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자존감이 키를 키워준다니, 자존감이 성장 호르몬과 무슨 관계라도 있단 말인가? 내가 아는 한 이 둘의 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분명 자존감이 ‘나의’ 키를 크게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 키는 173cm이다. 여자 키로는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어릴 때부터 ‘진짜 크다’, ‘너무 크다’는 말을 하도 들어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내 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진짜 너무’ 싫었다. 물론 이제 나는 내 키를 ‘상대적으로 큰’ 정도로만 여긴다. 누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도 피식 웃고 넘길 여유도 있다.

중요한 건, 이 중 5cm는 30대가 되어서 컸다는 점이다. 20대까지 나의 키는 168cm였다. 중학교 입학 때 166cm였으니 10년 넘게 불과 2cm 밖에 자라지 않은 키가 30대가 되어 5cm나 갑자기 커버린 것이다.

이 5cm가 바로 ‘자존감이 키워준 키’인 셈이다. ‘진짜 너무 큰 키’가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꾸부정하게 어깨를 접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었다. 앉은 키가 커보일까봐 의자에 허리를 펴고 앉지도 못했다. 내 뒤에 누군가 앉으면 식은땀을 흘려가며 온 몸에 힘을 주고 몸을 작게 만들려고 했다.

이런 자세가 10년 넘게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직장을 다니면서 출근할 때 입은 예쁜 원피스와 스커트가 회사에 도착하면 자꾸만 한쪽으로 돌아가 있다. 몸이 아예 틀어져 버린 것이다. 의자에 앉아 일할 때도 자꾸만 다리를 꼬고 싶다. 바로 앉으면 곧 온몸이 자근자근 거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틀어진 자세가 굳어진 것이다.

틀어진 자세처럼 마음도 자꾸만 어긋나고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나는 내 자신이 세상에서 ‘진짜 너무’ 못나 보였다. 뭔가 계속 하고는 있는데 의미도 재미도 알 수 없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한 나는 서른이 되기 직전 퇴사를 하고, 원하는 공부를 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자 나의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내가 먹는 것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나이고 진짜 내 것이 되었다. 직장에서 미운오리새끼 같던 나에게 언뜻 백조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그렇게 내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주자 내 몸에도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남이 정해준 자리가 아닌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모처럼 허리를 쭉 펴보았다. 어색하지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새로운 에너지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정해진 시간에 등 떠밀려 허겁지겁 오고갈 필요가 없으니 처음 걷는 아이처럼 내 발걸음에만 집중할 수도 있었다.

‘나는 발바닥의 가장 자리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구나.’, ‘오른쪽 골반이 조금더 올라가 있구나.’, ‘가슴을 펴니 어깨도 반듯해 지네?’, ‘몸의 뒤쪽에 무게 중심을 두면 몸이 더 곧게 펴지는 걸?’ 등등 날마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매일 매 순간 나에게 집중하며 보낸 시간 동안 나의 마음도 조금씩 힘을 갖게 되었다. 어리둥절 시작된 사회생활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부속품이었고 힘없이 작았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도전할 시간을 주자 내 안의 웅크려있던 내가 다시 숨 쉬며 일어나 움직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2년을 보내고 원하던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어 사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의 키는 173cm이었다. ‘제가 173이라고요? 저는 168로 알고 있는데요.’ 몇 번이고 다시 재어 보았지만 똑같았다. 담당자도 ‘이게 정확한 키입니다. 다른 곳에서 다시 재보셔도 같을 거에요.’

이후로 얼마 동안 병원이나 피트니스센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키를 재보는 것이 나의 취미였다. 정말 그랬다. 신기하게도 정말 173이었다. 이것이 자존감이 키워준 나의 키 이야기다.

자존감은 키를 크게 한다. 그리고 이 키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자존감은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같은 요술이 아니다. 대신 나와 환경이 억눌러온 온전한 내 모습을 원래의 크기로 되찾아준다. 무언가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내 안에 이미 다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결국 나는 나로 이미 충분하다.

최헌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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