에는 여남은 발짝씩 지나가는 로브 샷인데도 고 후배는 만족스러운가 보다.

좀 쉬었으면 좋을 법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연습에 여념이 없다.

 

고 후배는 어느 새 한 자루를 다 치더니 뱁새가 막간을 이용해 물 한 모금을 마시는 틈에 혼자 그린으로 뚜벅뚜벅 걸어올라가 볼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한다.

할 수 없이 빈 자루를 들고 제자를 따라 볼 줍기에 나선 '바담 풍' 선생 뱁새.

자루를 채워 들고 다시 벙커 뒤쪽으로 내려오며 고 후배 눈치를 살핀다.

신이 나 있는 고 후배 기색에 ‘이쯤 하고 다음에 한 번 다시 만납시다’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 만다.

(결코 월사금을 더 울궈내려고 수업을 중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가자. 어디까지나 피곤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교육효과가 반감되니 맑은 정신으로 다음 진도를 나가겠다는 선량한 선생임을 믿어달라)

약속한 시간이 조금 남긴 했지만 하도 잔소리를 많이 하느라 기가 빠진 뱁새는 볼을 다시 쏟아 부어 주고는 뒷전으로 몇 발물러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라도 부를 기세로 연신 볼을 쳐 대는 고 후배.

 

‘탁’

마침내 볼 하나가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더니 알맞은 속도로 굴러가 생수병에 맞는다.

 

“와우!”

둘은 같이 소리를 지른다.

 

“버디네!”

뒷전에 있던 뱁새는 고 후배가 기가막히게 하나를 친 것이 온전히  자기 덕분이라도 되는양 어느새 고 후배 앞으로 바싹 다가선다.

 

고 후배 눈가에도 뱁새와 비슷한 하회탈 웃음이 걸린다.

 

“오늘 사부님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봤습니다”

수 십개를 더 치고 나서야 연습 그린을 나오려고 짐을 싸면서 고 후배가 사부에게 치사를 한다.

 

“아이고 나는 어리석어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고 혼자서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몇 십 만개를 쳤을 거에요. 이거 알 때까지. 내가 멍청해서 그런거지”

너스레를 떠는 것을 보니 뱁새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둘은 조만간 시간을 내서 벙커샷을 익혀보기로 하고 헤어진다.

(고 후배가 그날 밥은 샀던가? 뱁새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café.naver.com/satang1

ironsmithkim@gmail.com

뱁새 김용준 프로 고향인 해남 서림 공원의 나무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이다. 뱁새는 이리 저리 비틀린 나뭇가지가 마치 자신의 골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좋은 스승을 모시고 잘 배웠으면 반듯하게 자라나 주춧돌 재목이 되었을지도 모를 것을. 독학으로 이리 저리 몸부림 치다가 가까스로 프로라는 제법 큰 나무가 되기는 했지만 어디다 마땅히 쓸 데도 없는 자신처럼 말이다. (골프도 독학이 된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은 남의 골프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고 뱁새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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