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이러한 논리를 펴면서부터 여자는 더욱 설 곳이 없어졌다. 여자는 끽해야 남자의 갈비뼈 두 개? 여성비하의식은 기독교가 최악이다. 성서의 그 어느 곳에도 무리의 수를 헤아림에 있어 여자는 없다. 아이도 사람으로 취급되지 못했다. 왜? 누가? 무슨 권리로? 남자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여자를 만든 남자들의 하나님이? 기껏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그 하나님조차도 여자와 어린 아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이 목적하는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왜? 기독교인이라 자칭하는 여자들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일까?

논리에 맞지 않는 이론으로도 인류가 이 만큼이라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자들의 너그러운 아량 덕이라는 사실을 남자들은 알까? 초기 인류는 결코 기독교식의 구분 짓기와 같은 주장을 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들은 그랬을 것이다. 그들의 영혼만큼은 순수하고 맑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일을 했고 그저 그렇게 함께 살았을 것이다. 기독교가 남자와 여자를 갈라놓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을 것이다. 종교철학자들이 가증스럽게도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기준을 정하고, 가치를 매기고,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저 함께 둥글둥글 사는 것이 삶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초기 인류는 여자를 두려워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 내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여자들은 자신들과 다른 존재, 아니 더 우월한 존재라 여겨 ‘대모신’을 만들어 추앙한 문헌과 조각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언제부터 남자가 이리 오만해지고 교만해졌는가? 그 시점을 생각해 봐야한다. 남자! 그들이 만든 세상! 과연 칭송 받을 만 한가? 여자의 몸을 빌려 생명을 얻고도 그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언제까지 알량한 힘자랑을 할 것인가?

여자를 업신여기는 자 치고 그 생이 평탄한 자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여자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인간존재의 근본 물음을 무시하는 가장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못된 짓을 하는 인간들은 과거나 현재나 늘 그렇듯 얇은 앎을 전부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일컬어 지식인이라 자부한다. 뭘 안다고! 자신의 앎이 정말 아는 것인지 조차 생각해 보지 못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들이 인간의 가치를 운운하며 기준을 만들고 규칙을 세워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여자들은 이렇게 어리석고 무지한 남자들이 만든 세상에서 숨죽이고 살았다. 모든 걸 주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참고 또 참지만 그 또한 여자인 죄로 말없이 감내해야 하는 벌이라 생각했다.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 여자에게 씌워진 올가미는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여자의 의무이자 굴레라고 세뇌 당했다.

‘데리고 살아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나나 되니까 너 데리고 살아주는 거야.’
‘여자가 어디서 남자한테 대들어?’
‘조신하게 있어야지 어디 여자가 방정맞게 설쳐대고 다니는 거야? ’
‘이리와 술이나 따라’
‘예쁘니까 봐준다. 오늘 오빠가 데리고 놀아 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내 동생 같아서 너 만져주는 거야. 고맙게 생각해. 말을 잘 들어야 예쁘지’
‘말 듣는 거 봐서 오빠가 네 소원 들어줄게’
‘여자는 얌전한 맛이 있어야지. 건방지게 까불면 안 돼.’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뭐 한다고 돌아다녀?’
‘여자가 그렇게 드세서 어디다 써먹어?’
‘여자는 밤일 잘하고 살림 잘살고 아이 잘 키우면 최고야’
‘여자는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뜰히 살림만 잘 살면 돼.’
여자 여자 여자....

남자를 힘과 권리로 상징한다면 여자는 복종과 순종으로 상징된다. 언제까지? 인간에게 남녀 공히 교육이라는 것을 시키기 시작했다면 남자들은 진즉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그것이 싫었으면 영원히 문맹인으로 두었어야 했다. ‘미투운동’ 사실 너무 늦었다. 곪고 또 곪아 더는 썩어나갈 살점도 없다. 고통의 소리가 심해에서 울려도 코 막고, 귀 막고 그저 그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빌며 살았다. 많은 여자들이 수세기를 살아오면서 그렇게 견뎌내고 버텨내었다. 더러운 인간들이 세상이라고 만들어 놓고 남자놀음 하는 동안 죽어나간 여자들의 시체는 하늘을 가린지 오래되었다.

용기! 용기 있는 행동이란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 일이 용기를 내어야 될 일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처음부터 주어진 권리가 아니었기에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아픈 이야기다. 그 누구도 또 다른 인간의 가치를 함부로 규정지으면 안 된다. 양심에 손을 얹고 더는 나쁜 사람으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남자! 하지만 명심하시라! ‘남자들의 미투운동’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미경사람연구소(구.정신분석연구소.사람과삶) 대표로 정신분석가이다. 집단상담 및 개인심리상담치료가 및 작가로 아동.청소년. 노인문제, 가정폭력문제, 성희롱 및 성폭력 상담과 교육. 인성교육 및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남자요리99] [여자마음설명서]가 있고 [여자마음설명서]는 네이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필명은 글보리입니다. 필명 글보리는 글을 씀으로서 쓰는 이도 깨닫고 그 글을 읽는 이에게도 깨달음을 주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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