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나도 핵 단추가 있다”며 “김정은의 책상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고 경고했다. 불과 2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다.

북·미간 고조된 전쟁위기를 일단 잠재우고 남·북, 북·미간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은 현 정부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김정은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이 타이밍에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북측 행동의 시작은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측 선수단은 10여명 정도에 불과한데 140명의 대규모 응원단과 예술단까지 보냈다.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들고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공동입장에도 합의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한·미동맹을 이간질하고 핵 무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를 위한 노림수라고 비판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92개국이 참가하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전 세계 58개국 62개 언론사, 31개국 111개 방송사, 통신사 35곳에서 취재진 3,000여 명이 평창을 찾았다. 이 점이 북한에게는 대전환점이다.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 공동입장과 단일팀을 구성하여 평화공세를 폄으로써 지금까지 인식된 북한의 억압된 이미지를 평화의 모드로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이 시점에 평화의 모드로 전환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북·미 정상회담이다.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노동위원장의 제안을 즉각 수락했다. 당연한 결과다. 트럼프는 강한 승부 근성을 지닌 억만장자 협상가다. 그를 두고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같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공화당 예비 후보 토론에서 경쟁한 후보들을 공격해 한 명씩 때려 눕혔고,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까지 넘어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 수용한 것을 두고 “오로지 닉슨이 중국에 갈 수 있었듯, 오직 트럼프이니 북한에 갈 수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1972년 미·중수교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행보에 비유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사자같은 트럼프의 특성을 김정은은 역 이용한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포르노 여배우와의 과거 성관계설, 러시아 스캔들 후폭풍 등의 정치적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런 와중에 오는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중간선거 전에 트럼프는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져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그 다음 2년 후 재선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비핵화 등 더 큰 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랬을 때 트럼프의 정치적 이슈까지 잠재울 수 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이 대한민국의 무역압박을 하는 것도 트럼프의 정치적 의도를 감안할 때 11월 미국 중간선거에 가까워질수록 격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협상에서는 파워(power)가 중요하다. 직위, 재력, 명성, 영향력 등 상대가 인지할 수 있고 동등한 수준에서 협상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2017년 미국 GDP는 19조3000억달러, 북한은 313억달러로 추산된다. 국방비 예산은 미국이 6920억달러, 북한은 약 20억달러 수준이다. 346배의 차이가 난다. 이런 막강한 파워를 가진 미국의 트럼프는 왜 역사에 전계가 없는 회담에 'okay'라고 했을까?
파워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두 상대가 같은 높이 의자에 앉게 하는 것은 핵무기 효과다. 즉 북한이 핵무기라는 막강한 아젠다를 들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승낙할 수밖에 없다. 이후 양국은 중요도가 서로 다른 아젠다(핵 폐기, 경제적 원조, 한·미군사동맹 해체 등)를 활용해 서로 교환하는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협상의 종류는 이익중심과 관계중심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북한은 이익중심적 협상으로 일관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해오는 동안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핵 6자회담, 유엔결의에 의한 비핵화 압박,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 운영, 햇볕정책 등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 대가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 등 각종 도발뿐이었다. 일시적으로 보여준 김정은에 대한 긍정적·호의적 자세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제는 이익중심적 협상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정인호는 경영학박사 겸 경영평론가다. 주요 저서로는 『협상의 심리학』, 『다음은 없다』, 『HRD 컨설팅 인사이트』, 『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 『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 『화가의 통찰법』,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등이 있으며 협상전문가, HR 컨설턴트, 강연자, 칼럼니스트, 경영자, 전문 멘토, 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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