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김용준 프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산 사나이 백 선배가 그로부터 한 주 남짓 뒤에 열린 B컨트리클럽 클럽 챔피언 선발전에서 선전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말이다.

 

선발전에는 총 열 여덟 명이 출전해 첫날 9등까지 컷오프(cut off)하고

둘째날 결선을 치른다.

스코어는 이틀 합계다.

 

백 선배는 첫 날 9등 안에 들어 결선에 진출했다.

첫 날 스코어는 92타.

둘째날도 같은 점수를 냈다.

 

본인이 싱글 핸디캐퍼이거나 엄청난 점수를 내는 아마추어 고수가 가까이에 있는 골퍼라면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B컨트리클럽은 뱁새에게도 어려운 골프장이다.

그리고 챔피언 선발전은 전에도 얘기한 것처럼 블루티에서 치렀다.

B클럽 블루티는 조금 짧은 골프장이라면 맨 뒤 티나 마찬가지로 길어서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명색이 ‘골프 룰을 원칙대로 다 따지는’ 공식 대회 아닌가?

 

우선 컨시드(이른바 오케이)가 없다.

아웃 오브 바운드(OB)가 나면 제자리에서 다시 쳐야 한다.

해저드에 볼이 들어가도 룰 대로 엄격하게 구제받아야 한다.

 

이틀간 경기는 대한골프협회 원로 경기위원이 심판을 맡았다고 한다.

 

굳이 심판이 없었더라도 백 선배는 그가 아는 한 룰을 다 지켰을 것이라고 뱁새는 믿는다.

 

“김 프로가 말한 대로 룰 다 지켰어!”

백 선배는 선발전 결과를 전하면서 이 대목을 강조했다.

 

“고수들이 참가할테니 룰까지 어겨가며 욕심을 부려도 어차피 우승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룰도 절대 어기지 말고 매너도 잘 지켜서 클럽 회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으시는 게 어떠냐"

뱁새는 출전 며칠 전 룰 교육을 하면서 백 선배에게 조언한 기억이 났다.

엄격한 룰이 아니더라도 ‘대회가 주는 압박감'도 얼마나 컸을지 뱁새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대회에서 클럽 상수들 틈에 끼어 좋은 성적으로 당당히 첫날 예선을 통과한 백 선배가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잘 쳐서 멋있기도 하지만

잘 치기 위해서 준비한 두 달 동안 그가 한 일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는 표현하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땀 흘린 대가로 백 선배가 얻은 기쁨은 챔피언 선발전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한 주쯤 지나 백 선배가 카카오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스코어 카드였다.

저 아래로 북한강(남한강인가? 에고)이 내려다 보이는 경기도 양주CC 것이었다.

 

거기에 적힌 백 선배 스코어에 뱁새는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76타!!!!'

 

동반자 네 사람 가운데 으뜸이었다.

백 선배 다음으로 잘 친 사람은 80타 중반.

나머지 두 사람은 90타수대를 기록했다.

화이트 티에서 쳤다고 해도 너무 좋은 점수다.

 

뱁새는 한 번도 백 선배와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를 해 본 적이 없다.

대회를 준비하느라 B컨트리 클럽 블루티에서 그가 플레이 하는 모습만 본 것이다.

 

“선배님! 축하 드립니다”

뱁새는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하며 백 선배에게 후딱 전화를 했다.

 

“오늘 내가 요 녀석들 한 번 죽여 버렸지”

이 한 마디에 주체 못할 정도인 그의 기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백 선배가 한 말 그대로다. 1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 때 백 선배의 그 목소리는 귀에 생생하다)

 

76타는 백 선배의 라이프 베스트(최고 기록)이라고 했다.

조금 더 젊어서는 제법 잘 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이런 스코어를 낸 적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기 플레이에 늘 아쉬워하며 골프를 했는데 50대 후반에 라이프 베스트를 경신하니 너무 기분 좋다"

백 선배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날 함께 친 동반자가 모두 친구들이란다.

그 동안 설움을 준 친구들에게 본 때를 보여줬을 백 선배를 떠올리니 뱁새는 저도 모르게 입가가 귀 쪽으로 올라갔다.

 

백 선배가 76타를 기록한 것은 그날 한번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 다음주에도 다른 골프장에서 또 76타를 기록했다.

 

두 번째로 스코어 카드를 보낼 때도 처음처럼 펄쩍 뛰며 좋아하는 백 선배 목소리를 전화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백 선배는 파인비치CC에 간다고 했다.

뱁새 고향인 전남 해남 바닷가에 있는 골프장으로 멋지다는데 아쉽게도 뱁새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누가 불러주지 않아서요. 혹시 애독자 여러분 거기 가실 일 있으시면 저 좀 초청해 주세요!)

 

“캐디가 나더러 나이도 적지 않으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멀리 치세요라고 말하더라니깐!”

파인비치에 다녀온 백 선배는 전화를 걸어  ‘트랙맨으로 측정한 숫자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뱁새에게 전했다.

 

뱁새의 띠 동갑 백 선배가 장타자 싱글 핸디캐퍼로 거듭난 것이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말이다.

 

‘불가능은 없다’
‘진짜로 불가능은 없다’

백 선배가 뱁새 김프로에게 온 몸과 마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것도 단 두 달만에.

(백 선배 올 해는 함께 라운드 하시게요. 파이팅!)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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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smithkim@gmail.com

꽃이 몇 종류인가? 이렇게 많은 꽃처럼 사람마다 꿈도 다양하다.꿈 꾼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뱁새 김용준 프로는 백 선배와 함께 하면서 배우게 됐다. 여의도 롯데캐슬 상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뱁새가 저도 모르게 사진에 담았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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