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논리적이라면 그건 어김없이 ‘거짓’이다. 거짓말을 잘 하려면 비논리적으로 얘기를 해선 상대를 결코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겪어봤지만 세계는, 그리고 삶은 결코 논리적이지만은 않은데, 이에 대한 설명이 너무 논리적이라면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거짓’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수는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우메자와 전대장의 호출을 받고 전대장 숙소에 도착해 전대장이 이치카와 중대장에게 강조하는 얘기를 듣다보니 이건 너무 논리정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치카와, 내가 결코 으스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조부는 17세에 근황의 깃발아래 교토전투에서 승전한 뒤 에도로 쳐들어간 분이야. 우에노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이긴 훌륭한 군인이었어.”
“아, 예...대대로 군인 집안이셨군요.”
“그럼, 거기다가 우리 아버지는 오사카에 있는 기병 제4연대의 장교였지. 아버지가 근무하던 기병 4연대는 오사카 덴노지에 있었는데 우리 집도 바로 근처에 있었어.”

“그러면, 전대장님도 어릴 때부터 군인이 되겠다고 다짐하셨겠네요.”
“그런 셈이지. 아버지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 봉천으로 갔어. 그곳에서 1개 소대만 이끌고 러시아군을 철령 넘어 까지 추격해갔던 거라......하지만 그 지독하기로 이름난 카자흐군대와 격렬하게 접전하는 바람에...거기서 부하들이 거의 전멸했고, 아버지도 중상을 입어 포로가 되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덕분에 풀려나 일본으로 돌아왔어.”
“으아...구사일생이셨네요.”

“음...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걸 무척 말렸어. 군인이 되어 나라에 충성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전쟁에서 부하를 잃으면 그 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없다며,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셨어.”
“부하를 무척 아끼셨군요.....”
“아버님의 그 말씀을 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지. 나도 쇼와 14년 육사를 졸업하고, 중국전선으로 갔어.”

“아버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겠네요...”
“그러니까, 내가 중국으로 갈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앞으로 말 못할 어려움을 당하겠지만, 단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 ‘부하들을 죽지 않게 하라’는 거였어. 당신이 러일전쟁에서 부하를 잃고 남모르게 괴로워했던 기억이 나서 그런 거겠지?”
“그렇겠네요...”
“아버지의 만류에도 나는 어릴 때부터 군인이 되는 것 외의 다른 삶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중국 전선으로 간 거였어. 우리 일본군 병사들은 중국전쟁에서 2년간 근무하면 제대를 했는데, 그런데 그때도 지금처럼 전황이 다급해서 제대를 한 병사들도 대부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예비역으로 다시 소집되었어.”
“그러면 병사들은 중국에서 몇 년을 근무하는 거죠?”
“보통 4년을 근무한 거지. 그렇게 연장 복무를 했는데도 부하들이 4년 뒤에 먼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봉천역에서 엄청나게 울어댔어. ‘대장님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대장님,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고함을 질러 대더군. 사실은 내가 중국에서 60여회의 전투를 치렀는데, 전사한 부하는 3명밖에 없었어”
“우와!...정말 기적인데요?”

“그래서 이번에도 저 나이 어린 해상정진대 청년들의 목숨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250㎏의 폭탄을 적선아래 투척한 뒤 약 40m를 달아났을 때 폭발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토록 상부에 요청했지”

이수는 아직 술을 마시지 않아서인지 우메자와 전대장의 얘기가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중국 만주에서 6년간 근무하며, 60여회의 전투를 했는데 전사한 부하가 3명밖에 없었다니......이거 정말, 얼마나 완벽한 전술인가? 아니,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고 얼마나 철저하게 실천했는지에 대한 완벽하고 논리적인 설명인가?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전대장이 ‘중국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기조차 갖추지 않은 민간인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민간인이었다면 전대장의 얘기는 틀림없는 ‘거짓’이다. 민간인을 살해하는 건 ‘전투’가 아니니까.
그게 아니라면 전사한 병사의 수를 속이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수는 지금 말라리아 특효약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몸을 회복한 우메자와 전대장이 이치카와 중대장에게 이수를 숙소로 데려오라고 명령해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건데도 전대장은 이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얘기를 이어가더니 한참 뒤에야 이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치카와 중대장, 이 이시타 연락병에게 술 한 따라주게...”
“예”
“자네 아우라는 이 놈, 혹시 간첩은 아니겠지?”
“네? 저번에 말씀드렸지만 이 아우는 제국대학 출신으로 신원이 확실합니다.”
“이봐 전장에서 ‘형 아우’란 건 없어. 단지 ‘적과 아군’만 있을 따름이지. 사실 며칠 전 나카타 정보하사가 이 친구가 간첩임에 틀림이 없다고 자네를 거치지 않고 나에게 직접 고발을 해왔어.”
“전대장님, 이 아우가 간첩이라면 전대장님께 말라리아 특효약을 조제해줬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한데, 이 놈의 군장 속에 숨겨놓은 공책을 살펴봤더니 암호 같은 것들이 영어로 빽빽이 적혀있다는 거야...이치카와, 요즘 황군이 영어를 쓰면 총살이라는 거 잘 알지?”
“아...예, 저도 그 공책을 봤는데, 그건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입니다. 이 아우의 전공이 식물학이어서 모든 걸 독일어로 기록을 하기 때문에 나카타가 착각했을 겁니다. 독일은 우리의 동맹국이잖습니까?”
“그래?...그게 독일어라면 괜찮지...”

