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종방됐다. 회를 거듭할수록 더하는 감동과 교훈으로 울고 웃었다. 무엇보다 교도소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사건사고 때마다 수장으로 해결을 고민하기 보다는 미디어 노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항상 핸드폰을 손에 쥐고 기사를 검색한다. 인지도 있는 사람과 친해져 어떻게든 친한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언론에 잘 보이려고 애쓰며 항상 허허실실 가볍게 보인다. 빛나는 역할은 교도소장이, 욕먹는 역할은 원칙주의자 나 과장이라는 생각이다.

과거 직장생활을 하며 만났던 한 상사가 생각났다. 그는 사람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 친절한 말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팀원들은 친절한 말보다 필요한 말을 해주길 바랬었다. 직장 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정면승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늘 의문이었다. ‘그런 거 하라고 저 자리에 있는 거 아닌가? 저렇게 무능한 사람이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갔을까?’ 일은 필자가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12회 이야기다. 화재가 난 것이 아닌데 팽 부장이 교도소 전체 문을 개방해버린다. 자칫 탈옥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대형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나 과장은 교도소장에서 팽 부장의 징계와 전출을 요구한다. 나 과장은 평소 원칙을 벗어나 감정적으로 일처리 하는 팽 부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교도소장은 정색하면서 이렇게 답한다. “싫어. 팽 부장 전출 안 시킬 건데. 나 과장 일 잘하는 거 알지. 나 과장 없으면 여기 개판이야. 팽 부장 같은 사람도 있어야, 무르팍에 도가니 같은 사람도 있어야 , 여기가 제대로 돌아. 선 넘지마!”

앞서 소개한 필자 상사는 조직에서 사표를 쓰고 나갔다. 속이 다 후련했다. 회사가 ‘이제야 제대로 필요한 말이 오고 가는 희망이 생기겠다.’싶었다. ‘그 상사 존재 여부는 티도 안 날 것이다.’는 확신과 의욕을 더 다부지게 잡았다. 그리고 7개월 뒤 전 직원은 퇴직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무직이 된 그쯤해서 먼저 사표 쓰고 퇴사한 상사가 교수가 되어 잘 지낸다는 근황이 들려왔다.
충격이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놓치고 있던 실체들이 하나 둘씩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 그 상사는 무능하지 않았다. 그 위치에 그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째, 할 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필자 성급함이 부끄러웠다. 셋째, 그 상사가 마지막 근무하는 그 날 인사도 안한 것이 마음에 두고두고 걸렸다. 체한 것 같은 시간이 무심하게 잘도 흘러갔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진짜(?) 용기를 내서 시내에서 만났다. 상사도 필자도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아진 세월을 보내고 마주했다. “죄송했습니다. 제가 선을 넘었었어요. 마지막 날, 인사 드렸어야 했어요.” 온화한 미소가 담긴 답이 왔다. “고마워 내가 많이 부족 했어”

그 후로 귀한 인연이 되었다. 지금도 일과 사랑에 고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서 <슬기로운 인생생활>을 위한 소중한 처방전을 받아들고 온다.

윤재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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