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동굴을 다녀온 지 하루 뒤 이수는 각조의 은닉호 작업실적을 점검하기 위해 작업장을 돌고 있는 이치카와 중대장에게 다가갔다. 이수는 중대장의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숨소리로 얘기했다.

“중대장님, 그 동굴은 식물 씨앗을 저장하는 곳이라기보다 거대한 보석창고였습니다.”

“뭐어?...그럼, 거길 들어가 봤단 얘기잖아”

“죄송합니다...식물의 씨앗이 가득할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전혀 관심 없는 보석과 마약들만 꽉차있던데요.”

이수의 얘기에 이치가와 중대장의 얼굴이 차츰 파랗게 질려갔으며, 공포로 가득 찬 눈이 조금씩 충혈 되었다.

한참 이를 꽉 물고 노기에 차서 신음소리를 내던 이치카와 중대장은 막사 안으로 들어가더니, 바삐 소지품을 하나 챙겨 밖으로 나와서 이수의 어깨를 낚아채고 다카쓰키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다카마타 기슭 류큐마쓰 나무 밑에 자리를 잡은 그는 그제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또 자세를 낮추라고 손짓했다.

그리곤 지도를 꺼내 자마미 마을 주민을 위한 개인방공호의 위치를 파악한 뒤 그 방공호를 찾아내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벙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거기는 두 사람이 어떤 얘기를 해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을 장소였다.

방금 전 중대장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 챙겨 나온 소지품은 알고 보니 술병이었다. 그건 아와모리를 5년 이상 익힌 구스(古酒)라는 술이었는데 중대장이 지금까지 아껴오던 품목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병째로 구스를 나팔 불더니,이수에게 술병을 건넸다. 이수도 벌컥벌컥 마셨다.

“이시타,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날일 거야. 그러니까 마음껏 마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오늘이 마지막이라뇨?”

“늦어도 이틀 뒤엔 미군들이 상륙할 거고, 나의 목숨도 이제 곧 끝이 날 거니까...근데, 내가 자네에게 그 동굴에 들어가지 말라는 건 자네가 저격병에게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야...전에 얘기했지만 자네의 선배인 히데오 형님에게 자네를 꼭 도쿄대학 식물표본실로 되돌려 보내겠다고 거듭 약속했으니까...”

“중대장님도...어떻게 저만 살아서 되돌아가라는 겁니까...중대장님도 함께 도쿄로 되돌아가셔야죠!”

“이시타, 진정하고...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봐...자네, 혹시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이 누군지 아나?”

“예?, 예...필리핀 제14 방면군 사령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그 분은 참 특이한 분이지...”

“그렇습니까?”

“이시타, 내가 싱가포르 전투에 참가했을 때 나의 사령관이 야마시타 대장이었어. 그분은 육사를 졸업을 한 뒤, 스위스 대사관 무관으로 발령을 받고 갔는데 그때 스위스에서 땅굴, 동굴, 터널의 유용성을 배운 거야. 스위스는 일찍이 알프스에 땅굴을 뚫어 주변의 강대국이 절대 정복할 수 없도록 대비했지. 그래서 야마시타 대장은 땅굴 파기를 무척 좋아하셨지...”

“그분의 그런 성향이 바로 시루에 있는 보석땅굴과도 관련이 있단 뜻입니까”

“그럼, 당연하지!...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분 얘기를 꺼내는 거지”
이치카와 중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구스병을 집어 들더니, 술을 목구멍으로 다시 한 번 털어 넣었다.

“이시타, 어제 제11선박단의 오마치 대령이 오키나와 본도에서 찾아와 저 오른쪽 해변 가를 심하게 감시하잖아. 저렇게 감시하는 까닭이 미군침투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면 여러 곳에서 경계를 펴야 할 텐데...오직 자네가 발견한 동굴 쪽만 감시하고 있잖아...”

“그럼, 제가 그 동굴에 그제 들어가지 않고, 어제 들어갔으면 사살될 뻔 했겠네요...”

“당연하지...어제 갔더라면 자네의 시체는 지금 하타키지 기슭에서 썩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오마치 대좌는 마루레 특공정을 점검하러 온 게 아니군요!”

“물론 특공정 점검이 공식적인 임무이지만, 동굴의 보석들을 확실하게 은닉하는 게 더 우선적인 것 같아”

“그렇다면 특공정 공격명령권을 우메자와 전대장에게 위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우메자와 전대장이 보석동굴에 대해 눈치챌까봐 못하는 거지”

“외람된 질문이지만, 우메자와 전대장도 모르는 사실을 중대장님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

“그 까닭을 말해주려고 지금 자네를 이곳에 끌고 온 거야”

“저는 그 동굴에 들어가 보고 황군이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많은 보석을 모았을까 궁금했습니다.”

[싱가포르 점령 일본군이 발행한 지폐인 바나나 노트]

“이시타, 자네 바나나 노트(Banana Note 바나나 지폐)가 뭔지 아나?”

“처음 듣는데요.”

“자네도 모르는 게 있구만...야마시타 대장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발행한 지폐의 이름이 ‘바나나 노트’이지. 그건 10달러짜리 지폐인데 거기에 바나나가 그려져 있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인 거지. 그 지폐엔 ‘대일본제국정부는 이 지폐를 소지한 사람이 요구하면 10달러를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적혀있어”

“그 이상한 10달러 지폐가 실제 잘 통용되었습니까?”

“처음엔 잘 통용이 되었지...하지만 군수조달 사정이 악화되고, 금괴와 보석을 감춰둔 싱가포르 중국인들에게 이를 빼앗으면서 지급하는 수단으로 쓰는 바람에 종이쪽지가 되고 말았지.”

“그러니까, 그때 바나나 노트를 주고 빼앗은 금괴와 보석 가운데 금괴를 제외한 귀중품은 바로 저 아래 땅굴에 묻혀있는 거군요.”

“자네가 확인해봤다니까...확실하겠지...나는 야마시타 사령관이 집적한 보석을 싱가포르 라자루스섬에 매장하는 작업을 담당했지...”

“그래서, 나카타 정보하사가 계속 중대장님을 감시하는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근데 어떻게 그 보석이 야마시타 대장이 전투중인 필리핀을 통해 이 자마미섬까지 가져올 수 있었을까요?”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