이때 토미요가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오늘은 두분이 재미없는 얘기만 계속 하시네요”라더니 다시 부엌으로 나가버렸다.

“이치카와, 자넨 오키나와에 오기 전에 소남도(싱가포르) 전쟁에 참전했다면서...?”
“예, 영국군과 격돌했죠...”
“그때가 정말 우리 황군의 전성기였지?”
“예, 황군 3만6천명이 영국군 8만5천명을 항복시켰으니까요. 세계 전쟁 역사상 최고의 승리였습니다.”

“자넨, 그때 헌병이었다며...”
“예, 처음엔 보병으로 싱가포르시내를 점령하는 전투를 벌였는데 오른쪽 눈에 화약이 들어가는 바람에...지금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오른쪽 눈이 실명을 해서 결국 헌병대로 배치되었습니다.”
“음...본래 헌병은 아니었구만...”
“예, 그렇습니다”

“근데, 자네가 싱가포르에서 중국인의 모금(募金)을 담당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예, 그 짓을 하느라 중국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습니다......”
“이 사람, 전쟁에서 적을 많이 죽인 건 죄(罪)가 아니라 공(功)이지.....근데 그때 모금된 돈은 다 본국으로 보냈는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중국에서 주둔해봤지만 중국인들은 원래 종이돈 보다는 황금과 보석을 좋아하잖아...그때 모금한 돈이 5000만 달러라는데...그것 이외에 수백 명의 싱가포르 갑부들이 차곡차곡 농짝 안에 모아뒀던 황금과 보석은 다 어디로 간 거지?...그 황금과 보물로 재원으로 무기공장을 세웠다면 우리 황군이 지금보단 훨씬 더 막강했을 텐데...”

“저는 잘 모르지만 제 25군 야마시타 도모유키 사령관과 쓰지 마사노부 작전참모가 황금과 보물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마시타 사령관을 직접 본 적 있어?”
“예...싱가포르 시내 시찰을 나갔을 때 뒤에서 따라 가본 적은 있습니다.”

“야마시타 사령관은 우리 황군의 영원한 영웅이지...그 분은 영국군을 굴복시키기 위해 영국군 사령관과의 협상 탁자에서 무조건 항복하라며...‘예스까?, 노까?’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책상을 두들기며 고함질렀다 잖아...결국 군사가 더 많은 영국측 사령관으로부터 ‘예스’를 받아냈으니 영웅 중 영웅이지”
“그렇지만 너무 영웅시 되는 바람에 도조 히데키 총리의 경계를 받아 싱가포르에서 만주로 좌천된 거 아닙니까?”
“허어, 이 사람 그걸 알고 있네...”
“짐작할 따름입니다.”

“야마시타를 만주로 보내자,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그래서 그분이 다시 지금 제 14방면군 사령관을 맡게 된 거지...그분이 필리핀을 사수하고 있는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저녁을 편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

우메자와 전대장은 부하장교들 앞에서 함부로 털어놓지 못할 얘기를 이치카와 중대장에게 서슴없이 털어놓아서 이수는 자리에 앉아있기가 거북했다.
더욱이 방금 전에 “간첩이 아니냐”고 윽박지르다가 이번엔 극비에 가까운 사항까지 털어놓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근데 우메자와 전대장의 얘기는 점점 더 극비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이치카와, 그런데 야마시타 사령관이 싱가포르 중국인들에게서 차출한 보물을 별도로 취급한 건 그 보물들을 천황폐하께 바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엔 야마시타 사령관이 싱가포르에서 압수한 보물들을 도조를 통하지 않고 천황폐하께 바치려고 하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아...”

“도조 총리대신은 왜 그렇게 야마시타 사령관을 경계합니까?”
“그야 혹시라도 자신을 넘어설까봐 우려하는 거겠지...사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후배들은 도조 총리보다 야마시타 선배를 더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저도 그분을 존경합니다.”
“음...그렇지만 그 많은 보물이 어디로 갔는지는 수수께끼 중 수수께끼야...”

이수로서는 우메자와 전대장이 싱가포르에 있던 보물에 대해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뭔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보물에 대한 우메자와의 얘기는 완벽하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건 ‘거짓’이 아님이 분명했다.
이파(李波)...소설가.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연구소장,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 도키와대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콘텐츠개발업체 (주)기업&미디어 대표.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지난 15년간 도쿄 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를 계속 찾아가 현장에서 취재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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