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988년 전성기를 보낸 마이클 잭슨과 조지 마이클 당시 모습)

1988년 2월 열렸던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기억하십니까. 2관왕에 오른 독일의 피겨스타 카타리나 비트는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배드(Bad)'와 함께 현란한 갈라쇼를 선보여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얼음위의 마이클 잭슨'으로 변신한 카타리나 비트의 갈라쇼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에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인데요. 그보다는 사실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봤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수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도 그 시대를 더듬어 보게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가요보다 팝송이 더 인기를 끌던 1988년, 그 무렵 빌보드 키드들과 팝음악 애호가들은 기억합니다. 전세계 대중음악 시장은 마이클 잭슨과 조지 마이클, 이른바 '두 천재 마이클'이 지배한 시대였습니다.

그 시절 마이클 잭슨과 조지 마이클은 차트 대결을 벌였던 라이벌이었고 선의의 경쟁자였습니다. 당시 스물 아홉의 마이클 잭슨은 전작 '스릴러(Thriller)'로 슈퍼스타 반열에 이미 올랐고, 스물 넷의 조지 마이클은 5년간 몸담았던 남성듀오 왬(Wham!)을 끝내고 '홀로서기' 첫 앨범 '페이스(Faith)'를 냈던 때였습니다. 1987년 가을 2개월 간격을 두고 발매된 '배드'와 '페이스'는 이듬해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면서 팝음악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 무렵 국내 FM라디오 디제이(DJ)들은 조지 마이클의 '페이스'를 쉴새 없이 틀었고 마이클 잭슨의 '배드' 역시 인기 레퍼토리로 흘러나왔죠.

먼저 선공에 나선 인물은 마이클 잭슨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빌보드 3주 연속 1위를 달리던 노래 '라밤바'를 밀어내고 첫 싱글 '아이 저스트 캔 스탑 러빙 유(I just can't stop loving you, 널 사랑하는 걸 멈출 수가 없어)'로 1위 자리에 오른 데 이어 두 번째 싱글 '배드'로 2주간 1위를 맛봤습니다. 이후에도 '더 웨이 유 메이크 미 필(The way you make me feel, 내가 느끼는 너의 방식)', '맨 인더 미러(Man in the mirror, 거울속의 남자)', '더티 다이애나(Dirty Diana)'까지 3곡을 잇달아 1위에 올려놔 한 앨범에서 무려 5곡의 넘버원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진=1988년 빌보드 차트를 강타했던 마이클 잭슨의 '배드'와 조지 마이클의 '페이스' 앨범 커버)

마이클 잭슨의 일곱번째 솔로 작품이던 '배드'는 그를 1980년대 가장 성공한 팝 가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했습니다. 한편으론 그를 팝스타로 키워낸 '스승' 퀸시 존스와 함께 작업한 마지막 앨범이기도 했죠. 당대 최고의 세션 연주가들과 협연한 비범한 스케일의 사운드는 훌륭한 스튜디오 레코딩으로 완성됐습니다. 음악 프로듀서 데빗 시거슨은 대중음악지 '롤링스톤' 기고 글에서 "배드는 '빌리 진(Billie Jean)' 같은 한 획을 그은 노래는 없지만 스릴러보다 더 뛰어난 레코드"라고 평가했습니다.

지금까지 '배드' 앨범은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간 음반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미국에서만 1000만장, 영국에서 400만장 등 전세계 3500만장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1988년 마이클 잭슨의 광풍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배드 월드투어' 기록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987년 9월 일본을 시작으로 1989년 1월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막을 내린 배드 라이브 콘서트는 15개 국가에서 마이클 잭슨을 보기 위해 무려 440만명의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는 역대 팝가수 투어 중 최다 관객동원 기록이 됐습니다. 일곱차례나 열린 런던 윔블리 라이브에서만 50만명의 영국인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잭슨 신드롬'은 엄청났습니다.

그해 AP통신은 "배드 투어 기간 중 130명이 넘는 팬들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다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의식을 잃거나 실신했다"고 전했습니다.

조지 마이클의 반격도 대단했습니다. 첫 번째 싱글 '페이스'가 빌보드 4주간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파더 피겨(Father Figure, 아버지상)', '원 모어 트라이(One more try, 한 번만 더)', '몽키(Monkey)' 등 4곡의 빌보드 1위곡으로 조지 마이클 시대를 열었습니다. '아이 원트 유어 섹스(I want your sex, 난 널 원해)', '키싱 어 풀(Kissing a fool, 바보에게 키스하고)'까지 무려 6곡이 빌보드 톱5에 진입했는데요. 그 결과 '페이스'는 빌보드 톱5 역대 최다 히트곡을 배출한 앨범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노래들은 모두 조지 마이클이 직접 만들고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맡았지요.
조지 마이클의 기록 행진은 폭주기관차였죠. '페이스'는 1988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간 싱글이 됐고, 미국에선 백인 솔로 가수로는 흑인 음악가들이 즐비한 R&D차트 1위에 오른 첫 번째 뮤지션이 됐죠. 음반은 빌보드 차트 12주간 정상을 차지했고 무려 51주간 빌보드 톱10 안에 머물렀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배드'와 겨뤄도 전혀 뒤지지 않던 '페이스'는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000만장, 전세계 20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는 2003년 펴낸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에서 "조지 마이클은 첫 앨범 '믿음'을 통해 매카트니-레넌(비틀스) 콤비, 엘튼 존, 배리 깁(비지스)을 잇는 영국 출신의 위대한 작곡가 군단의 계보에 속하는 인물임을 만천하에 공개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대표한 두 라이벌의 대결 구도는 흥미진진했습니다. 그해 빌보드 연말 결산에서 조지 마이클의 '페이스'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습니다. 그 둘은 1989년초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상'에 나란히 후보로 올랐는데요. 승자는 바로 조지 마이클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잭슨은 2009년, 조지 마이클은 2016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정훈 lennon@hankyung.com
필자는 한경닷컴 뉴스국에서 자동차 업종을 취재하고 있다. 자동차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하지만 음악과 공연을 더 즐긴다. 글방을 통해 음악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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