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운전을 못한다. 운전대만 잡으면 긴장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습이 좋기 때문이다. 새벽마을버스에서는 찬 공기 속 피곤한 눈 졸음을 비벼가며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 머리 감고, 화운데이션만 바르고 서둘러 출근 하는 사람들. 지하철 안은 그들 손길로 순식간 헤어숍, 메이크업 숍이 된다. 잠은 서서 자는 것임을 보여 주는 사람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틈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 탑승하고야 마는 각도 전문가들. 코 골며 자다가도 내릴 역이 되면 빛 속도로 하차하는 사람들. 처음 만나도 가족이기에 기꺼이 어깨를 빌리며 자는 사람들.

언젠가 오후에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옆에서 "네, 제 나이는 70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래도 운전을 엄청 잘 하구요, 조그만 용달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자리 있나 해서...네. 네. 그럼 연락주세요" 라고 했다. ‘칠십이 넘어도 일을 구하시는 구나!’ 생각하며 목소리 주인공을 살짝 관찰했다. 오래 된 핸드폰과 여름 운동화가 눈에 들어 왔다. 칠십 가까이 보인 그는 벼룩시장을 보며 펜으로 연신 O,× 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십시오" 다리를 절며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일자리를 찾는 목소리와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겹쳐지는 순간 20년 전 어떤 경험이 떠올랐다.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는 부부가 있었다. '부부가 다 앞을 못 보네' 놀라고 아픈(?) 맘에 돈을 꺼내려는 순간, 남편이 부인에게 "빨리 내려!"라고 다급하게 말하자 부인 눈이 떠졌다. 반대편 사람이 그들보다 더 빨랐다. 손에는 돈 받는 박스가 있었고, "여길 또 와!" 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셋이 동시에 내렸다. 순간 멍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는데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도와달라는 성인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혹시 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부자는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무조건 도와 주고, 성인은 무언가라도 파는 사람을 돕자라고 나름 정했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있었다. 유독 눈물을 계속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밝은 표정, 씩씩한 모습을 한 여학생이 눈물 흘리는 사람을 시종일관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모녀 사인가?' 했는데 아니라고 했다. '저 밝은 사람이 여길 왜 왔지?' 이 집단의 선생님인 줄 알았다. 사연 보따리를 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밝은 여학생도 아파서 온 사람이란 걸 알았다. 홀몸이 아니었다. 가족 중에 누군지 알 수도 없었다. 망치로 크게 맞은 듯 충격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럼에도 남을 돕고 있고, 도와달라는 부탁도 안 한다.

문득 칼릴 지브란의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시 한 대목이 생각난다.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있는 오묘함에 견주어 보면” 무가지 벼룩시장을 펼쳐 놓고 쉼 틈 없이 직장을 구하는 칠십이 넘은 사람. 밝은 표정에 씩씩한 모습을 한 여학생이 필자를 울 게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 뒤에는 오묘함이 있다. 누군가 씩씩하고, 부지런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떤 오묘한 여정을 극복하고 있을까?' 싶어서 더러는 목이 메일 때도 있다.

혹시 오늘 하루, 씩씩한 사람을 만난다면, 일과를 마치고 졸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아니면, 자신이 오묘한 여정을 극복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어깨, 다리, 손 등을 마음으로라도 쓰다듬어 주는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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