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캐는 이들을 위한 노래(鑿氷行)

                                                   김창협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어니

천만 사람 우르르 강 위로 나왔네.

쩡쩡 도끼 휘두르며 얼음을 찍어내니

울리는 그 소리가 용궁까지 들리겠네.

찍어낸 층층 얼음 설산처럼 쌓이니

싸늘한 그 음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네.

아침마다 등에 지고 빙고에 저장하고

밤마다 망치 들고 강에 또 모이누나.

해 짧은 겨울 밤 늦도록 일을 하니

함께 부르는 노동요 모래톱 이어지네.

짧은 옷 맨발은 얼음 위에 얼어붙고

매서운 강바람에 언 손가락 떨어지려네.

고대광실 오뉴월 무더위 푹푹 찔 때

미인이 고운 손으로 맑은 얼음 건네고

난도로 그 얼음 깨 온 자리에 돌리면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 피어나리.

그렇게 즐기는 사람들 무더위 모르거니

얼음 깨는 수고로움을 그 누가 말해주랴.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서 더위 먹고 죽어가는 백성들

대부분 강에서 얼음 캐던 사람이라네.

季冬江漢氷始壯 千人萬人出江上

丁丁斧斤亂相斲 隱隱下侵馮夷國

斲出層氷似雪山 積陰凜凜逼人寒

朝朝背負入凌陰 夜夜椎鑿集江心

晝短夜長夜未休 勞歌相應在中洲

短衣至骭足無屝 江上嚴風欲墮指

高堂六月盛炎蒸 美人素手傳淸氷

鸞刀擊碎四座徧 空裏白日流素霰

滿堂歡樂不知暑 誰言鑿氷此勞苦

君不見 道傍暍死民 多是江中鑿氷人

 

조선 숙종 때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시다.

그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사약을 받고 죽자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은거했다. 아버지의 누명이 풀린 뒤 예조참판, 이조참판, 대제학, 예조판서 등에 임명됐으나 끝내 사양하고 글공부만 했다.

그의 성정은 부드럽고 문장은 단아했다. 그러나 시의 소재는 거침이 없었다. 이 시 ‘얼음 캐는 이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에서도 부역에 동원된 백성의 참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옷도 신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두꺼운 얼음을 도끼로 찍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이야 제빙기술과 냉동고 덕분에 편해졌지만 옛날엔 사정이 전혀 달랐다. 한겨울 강에서 채취해 빙고에 보관했다가 봄부터 가을까지 써야 했으니 얼음값이 금값이었다.

《삼국유사》 신라 유리왕 대목에 얼음창고 얘기가 처음 보인다.《고려사》에는 정권 실세가 사사로이 개인 빙고를 채우는 바람에 백성들이 괴로워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개인 빙고를 금지하고 국가가 관리했다.

지금의 동호대교 부근 동빙고의 얼음은 왕실 제수용으로 썼다. 용산의 서빙고 얼음은 여름에 벼슬아치와 70세 이상 퇴직자 등에게 배급했다. 무료병원인 활인서 환자와 감옥 죄수들에게도 나눠줬다고 한다.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정작 그림의 떡이었다.

동빙고에는 1만여개, 서빙고에는 13만여개가 보관됐다. 엄청난 양이다. 얼음이란 가장 추울 때 채취하는 것 아닌가. 왕이 술과 음식을 내려 위로했다지만 백성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서빙고를 불태우는 사건까지 발생했을까. 부역에 동원되면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렇게 추위에 떨며 얼음 캐던 사람들이 이듬해 여름 땡볕 아래에서 더위 먹어 죽어가다니…. 눈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밝은 분위기의 다른 시 한 편도 함께 감상해 보자.

     어느 달 밝은 밤 흥에 겨워서

달 밝은 밤 밝게 웃고 떠드는 소리

누각 위에 우리 딸들 노니는구나.

푸른 강은 얼음 녹아 봄날 같은데

둥실둥실 떠가는 한 쌍의 청둥오리.

아이들은 주렴 걷고 바라보느라

추운 밤 누각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늙은이 혼자 앉은 바로 이 순간

빈 배 마주하고 나직이 시를 읊노라.

月明笑語喧 樓頭兒女游

綠江渙如春 花鴨一雙浮

卷簾相指似 夜寒不下樓

老子方獨坐 微吟對虛舟

딸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과 자신이 홀로 누리는 흥을 그렸다. 불과 한두 달 뒤에 불어닥칠 광풍과도 같은 사건을 본인은 알지 못했겠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을 잘 포착해 낸 작품이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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