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 도전의 역사

입력 2012-12-03 21:21 수정 2012-12-04 16:53


지난 10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미국 3위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넥스텔을 201억 달러(약 22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가 합병되면 모바일 분야 매출에서 중국의 차이나모바일, 미국 버라이즌에 이어 세계 3위가 된다. 시장에서는 무모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2004년 적자였던 재팬텔레콤, 2006년 보다폰재팬, 2010년 윌컴을 인수해 모두 흑자로 전환시켰다. 1995년 2월 손정의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장 컴덱스를 매입했다. 그해 4월은 미국 인터넷 기업 야후의 주식을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되었다. 손정의는 늘 시대를 앞서가며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사업을 전개해 왔다. 

손정의는 1981년 자본금 1억 엔의 소프트웨어 유통업체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이래 대형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 30여년 만에 80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매출 3조 엔(약 41조원)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 올해 11월 일본 경제지 닛케이비즈니스가 발표한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손정의 회장은 혁신가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선정됐다. 올해 3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보도한 ‘일본의 부자 40인’에 따르면 그의 재산 규모는 69억 달러(약 7조5000억원)로 3위를 차지했다. 

핍박받는 조센징으로서의 청소년 시절 

손정의는 사형제 중 차남으로 1957년 8월 11일 일본 사가(佐賀)현 도서(鳥栖)시의 어느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2차 대전 이전부터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으로 번지수조차 없는 동네였다. 손정의 할아버지 손종경은 대구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열여덟 살 때 규슈로 건너왔다. 탄광에서 일을 하다 나중에는 사가현 도스시에 소작농으로 정착했다.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손정의의 아버지인 손삼헌이다.  

손정의의 부모는 각자 일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그는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은 그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과묵한 할아버지와 달리 늘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자부심도 있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독특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창조적인 면도 아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아버지는 늘 정의롭게 살아가라는 희망을 담아 그에게 ‘정의(正義)’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올바른 길을 가는 인간이 되라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그는 정도를 걸어갔다. 

그의 뇌리에는 판자촌에서 지내던 유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느 날 할머니는 그에게 물었다. “얘야, 진짜 가난하다는 게 뭔지 아니?” 그가 고개를 젓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난하다는 건 생활이 불편한 게 아니란다. 스스로 가난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가난이지.”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일본에서 최고야.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거야.” 어느 새 손정의는 최면에 걸린 듯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 될 것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일을 할 수 있어. 난 정말 천재인지도 몰라.’ 그는 일단 뭔가 한 가지를 믿으면 끝까지 밀어 붙이는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손정의가 가지고 있던 것이라곤 막연한 꿈과 자신감이 전부였다. 

초등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했을 뿐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 친구들이 그를 잘 따랐다. 많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시비를 분명히 가리고, 만약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으면 그 아이가 납득할 때까지 설득했다. “전 초등학교 시절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사람은 명령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공유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지요.” 이러한 깨달음은 훗날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충분히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M&A는 사업 확장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경영 기업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렸을 적 손정의는 교사나 화가 또는 사업가, 정치가를 꿈꿨다. 이들은 모두 독특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뜻하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교사가 되는 것은 국적 문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직업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업가와 정치가 중 사업가를 선택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유학시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손정의는 1974년 미국 세라몬테 고등학교에 편입했고 불과 3주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75년 홀리네임스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공부에 매진했다. 평균 수면시간은 세 시간, 길어야 다섯 시간을 넘기지 않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생활을 했다. 식사를 할 때도 목욕을 할 때도 공부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도 교과서에 눈을 떼지 않았다. 운전을 할 때도 강의를 녹음한 테이프를 헤드폰으로 들었다. 조금이라도 차가 막히면 즉시 책을 펼쳤고, 어떤 때는 책을 핸들 위에 놓고 한 손으로 운전하기도 했다. 

손정의는 홀리네임스 칼리지를 2년 만에 마치고,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 응시해서 합격을 했다. 응시라 해도 입학시험이 아니라 3학년 편입시험이었다. 홀리네임스 칼리지에서 버클리로 편입할 수 있는 학생은 전체의 10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던 경제학부에 편입할 수 있었다. 손정의가 미국 대학 중에서도 유독 버클리에 집착한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 학교일 뿐 아니라,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 때문이었다. 입학하고 가장 감탄한 것은 바로 컴퓨터 시설이었다. 컴퓨터실은 모든 학생들에게 24시간 개방되어 있었다. 그는 대학의 컴퓨터 시스템을 철저히 활용했다. 

