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요즘 스포츠계를 보면 ‘대단하다’는 혼잣말이 절로 튀어 나온다. 노장들의 선전,베테랑들의 부활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가(37)가 호주오픈을 제패하며 세계랭킹 1위를 탈환하더니, ‘쇼트게임의 마법사’ 필 미켈슨(48)이 4년 8개월만에 월드골프챔피언십(WGC)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일본 프로축구 J2리그(2부리그)에선 미우라 가즈요시가 51세의 나이로 이달 초부터 세계 최고령 출전 기록을 매주 경신해가고 있어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축구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우완투수 바톨로 콜론(45),미국프로농구(NBA) 가드 빈스 카터(41)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불굴의 노장들이다. 학문의 경지에까지 이른 첨단 신체관리 시스템과 엄격한 자기통제, 발달된 의학이 빚어낸 합작품들이다. 환갑의 프로축구 선수가 손자뻘 10대 선수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장면은 머지 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노장의 부활이 두드러진 분야는 단연 골프다. 침대밖으로 걸어나오지도 못했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3)가 준우승을 차지하고, 올해 55세인 로라 데이비스가 딸보다도 어린 선수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령 우승기록을 쓸 뻔했다.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한다’는 게 골프라는 말이 있긴 하다. 골프는 ‘멘탈스포츠’에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끼리 상대비교할 때나 통할 만한 얘기다. 주요 프로 투어의 지배그룹이 20대 초중반 골퍼라는 점에 주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쉼없는 비거리 경쟁을 뚫어야 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살벌한 투어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체력은 나이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필수 생존 덕목이다.
고령에 프로 골프 투어(competitive tournament)에서 우승한다는 건 그래서 귀하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나 여자 투어(LPGA) 에서도 오래 전 세워진 기록이 아직껏 깨지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런 지난함 때문이다. PGA 투어의 경우 샘 스니드(미국)가 1965년 그레이터 그린스버러 오픈에서 기록한 52세10개월8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LPGA는 베스 대니얼(미국)이 2003년 캐나다여자오픈에서 기록한 46세 8개월 29일이 1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노장의 분투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한계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남자든 여자든 20대 후반을 넘어서는 순간 근력과 관절이 탄력을 잃기 마련이다.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성공”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골프의 경우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 평균 비거리가 5야드가량 줄어들고,40대로 넘어가면 다시 7야드가,50대로 들어가면 또 다시 여기에서 13야드가 줄어든다는 통계(PGA 2016년)도 있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프로세계에서도 시간의 습격은 막지 못한다.
베테랑의 부활은 무형의 공공자산이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생애 커리어를 추동할 동기를 선물한다. 비슷한 또래의 동업자들도 자극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복귀 후 뜻한대로 골프가 풀리지 않던 타이거 우즈는 미켈슨과 페더러의 우승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서른 즈음에 일궈낸 ‘골든 슬래머’박인비(30)의 부활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박인비는 허리부상을 극복하고 1년여만에 LPGA 투어 19승째를 신고했다. 그가 말한대로 평창동계올림픽 성황봉송 주자로 뛴 경험이 은퇴로 굳어가던 생각을 돌이킨 가장 큰 계기일 수 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우즈나 미켈슨,페더러가 박인비의 재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생각이다.

샘 스니드의 최다승(82승)과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18승)기록을 깨는 것, 네 번의 허리 수술을 이겨내고 돌아온 황제 우즈의 인생 목표다. 아니카 소렌스탐의 메이저 최다승(10승) 기록에 도전장을 내민 박인비의 새 장정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경제신문 레저스포츠산업부 골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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