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이러다가 저 나카타반장 새끼보다 내가 먼저 죽겠슴다. 저 새끼를 먼저 죽이고 죽어야 하는데...”
“상덕아, 그렇게 복수심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 먼저 죽지 않는다. 모든 생물이 다 그러니까...”
“형님, 진짜 그렇습니까? 우쨌거나, 저 나카타 반장놈을 먼저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 죽지 않을 깁니다.”
“그래, 살고 싶으면 복수심을 더 키우게...그게 복수의 원리이니까 ”
“형님, 그나저나 야마타 반장 때 썼던 그 약 좀 주이소. 저 새끼를 살려뒀다가는 우리 동지들 다 죽게 생겼슴다...”
“같은 방법을 두 번 쓰면 꼬리가 잡힌다...그러니까 다른 대책을 마련해보자...”

자마미섬에 며칠간 늦여름 같은 날씨가 지속되자 모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장교에서 군부까지 말라리아 환자가 속출하더니, 그렇게 건장한 서상덕도 말라리아에 걸려 음식을 전혀 삼키지 못하고 고열이 엄습해오자 진땀에 젖어 신음하며 호흡곤란까지 겪었다.

하양에서 온 김언수와 압량에서 온 손칠수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자, 서상덕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환청이 들린다며 막사구석에 귀를 막은 채 이를 악물었다.
더욱이 이곳 의무대엔 더 이상 환자를 수용할 침상이 없어 군부들은 그냥 자기 막사에 드러누워 지독한 오한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고열에 부대끼던 안태형은 아내가 복수를 하러 나타났다며 눈에 헛것이 보이는지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고함을 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말라리아 못지않게 군부 동지들을 괴롭히는 건 나카타 정보하사였다.
그는 괜히 괭이질 잘하고 있는 군부들 등 뒤에 와서 회초리로 군부들의 어깻죽지를 세차게 후려갈기곤 했다. 곡굉이질을 더 빨리 하라는 게 이유였다.

담당사관인 다카세 소위가 옆에서 버젓이 감독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마음대로 군부들에게 단체기합을 주곤 했다. 성질 더럽기로 이름난 요시나가 소위조차 나카타 정보하사가 나타나면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척해버렸다.
나카타 반장은 정보하사로 발령을 받은 이후부터 완전히 안하무인이 되었으며, 모든 장교들이 그를 기피했다. 32군 사령부에 어떤 정보 보고를 할지 두려워서다.

이수는 일단 서상덕을 살리기 위해 ‘말라리아 특효약’을 제조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군부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작업속도가 늦어진다며 본부의무대에 키니네를 좀 배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 이후 키니네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키니네를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우타에게 물어보니 자마미 전대본부는 일본군 장교들에게만 키니네를 한정적으로 공급해주고, 하사관들에게도 제공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행히 의무대의 키니네 말고 우타의 집에 그녀 아버지가 보관했던 오래된 키니네가 약간 남아있다고 귀띔했다.
이수는 우타가 준 키니네에다 가쥬마루 잎을 달인 용액과 우친 뿌리를 혼합한 약재를 만들어냈다.

이 약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던 건 이수의 식물학적 지식이 뒷받침된 것도 있지만 그의 부친이 조선에서 알아주는 한약재상(韓藥材商)이었기 때문에 일찍이 여러 가지 한약을 조제하는 걸 배운 덕분이었다.

가쥬마루 잎은 트리페르페노이드 사포닌과 플라보노이드 배당체를 함유하고 있어서 체온조절과 백혈구 정상화에 큰 도움을 주고, 우친은 혈액순환을 긴급히 촉진시키기 때문에 이수가 조제한 말라리아 특효약은 효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먼저 서상덕에게 임상실험을 해봤는데, 그는 이 약을 먹고 하루 만에 거뜬히 정상체온을 회복하고 벌떡 일어났다. 이어 군부들 모두가 차례로 말라리아의 소굴에서 벗어났다.

이수는 서상덕과 동지들에게 소문내지 말라고 거듭 부탁을 했지만 이수가 조제한 특효약이 대단한 효과를 가졌다는 소문은 일본군에도 확 퍼졌다.
말라리아에 걸려 일주일이 지나도 몸을 회복하지 못해 눈이 캥한 일본군 하사관들이 이수에게 허우적거리며 다가와 특효약을 좀 나눠줄 것을 간청하곤 했다.
이수가 이치카와 중대장의 보고서를 우메자와 전대장에게 전달하러 본부에 갔더니, 이번엔 전대장이 말라리아에 걸려 근무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치료중인데, 키니네를 복용해도 계속 열이 높아 토미요가 그를 간호중이라고 했다. 그는 되돌아와 중대장께 보고했다.

“중대장님, 우메자와 전대장님이 말라리아에 걸려 그저께 밤부터 숙소에서 투병중이랍니다.”
“그래? 그거 큰일이네...”
“제가 말라리아 특효약을 조제할 수 있는데...그걸 전달하면 어떻겠습니까?”
“음...근데 그 약을 자네가 전대장께 직접 전하면 틀림없이 독약이라고 의심해서 드시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본토에서 가져온 특효약을 숨겨뒀던 거라면서 전달해준 뒤 쾌차하면 자네 작품이라고 털어놓을게...”
“좋습니다. 그럼 제가 금방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이수는 취사반으로 달려가 우메자와를 위한 특효약을 조제해서 중대장에게 건넸다.
사흘 째 고열과 오한에 진땀을 흘리며 발버둥 치던 우메자와 전대장은 이수의 특효약을 복용한지 반나절 만에 툴툴 털고 일어났다.
이파(李波)...소설가.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연구소장,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 도키와대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콘텐츠개발업체 (주)기업&미디어 대표.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지난 15년간 도쿄 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를 계속 찾아가 현장에서 취재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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