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7시간의 진실’에 대한 의문은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도대체 그 골든타임에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었다. 성형시술 중이었을 것이다. 시술 후 마취가 덜 풀려서 자고 있었을 것이다. 혹시 모를 부정행위들에 대한 추측은 일파만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 나갔고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찔렀었다. 신뢰할 만한 어떠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 혹은 못 하는 박근혜 측근들에 대한 원망은 그녀를 대통령이라 부르고 싶지 않을 만큼 참담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왜 말하지 못하는 걸까? 유가족은 물론 국민도 그 진실을 알아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그 물음은 억울하게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의 최소한의 알 권리였고 갑자기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당연한 의문이었다. “알고나 보냅시다. 왜 죽었는지. 내 아이가, 내 가족이 왜 죽어야 했는지”

‘세월호 7시간의 사건’에서 드러난 진실은 박근혜에게 대통령의 자리는 처음부터 백성 위에 군림하는 독선적 군주의 자리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행적이었다. 자신이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라는 생각은 한순간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면 출근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근무시간에 성형시술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단 공무원들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과로사로 죽어 나가는 현실에서 대통령이라는 가장 큰 책무를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은 할 일이 없어 근무시간에 늦잠을 잔다?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문고리 3인방(안봉근, 이재만, 정호성)은 알고 있었다. 사고에 있어서 골든타임이 갖는 의미를. 고대출신 정호성, 경제학 박사 안종범, 한양대 출신 이재만은 그래도 상식 정도는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속칭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 박근혜의 행적’에 대해서는 박근혜는 차치하더라도 자신들의 이기와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진실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끝까지 숨겨야 했다. 자신들의 거짓을 뒷받침해 줄 문서를 조작하고 거짓이 진실로 보이도록 하려고 주변인들과의 말 맞추기를 하기위해 밤잠을 설쳤을 것이 분명하다. 팩트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대한 모든 것을 최순실에게 사사 받고 움직인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도 일말의 양심적 자책과 도의적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

박근혜는 지금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이 사실은 박근혜 개인은 물론 그의 통치 아래 있던 국민에게는 더더욱 커다란 수치다. 하지만 박근혜는 자신이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과만 국정을 논의하고 이행한 것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했듯이 누구나 두고 있는 비선의 한 사람으로 최순실이 있었고, 청와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가장 신뢰하는 최순실이 불러들인 문고리 3인방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자신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누구와 국정을 운영하든 그 문제에 있어서 법원에서 판단하고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박근혜는 자신이 감옥에 있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 탄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순실이 자서전을 쓴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이라고 전해진다. 이미 3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 변호사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는 수많은 정치인의 자기 미화 식 자서전이 타인의 손을 빌려 쓰여지고 출판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불쌍함은 강조하여 측은지심을 끌어내고, 긍정적 행적은 과대 포장하여 긍정 이미지로 홍보하고, 과오는 변명하거나 축소, 삭제하여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수법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도 아닌 최순실이 왜 자서전을 쓰는 것일까? 자신이 정치인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누구나 자서전은 쓸 수 있다.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최순실이 쓰는 자서전은 무슨 의미일까? 목적이야 법정에 제출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양형을 줄여 보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수 있겠지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한가지는 확언할 수 있겠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진실은 없을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최순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사기꾼 아버지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배운 도둑질을 그대로 답습하다 보니 지금의 처지까지 왔을 수 있다. 사실 자신의 정치놀음에 대해서는 도둑질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투자에 대한 보상? 부모를 잃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박근혜를 18년동안이나 자신의 가족이 돌봐주었고 그녀를 밖으로 끌어내어 정치인으로 키우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말이다. 공주로만 살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를 청와대에 홀로 두면 안 된다 생각했을 수 있다. 가족과도 단절시킨 최순실은 불안해하는 박근혜의 수족을 자처하며 늘 그랬듯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박근혜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거들고 챙겼다. 그러다 보니 어리석은 여자가 정치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정치에도 관여했을 것이다.

죄라면 나라 잘 되고 언니 잘되라고 밤잠 설쳐가며 도운 죄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다. 내가 볼 때 나라 걱정은 최순실이 박근혜보다 훨씬 더 많이 한 것 같다. 그것이 전부 자신의 이기를 위한 일들로만 채워져서 문제였지만 그렇다. 그래서 최순실은 늘 억울하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언니를 도왔고 밤잠 설쳐가며 나라 걱정을 했는데 자신을 국정농단의 주범이라니 미칠 노릇이다. 왜 다들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줄까? 그래서 최순실은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즈음에서 나는 제안하고 싶다. 광화문에 박근혜. 최순실 동상을 세우자! 비석에는 ‘파렴치한 자. 국정농단을 감행한 죄로 국민이 처단하다’란 글귀를 새겨 두자. 이 동상이 현재는 물론 훗날 자손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자. 이들의 동상을 보면서 개인은 자신의 위치와 정도를 알게 하고, 정치인들에게는 국민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면 언제든지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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