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되려고 그랬을까?

뱁새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오면 잘 받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냉큼 전화받기 버튼을 눌렀다.

 

“김프로! 기억을 하려나 모르겠네. 나 저번 **골프 행사 때 인사한 백**요”

띠 동갑인 백 선배에게 전화가 온 것은 지난 2016년 늦봄이었다.

(백 선배의 명예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이해하기 바란다)

나뭇잎은 새순 빛을 벗고 어찌나 짙게 푸르른 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계절이었다.

 

뱁새는 서너 달 전 게스트로 참석한 골프 행사에서 명함을 주고 받은 그가

생각났다.

 

“나는 골프를 시리어스 하게 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요”

명함을 주면서 백 선배가 자신을 ‘진지한 골퍼’라고 소개하던 말이 생각났다.

 

“뉴질랜드에 한 달 정도 다녀올 일이 있으니 돌아와서 기회가 닿으면 (뱁새에게)

골프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한 그였다.

 

뱁새는 인사치레로 한 말이려니 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백 선배 사정은 이랬다.

그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명문 B컨트리클럽 회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블랙스톤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ㅋ)

 

두 달 쯤 지나서 클럽 챔피언 선발전이 열린다고 했다.

자신은 보기 플레이어 정도여서 참가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클럽 측에서 도전해 보라고 자꾸 초청을 한다는 것이다.

 

간곡하게 요청을 하니 나가 보고 싶기도 한데 우승은 언감생심이더라도 좋은

모습은 보이고 싶다고 했다.

(실은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는데 완곡하게 표현하려니 오히려

어색하다)

 

대회 조건은 백 선배에겐 버거워 보였다.

B컨트리클럽 블루티에서 플레이를 한다고 했다.

(남성 아마추어 골퍼가 보통 플레이 하는 티는 화이트이고 블루티라며 그보다

10~30야드 정도 더 멀리서 치는 셈이다)

코스 총 길이도 길지만 그린과 주변이 여간 어려운 골프장이 아니어서 식은 땀을

흘릴 백 선배 모습이 그려졌다.

대회는 이틀간 열리는데 열여덟 명이 출전해 첫날 컷 오프가 있으며 아홉 명만

본선에 나간다고 했다.

 

백 선배와 뱁새가 풀어야 하는 숙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1. 남은 8주 정도 기간에

  2. 50대 후반 나이인 보기 플레이어가

  3. 클럽 챔피언 선발전에 나가서

  4. 망신을 사지 않을 정도로


잘 쳐야 하는 것이었다.

 

불가능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뱁새지만 이건 진짜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내민 손을 뿌리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백 선배와 처음 만나고 온 날 뱁새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초동 모 스튜디오 연습장에서 만나 스윙 측정 장비인 트랙맨으로 백 선배 샷을
훑어본 결과 때문이었다.

 

백 선배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200야드에 조금 못 미쳤다.

백 선배는 크지 않은 체구였다.

화이트 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에는 모자란 거리였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블루티에서 열리지 않는가?

 

희망이 있다면 백 선배가 진지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대학 때 산악반 활동을 한 산 사나이로서 '스포츠가 뭔지 안다'는 것이었다.

 

뱁새는 백 선배 스윙 데이터와 스윙 모습을 휴대 전화에 담아온 것을 보고 또

보며 작전을 짰다.

8주 안에 어떤 것을 바꾸고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할 지 막막했다.

 

뱁새가 밤샘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남은 기간에

  1. 드라이버 비거리를 최대한 늘리고

  2. 숏 게임을 다듬고

  3. 퍼팅을 보강하고

  4. 경기 운영(매니지먼트)을 잘 할 수 있도록 작전을 세워서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백 선배도 아이언 샷 따위까지 다듬기엔 시간이 모자란 점을 감안한 뱁새의

계획에 동의했다.

 

의기투합은 했지만 뱁새만 잘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티잉 그라운드에 설 사람은 백 선배였다.

결과는 백 선배에게 달린 것이라는 것을 뱁새는 잘 알고 있었다.

 

둘은 8주 동안 총 20여 번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함께 작업했다.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드림듄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만났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만나 90분 수업을 하기로 했지만 제 시간에 끝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두 시간을 훌쩍 넘겼고 드라이빙 레인지가 문을 닫을 때까지 친 날도 몇

번이나 됐다.

 

그 중간에 두 번은 스튜디오에 가서 트랙맨 데이터를 보며 중간 점검을 했다.

 

그리고 둘이 총 12번 필드에 함께 나갔다.

그 대부분은 B클럽 대회 코스를 돌았다.

매번 오후 막티(마지막 티업 시간)를 잡아 놓고 티 업 서너 시간 전에

골프장에서 만났다.

숏게임 수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B클럽에는 숏 게임 연습을 하기에는 최상인 연습 그린이 있었다.

그곳에서 두어 시간씩 숏 게임을 가르치고 배운 뒤에 점심을 먹고 필드에 나간

것이다.

 

늦봄에 마치 여름이나 된 것처럼 땀을 흘린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그건 다음 회에 얘기를 해 주겠다.

(뱁새가 명절 앞두고 우려먹기 수법을 또 써 먹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끔 글이 너무 길다는 평가가 나와서 그런 것이지. 흠흠)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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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smithkim@gmail.com

 

뱁새 김용준 프로가 지난해 가을 제주도 CJ나인브릿지에서 열린 PGA 대회 구경을 갔다. 늦깎이 프로 뱁새 눈에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하늘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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