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중학교 2학년이다. 한가한 일요일 텔레비전을 보다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엄마, 전교 2등 하는 애가 전교 1등한테 시험기간에 공부 많이 했냐고 물어 봤거든!”
“그래? 1등 애가 머라고 해?”
“손을 막 흔드면서 ‘하나도 못했어’ 그랬어!”
“둘이 좀 라이벌이겠다!”
“2등 애가 ‘어떡해. 너무 걱정되겠다.’ 해놓고, 간 다음에는 ‘웃기시네. 맨날 안했데. 거짓말이야’ 그러더라”
“(피식 웃으며)그래? 재밌네~”
“응. 난 둘이 얘기 나누는 거 보고 신기해서 웃었어. 우리 친구들은 안하면 진짜 안했다고 하고, 걱정하면 진짜 걱정해주는데. 난 머리 아프게 안살거야”

겉 다르고, 속 다른 대화를 어른만 하는 게 아닌가보다. 어른만 경쟁에 치열한 게 아닌 가보다. ‘이제 15살인데 벌써 경쟁하고 의식하면 불안 할 텐데, 어른이 되면 행복하기 힘들겠다.’ 싶었다.

반면 필자 딸은 무지 행복하다. < 경쟁>과 < 승부>를 제일 기피하는 친구다. 이렇게 느긋한 딸은 급한 필자에겐 스승인 셈이다. 신호등에서도 뛰는 일이 별로 없다. “빨리 와, 신호 바뀔려고 하잖아”하면 “(씨익 웃으며) 먼저 가. 어차피 지하철에서도 또 기다릴 건데”그런다. 맞다. 뛰나 걸으나 매 한가지다. 필자 급함에 < 여유>라는 세포가 딸 아이 덕분에 보태졌다.


요즘 MBC-TV 드라마 < 하얀거탑>이 다시 방송되고 있다.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은 자신의 실력만으로 그 위치에 올랐고, 친구 최도영과 달리 실력만으로는 만족을 못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더 높은 곳을 향했다. 스승 이주완 과장은 자신 능력을 넘어서 병원 내에서 점점 커지는 제자 장준혁 지위를 질투했다. 장준혁과 이주완은 < 경쟁>과 < 승부>에 얽매여 불안한 일상을 보낸다. 반면 최도영은 자신 실력만 있으면 충분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며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JTBC 드라마 < 미스티> 주인공 고혜란 아나운서는 성공한 여자다. 아름답고 저명한 시댁에다 잘생긴 검사출신 남편이 있다. 9시 뉴스 앵커자리를 꿰찬 지 7년째다. 이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고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일상을 보낸다. 실체를 보면 대화 없이 각방 쓰는 부부, 일터에서는 밀려나는 위치, 시기로 몰락하길 바라는 적뿐이다. 화려한 명품 옷과 메이크업한 모습이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어두운 방안에서 “사는 게...” 하며 주저앉는다.


프랑스 남부에서 레스토랑 < 르 쉬게> 를 운영하는 세프 세바스찬 브라스(46) 이야기다. 그는 18년간 ‘미슐랭 쓰리(3)스타’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평가단 감시와 미슐랭 스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반납을 요청했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요리에 집중하고 싶다”며 “다른 모든 쉐프들도 그랬겠지만, 가끔 세프 베르나르 루아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2003년 루아조는 별 3개에서 2개로 강등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필자 딸은 팀원들이 조사한 자료를 메일로 받아 음악과 자막 등 편집을 밤새서 했다며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힘든 게 아니라 즐거웠다고 했다. 자연과 일상을 담는 사진 촬영을 늘 한다. < 효리네 민박집>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윤식당> 등은 단골 메뉴다. 새벽까지 밤새서 본다. 한 술 더 떠 이젠‘예능 다큐’가 하고 싶다고 설친다. 이보다 더 좋은 케미가 있을까?

필자는 이기는 아니 이겨야만 하는 삶보다는 느긋하고 주고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딸아이 정서를 존경한다. 리스펙트!! 스웩~~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드라마상담기법 교수/마인드힐링 상담센타 대표/
마인드힐링전문가/ 위기협상전문가/방송 및 기업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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