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떤 ‘끌림’이었다. 때로 그 끌림은 너무 강해서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항거해봤자 거기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서이수가 도쿄대학을 다니면서 쓰쿠바산에 가서 식물채집을 할 때 희귀식물을 발견해내는 초월적 재능에 대해 교수와 동료연구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수의 이 기막힌 재능의 원천은 ‘끌림’이었다. 이 끌림은 지식, 경험, 직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굳이 현상적으로 풀이하자면 일종의 ‘바람결’ 같은 것이었다.

이곳 자마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은 항상 방향 없이, 두서없이, 규칙 없이 펄럭거리지만 때론 그 속에 세차게 끌어당기는 ‘끌림’이 섞여 파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고, 그 끌림은 귓바퀴, 코끝, 머리카락 틈새로 감지되었으며, 언제나 이수의 삶을 뒤흔들어놓는 방향으로 그를 이끌고 갔다.

이수는 오늘 아게나시쿠섬과 가히섬 사이의 초록바다 표면을 흔들어놓은 뒤 시루해안으로 타고 올라오는 바람결 사이에 지금까지 감지하지 못했던 자기장 같은 끌림이 그를 시루 언덕배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수는 조선군부들이 뚫고 있는 특공정 은닉호의 붕괴를 막기 위한 목재를 조사한다는 핑계로 자마미섬 거의 모든 곳을 샅샅이 찾아다녔는데 하필 막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이 언덕만 올라가본 적이 없었다.

그 등성이를 100m정도 올라갔을까. 근데 2개의 천매암 바위 사이에 일그러진 세모꼴의 검고 작은 구멍이 보였다. 그 작은 틈은 누군가가 나뭇가지와 천매암 부스러기로 위장해놓았는데 그 흔적을 들추자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깊고 넓은 동굴이 펼쳐졌다.

“아니, 이렇게 거대한 자연동굴 ‘가마’를 발견해놓고도 곡괭이로 천매암을 뚫어 인공땅굴을 만들려고 우리 동지들에게 마구 채찍질을 해댔다니...”

울컥 분노가 솟아올랐지만 이수는 찬찬히 동굴 안으로 들어가 더 살펴보기로 했다. 동굴 안으로 5m정도 들어가 봤는데 동굴의 폭이 뜻밖에 넓었고 바닥도 평평하게 다져놓은 상태였다.
“우리 동지들은 이 동굴에서 300m 아래쪽에 매일 돌을 깨 동굴을 뚫느라 초죽음 상태인데 여기에 이런 커다란 자연동굴이 있는 걸 몰랐다니...”

[자마미섬 천매암이 그린 동양화...조선인 군부들은 이 바위들을 곡괭이 하나로 깨 특공정은닉호를 만들었다]

이수는 해상정진 제 3중대 벙커와 야마토마 정비중대호를 뚫느라 두 달간이나 죽을 고생을 했었는데 이곳을 벙커로 활용한다면 더 이상 군부동지들을 고생시키지 않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들떴다.
이수는 한시바삐 이곳에 큰 자연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이치카와 중대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동굴 밖으로 달려 나와 숨을 헐떡이며 후루자마미 해안에 있는 제 103 수근중대 본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중대장님, 제가 저 시루해안 100m 언덕 위에서 우리의 전략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커다란 가마(ガマ) 1개를 발견했습니다.”
“어? 뭐? 뭐라구?...”
“예, 분명히 지도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굉장히 큰 자연동굴을 발견했는데, 중대본부호로 활용하기에 적합할 것 같습니다.”
“허어...이 사람이...자넨 자기 할 일이나 하지...왜 필요 없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이치카와 중대장은 갑자기 짜증과 불안과 공포가 섞인 음성으로 한마디를 던진 뒤 한참 이수를 노려보더니, 그답지 않게 막사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고 두리번거리며 곤혹에 짓눌린 표정을 지었다.
이수는 이치카와 중대장이 이런 애매함과 당혹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건 지난 몇 달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의 태도는 길을 지나다 예기치 못하게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낭패한 모습이었다.
누구의 앞에서든, 어느 장소에서든 단호하기 그지없던 이치카와 중대장의 눈초리는 조금씩 힘없이 허물어졌다.

중대장은 다시 막사 밖을 내다보며 비굴할 만큼 몸을 사리더니 바깥을 거듭 살펴보고 난 뒤 주변에 별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이수에게 빨리 따라오라며 밖으로 나갔다.
언제나 침착하던 이치카와 중대장의 몸짓이 오늘은 너무나 과장되고 움찔거리는 모습이 이수로선 참 생경하게 다가왔다.
잠시 후 이치카와 중대장은 이수가 발견한 가마와의 오른쪽 방향인 다카쓰키산 언덕을 조심스럽게 올라가 하타키지 방공호 위에 있는 흑요암 바위틈새에 이르자 큰 한숨을 내리 쉬며, 이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참 동안 숨고르기를 했다.

“이시타...그 은닉호에 갔다가 중대막사로 올 때 자네를 미행한 사람은 없는 거지?”
“네?...네, 미행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시타, 그 가마에 대해 알거나 발설하는 사람은 군인이든, 군부든, 주민이든 무조건 총살당해. 아니 총살이라기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당해. 그 은닉호에 접근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저격병이 이 산기슭에 함상 잠복해있다고...얼마 전 야채 죽을 끓여먹기 위해 산나물을 뜯으려고 그 은닉호 근방을 얼씬거리던 자마미 주민 2명이 저격을 당했어.”
“그래요? 대체 그 은닉호에 뭐가 들어있는데요?”
“나야, 모르지. 근데...오마치 선박단장을 따라다니던 후배의 얘기에 따르면, 그 동굴 속엔 동남아에서 가져온 희귀한 식물의 씨앗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약초, 독초, 마취제 등 일본에서 구할 수 없는 많은 식물들을 보관하는 중이라는 거야 ”

“중대장님, 그렇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라도 그 속을 한번 들어 가봐야 하겠는데요?”
“자네, 정말 미쳤어?”
“예, 중대장님, 저는 본디 식물에 미쳐 있잖습니까?”
“이 사람아, 미치더라도 목숨을 유지해야 제대로 미칠 수가 있지...저격을 당해 죽고 나면 미치지도 못해...요즘 나카타 정보하사가 선박단의 명령으로 그 은닉호 주변을 감시하고 있어. 지금도 그놈이 우리 근처에 숨어서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라. 이시타, 그러니까 제발...제발, 그 은닉호 근방엔 얼씬도 하지 마”
“예, 중대장님...”
“이시타, 그 가마에 다시 들어가면 우리가 맺은 ‘형제의 의’는 끝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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