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세계에도 완장은 있다

입력 2007-10-02 11:01 수정 2007-10-02 11:01
 

80년대 방영된 TV문학관이란 프로그램에서 잊어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윤흥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완장’이다. ‘권력의 남용’이란 관점도 있었지만, 개인이 권력이란 프리즘을 통해 어떻게 변해 가는지에 대한 과정이 더욱 흥미로웠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완장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자수성가형 A사장은 직원들을 마치 자신의 재산처럼 취급한다. 일단 회사에 출근하는 순간 감옥이 된다. 그러니 창의나 자발성이 있을 리 없고 직원들은 늘 무력감에 시달린다. 일반기업에서 적용되는 직원들의 복지나 처우에 관한 규정은 딴 세상이야기다. 심지어 직원들의 정신세계까지 점유하려고 하고, 휴일에는 경영자가 속한 종교 활동에 참가해야 하는 고역도 있다. A사장은 기업규모가 크기 전까지는 아량도 있고 베품도 아는 분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실무에는 밝지만 전문적인 경영지식은 취약했는데 어느 정도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마치 본인의 경영의 신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아주 기본적인 경영의 상식도 철저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A사장이 말이 법이 되었다.  




당시 필자가 A사장에게 전달한 편지 일부를 소개한다. “태조 왕건이란 TV드라마를 보면 최응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왕건의 책사로 국정전반에 대해서 왕건에게 건의하고 왕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왕건의 위대함이란 최응의 의견을 진실 되게 듣고 그의 정책을 대부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왕건이 최응의 의견을 국가경영에 반영하지 않았다면 많은 업적들이 불가능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타 기업 인수 건에 대해서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작은 제품을 하나 구매할 때도 일반적으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사용 후기도 보고, 대형마트도 직접 방문하여 종합적으로 정보를 취합해 구매 결정을 하는데,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기업인수를 마치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건 사듯이 즉흥적이며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비용의 일부라도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베풀 수 있었다면 얼마나 존경받는 경영자이겠습니까.




사장님께 진심으로 몇 가지 충언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이제부터라도 ‘상식과 원칙’을 준수하며 올바른 ‘정도경영’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둘째, 지금부터도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정말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어떤 수준인가. 학력을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중졸학력의 60대 중견출판사 B사장이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청소년들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문과에서 1등을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B사장님처럼 돈을 버십시오. 정말 한탕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그 한탕으로 인해 더 큰 불행이 닥쳐 올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돈을 버셔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없습니다. 모르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모르면 열심히 배우십시오. 어린아이에게도 머리 숙여 배울 줄 알아야 하고, 직원들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모든 이는 나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A사장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필자가 CEO연구가의 길을 가도록 계기를 제공한 또 다른 완장인 C사장과의 악연도 떠오른다. 필자는 대기업 10년 생활을 마감하고 벤처열풍의 끝물인 2000년 정보통신기기를 제조하는 D기업에 입사를 했다. 첫 이직이었는데 부풀은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기업문화에서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치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비교되듯 일 하는 방식에서 확연한 수준차이가 있었다. 더욱이 패거리 문화는 대기업보다 더욱 심했다.




D기업의 창업자는 정보통신 대기업 출신 연구원인데 무리한 시설투자와 매출감소로 인한 경영압박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회사는 설립 초기 투자금을 지원해준 기업에 인수 되었고, 당시 관리본부장이었던 C사장이 회사대표로 등장하게 되었다. 검증되지 않은 자기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하고 전횡이 시작되었다. 신규로 유치한 투자금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필자는 당시 유행하던 키워드인 ‘모럴 해저드’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C사장과의 추억으로 인해 CEO가 되고자 하는 많은 직장인, 젊은이들에게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온라인에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CEO연구가의 첫 발이었다.




모든 이에게 크고 작은 완장이 있다. 아름답고 선한 완장도 있고 악취와 비인간적인 완장도 있다. 진짜 내공이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완장보다는 덕과 인격으로 자신을 조용히 드러낸다. CEO가 된다는 것은 큰 완장 즉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더욱 타인과 고객을 응시해야 하며 철저한 자기절제가 가능해야 완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의 조강지처가 된 작부 부월의 이야기는 완장 찬 이들의 폐부를 찌른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 본 칼럼은 머니투데이(2007. 9. 22) ‘김대리 CEO되기’ 코너에 기고된 글입니다.
한국적인 그리고 한국의 CEO 문화와 트렌드를 연구하는 한국CEO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영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CEO 커뮤니티인 다음카페 IamCEO의 대표시삽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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