당시 손정의는 부모로부터 한 달에 20만 엔씩 받아 왔는데, 이 액수는 가족들에게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그는 하루에 5분씩만 투자해 돈을 벌 방법을 모색했다. 당시 그에게는 자본도 인맥도 없었다. “맞아!” 갑자기 그의 머리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발명을 해서 특허를 취득하는 것이었다. 즉시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발명하는 거야.’ 

당시 손정의가 ‘아이디어 뱅크’라 부른 발명노트에는 무려 250개 이상의 발명품이 영어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1년 동안 기록을 한 결과 상당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지요.” 이런 자신감을 얻은 손정의가 발명해 낸 것들에는 하나같이 그의 개성이 듬뿍 담겨져 있었다. 

그는 발명의 과정에도 크게 세 가지가 있음을 깨달았다. 첫 번째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어떤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곤경에 처하게 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품이 탄생하는 경우다. 예컨대 단면이 둥근 연필이 있다고 치면 이런 연필은 책상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기 쉽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필의 단면을 육각형으로 만들자’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수평 사고에 의한 발명이다. 한마디로 역발상을 의미한다. 원래 동그란 것을 네모로 만들어 보고, 붉은 것은 하얗게 만들고, 큰 것을 작게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서로 다른 요소를 조합하는 방법이다. 새롭게 창조하기 보다는 기존에 있는 발명품을 합치는 방식인데, 예컨대 라디오 기능과 테이프리코더 기능을 합치거나, 오르골과 시계의 기능을 합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중에서 손정의가 가장 많이 활용한 방법은 세 번째였다. 이 방법이 성공적인 발명품에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인생 50년 계획’과 창업의 시작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만남이 있고, 하나의 행운이 필연적으로 또 다른 행운을 불러오기도 한다. 어느 날 대학생 손정의는 늘 가던 슈퍼마켓의 서점 코너에서 과학 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를 구입했는데, 그 속에 실려 있는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것은 바로 인텔이 발표한 i8080 컴퓨터 칩의 확대 사진이었다.  

“이제껏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그만큼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나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으면 손가락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느낌을 그 사진에서 받았습니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이 날 정도였지요.” 손정의는 그 사진을 오려 파일에 넣고는 가방 안네 늘 가지고 다녔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도 가지고 들어가고, 잠을 잘 때는 베게 밑에 놓아두었다. 사진은 반년 정도 지나자 너무 많이 구겨져 못 알아 볼 지경이 되었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열아홉 살, 대학 3학년이었던 그는 보통 학생들이 상상도 못하는 계획을 세웠다. 바로 ‘인생 50년 계획’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20대에는 반드시 사업을 일으키고 이름을 떨친다. 30대는 ‘적어도 1천만 엔의 자금을 모은다’는 큰 계획을 세웠다. 40대에는 ‘인생 최고의 도박을 한다, 즉 커다란 사업을 일으킨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50대는 사업에서 큰 성공을 이루고, 60대는 다음 경영자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열아홉 나이의 젊은이가 세운 계획치고는 엄청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손정의는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철저하게 따져 보았다. “좋아 발명으로 가는 거야.” 그의 발상은 상식을 초월했다. 1년 동안 특허 연구와 실용적인 발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결심한 것을 결사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1980년 손정의는 버클리를 졸업했다. 그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많은 것들을 이곳 버클리에서 배웠다. 그 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제 그의 목표는 일본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1년 뒤인 1981년에는 ‘유니손 월드’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다. 사무실은 2층짜리 목조건물에 있었다. 넓이는 10평 정도에 불과 했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시 손정의는 수입이 없었다. 마치 출구가 없는 터널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는 대학 때 했던 것처럼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업종을 선택하기 위해 갖가지 조건들을 나열했다. ‘벌지 못하면 사업을 하는 의미가 없다, 선택한 업계가 앞으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판단되는가, 자본이 너무 많이 필요한 사업은 안 된다, 젊었을 때는 적극적으로 도전한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사업을 하자, 10년 이내에 적어도 일본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사업 성공의 열쇠는 바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다’등 이런 항목은 25가지에 달했다. 

그는 종합점수가 가장 높은 사업에 평생을 바칠 각오를 했다. 허름한 목조 건물의 사무실 한 구석에 사과 박스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간 그는 사원과 아르바이트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매출은 5년 뒤에 100억원을 돌파하고, 10년 후에는 500억을 돌파할 겁니다. 궁극적으로 매출 규모를 1조, 2조 단위로 끌어 올리고자 합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지 1년이 넘어서야 손정의는 평생을 바칠 수 있는 분야가 컴퓨터 업계라고 확신했다. 앞으로 컴퓨터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디지털 정보 혁명은 바로 눈앞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1981년 ‘일본 소프트뱅크’를 설립했고, 분야는 컴퓨터용 소프트웨어의 유통사업 이었다. 1990년 일본 소프트뱅크와 노벨의 공동 출자로 노벨 일본 법인이 설립되었다. 같은 해 ‘일본 소프트뱅크’는 ‘소프트뱅크’로 회사 이름을 변경했다. 1994년 7월 22일, 소프트뱅크는 마침내 주식을 상장했다. 

