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와 막걸리

입력 2010-01-18 16:00 수정 2013-07-08 14:46


전국이 막걸리 열풍이다. 열풍을 넘어 거의 태풍 수준이다. 백화점의 막걸리 매출액이 와인을 앞질렀다는 소식도 들린다. 햅쌀 막걸리인 ‘막걸리누보’, 호텔의 ‘막걸리 칵테일’, 연말연시 ‘막걸리 선물세트’, ‘막걸리 엑스포’ 등 막걸리의 진화는 알 수 없을 정도다.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오찬에서는 와인 대신 막걸리로 건배가 이뤄졌다.




수 년 전만 해도 와인이 심장병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 등으로 와인이 대세였다. 웰빙을 도모할 수 있는 건강주로 인식되었다.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11년 만에 와인 수입이 감소되었다. 막걸리는 한류 열풍을 타면서 일본 역대 수출량의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 열풍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와인 열풍이 불었던 당시 ‘와인을 모르면 비즈니스를 논하지 말라’는 정서가 대세였다. 20년이 넘게 막걸리를 즐기던 필자에게 불어 닥친 와인 ‘유행(fashion)’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이 컴퓨터 같은 기계도 아닌데 타인이 던져주는 정서를 자신의 철학과 프리즘으로 살펴보지 않고 덥석 받아들이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갑자기 와인 모임이 많아졌고, 필자는 늘 막걸리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와인을 폄하하지도 않고, 더구나 막걸리를 신격화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와인을 마시면서 농부의 땀과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몰입되기도 한다. 와인 얘기하는데 촌스럽게 막걸리 타령이냐고 타박이 많았다.




열풍에 갇힌 그들에게 무엇 때문인지 묻고 싶었다. 와인 열풍의 주역들은 지금 막걸리 전도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개인의 기호와 편향에서 찾을 거리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사라져가고 있다. 쇄국정책의 무심함으로 인한 폐해 때문인지, 앞서 가는 나라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우리 정서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경영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독일 신학자 본 회퍼 목사는 ‘신이 없는’ 폭압적인 나치정권 속에서, ‘신 없이 신 앞에’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다가 종전을 앞두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고뇌의 무게와 처절함에 숙연함을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기업 활동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까. ‘경영 없이 경영 앞에’, ‘고객 없이 고객 앞에’, ‘직원 없이 직원 앞에’가 이 시대 어떤 의미를 가질지 궁금하다. 




‘식스시그마, ‘블루오션전략’ 같은 경영 패션도 주어지지 않고, 남은 경영의 불씨가 아무 것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까. 이제부터 자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 것이 아닌 타인의 흔적들을 걷어내면 홀가분해지고, 심신도 맑아진다. 필자의 비즈니스 모토 중 일상에서 가장 많이 되새기는 것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 교수는 2008년 출간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 에필로그에서 두 권의 책 <러브캣 Love Is the Killer App>, <러브마크 lovemarks>를 소개한다. 필자가 처음 ‘사랑’을 경영의 최고 정수로 소개할 때 주위 반응은 냉담했다. 2003년 당시 출간된 <러브캣>을 접하고 깊은 사상적 동질감을 가졌고, 2005년에 접한 <러브마크>도 고객만족을 넘어 ‘진정으로 고객을 생각하는 적절한 표현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만난 책이다. 이제는 대중화된 단어인 ‘러브마크’ 파급에도 일조를 얹었다. 칼럼에 자주 소개하고, 만나는 이들마다 ‘러브마크’란 단어가 건조한 경영세계에서의 명징한 의미를 설파했다.




와인 열풍이 그렇듯 막걸리 열풍도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막걸리가 피부색이 투명해지고 기미, 주근깨를 예방해주는 좋은 술로 인기가 좋다는 국내 언론소식이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부터 열풍이 막걸리 시작됐다. 우리가 하대하던 막걸리에 대한 존재감이 타국에서의 미용, 건강이라는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접근이 기폭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개인이 와인이든 막걸리든 무얼 마시든 상관없지만, 적어도 경영일선을 진두지휘를 하는 경영자는 트렌드와 문화에 민감해야 한다.




필자가 ‘사랑’을 경영의 모토로 삼은 것은 언어유희가 아니다. 한국적 경영의 본질을 고민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1999년 미국에서 식스시그마 연수를 받고 즉시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당시 식스시그마를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현장에 이론을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식스시그마가 단순히 해외의 경영이론이 아닌 그들의 문화와 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에서 어떤 기업에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서양의 경영이론이 직원들의 정신과 정서에 합일되지 않는 한 성과는 일천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장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성과도 만들어 내면서 얻은 결론이 한국적 경영의 혼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굳게 생각했다. 보통 사랑이 아닌 ‘어머니의 사랑’은 서양인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신적 영역이다. 또한 ‘어머니의 사랑’은 마법이다. 필자는 대학시절 진리를 깨우친다는 목표아래 정신적인 극한의 영역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비즈니스 고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어머니의 사랑’ 같은 절절함으로 내려가니 어느 순간 문제점들이 눈 녹듯이 해결되는 경험도 있었다.




고객을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깊은 마음으로 대하다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식스시그마 같은 프로세스를 굳이 만들 필요도 없다.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만들다 보면 세월이 지나고, 금방 구닥다리가 되고 만다. 존슨앤존슨의 크레도(Credo; 기업신조) 같은 경우는 괜찮은 것 같다. 직원들의 마음을 울리고 초심을 회복할 수 있다면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조 한 장이어도 좋다. 타인 방식을 곁눈질할 필요도 없고, 우리에게 안성맞춤이면 부끄러울 것도 없다. 다만 기업 구성원들의 정신적 공감과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순간 세계적 경영 석학들이 만든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초우량기업의 조건>등에 언급된 프로세스, 시스템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가장 큰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시공간의 차이(gap)'다. 해당 이론을 수입하는 순간 이미 우리와 ‘시간적 격차’가 발생한다. 또한 어떤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조사하고 실험한 서양 경영이론은 우리 문화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즉 오래 전 발표된 이론들은 현재 우리 상황에 비추어 보면 고려할 변수가 많고, 역동적이고 복잡한 각 기업 상황에 부합하는 해답을 주기가 어렵다. 내 길은 스스로 노력해서 찾는 것이 정답이다. 장자는 ‘길은 걸어가는 데서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고 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외부에서 해결점을 찾았던 작업들이 장대한 성과를 얻었다고 들은 적이 많지 않다.




최근 대기업 점포의 개점 고사에도 막걸리가 등장한다고 하니, 새해 시작은 직원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나누는 것도 좋겠다. 인간은 정신이 없는 기계가 아니고,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의 유전자가 막걸리를 그리워하듯, 이제 세계 일류 상품이 전부가 아닌 글로벌 세계에 널리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경영 혼’을 찾고 현장에 접목하는 일이 중요하다.
[출처] 한국경영자총협회 월간지 '경영계'(2010. 1월호) /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
한국적인 그리고 한국의 CEO 문화와 트렌드를 연구하는 한국CEO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영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CEO 커뮤니티인 다음카페 IamCEO의 대표시삽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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