손정의의 인생을 변화시킨 책들 

손정의는 전국 시대의 무사를 동경하고 있었다. 가문의 선조가 고려 시대의 장군이었다는 것은 할아버지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무사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손정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이며,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라고 밝힌 적이 있다. “존경하는 인물이란 자기가 그렇게 되기는 굉장히 힘든 인물이고, 좋아하는 인물이란 어딘가 결점은 있지만 굉장히 인간적이고 친밀감이 느껴지는 인물을 뜻합니다. 경영자 중에서 존경하는 인물이 마쓰시타 고노스케이고, 좋아하는 인물은 혼다 소이치로입니다.” 손정의는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전략을 구사하는 안목을 배웠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처럼 전략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업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러한 영웅들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킨 하나의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손정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이다. 이 작품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지사였던 사카모토 료마의 삶을 그린 역사 장편 소설이다. 

손정의는 이 작품을 지금까지 세 번 정독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열다섯 살일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던 때다. 주위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그는 자신의 처지가 료마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두 번째는 병원에 입원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큰 힘을 얻었다. 책을 읽다 보니 자신의 고민거리가 하찮게 여겨진 것이다. 세 번째는 1994년 6월 소프트뱅크의 주식을 공개한 직후다. 컴덱스와 지프데이비스를 매입하려던 그에게 주변에서는 무모한 투자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때도 역시 이 책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손정의는 빌 게이츠로부터 받은 한 권의 책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 책은 빌 게이츠 자신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인데, 첫 페이지에는 손정의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적혀 있다. ‘You are RISKTAKER as much as I am(당신도 나 못지않은 승부사군요).’ 손정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승부사라고 불리는 것은 저로서는 상당히 기쁜 일이죠. 게이츠는 저의 참모습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맥도날드 사장인 후지타 덴의 저서 <유대인의 상술>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손정의는, 규슈에서 상경해 후지타에게 직접 면회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후지타는 손정의에게 “만약 내가 자네만큼만 젊다면 요식업을 하지 않고 컴퓨터와 관련한 사업을 할 것이네”라고 말했다. 미국에 와서 컴퓨터와의 충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그는 후지타의 저서를 몇 번이나 탐독했다. 후지타는 책에서 ‘돈벌이는 좋은 일이다. 돈 그 자체는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일본식 윤리에 흠뻑 젖어 ‘돈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자기도 있던 손정의의 고정관념을 바꿔 주었다.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기업이라는 것은 창업자의 수명을 훨씬 넘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도 소프트뱅크는 200년 아니, 300년 후 까지 계속 성장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DNA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보수집단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손정의에게 종종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소프트뱅크는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사업다운 사업을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그런 사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일본에서 100년, 200년 앞을 내다보고 사람들의 생활방식 자체를 진화시키는 인프라를 발명하고, 창조하고, 제공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간 사업가가 있었습니까? 서구에서 발명된 자동차, 가전제품 등을 좀더 값싸고 좋은 품질로 만든 회사는 여태껏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결국 서구의 모방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업가 손정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저에게 사업이란 도로나 전기에 해당하는 사회의 인프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1876년에 벨이 세계 최초의 전화기를 탄생시킨 이래, 통신 인프라에서는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왔다. 에디슨이 전기를 활용한 발명을 연이어 성공시킴으로써 미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과 정보 대국이 되었다. “우리가 세계의 기술과 경제를 리드하는 날이 온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정보 분야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손정의의 인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도전 정신을 상실한 일본 재계에 쓴 소리를 던졌다. “보수적인 일본 재계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나의 도전 정신은 혼다, 소니 등이 가졌던 것이다” 이어 “그들은 광기와 같은 열정과 야망으로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으로 영토를 넓혔다”며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최근 일본 CEO들이 전투 정신을 잃은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0년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소프트뱅크 신30년 비전’을 발표하고 후계자 육성을 위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 학교를 개교했다. 그 때, 손정의 회장은 자신이 열아홉 살에 수립한 ‘인생 50년 계획’의 50대 계획을 실천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 대지진,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며 100억 엔을 기부하고,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기 위해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만약 손정의 회장에게 덕담 한마디 부탁하면 어떤 말을 들려줄까? 그의 어록이 많지만 아마 이런 말 아닐까. “도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한국적인 그리고 한국의 CEO 문화와 트렌드를 연구하는 한국CEO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영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CEO 커뮤니티인 다음카페 IamCEO의 대표시삽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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