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의 성적표를 아십니까?

입력 2013-02-04 10:46 수정 2013-02-04 10:46


  요즘과 같이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시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이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에는 일종의 사설 교육기관으로 서당이 있었습니다. 서당에는 훈장과 학동이 있었는데 유명한 훈장님을 문중이나 마을에서 초빙하였습니다. 서당에서는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을 비롯한 경서를 배우고 글을 짓기도 하고 글자를 쓰는 것을 배웠습니다. 서당의 규모나 사용하는 교재는 서당마다 조금씩 달랐다고 합니다.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다 배우고 나면 학부모들이 훈장님께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데 이를 ‘책거리’(다른 말로 ‘책씻이’ 또는 ‘책례’)라고 합니다. 이 풍습은 책이 흔치 않던 시절, 다 배운 책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후학들에게 물려준다는 의미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책거리는 훈장님의 노고에 보답하고 학동의 공부를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떡과 음식을 장만해서 먹었습니다. 이런 깊은 뜻을 담아 차린 상을 스승에게 먼저 드리면 학동들은 한 해 동안 배운 책을 덮어 놓고 돌아서서 외웠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와 스승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고 합니다.

  이것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스승이 뜻 있는 한문 한 글자를 써서 봉투에 담아 학동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단자수신(單字修身)’이라고 합니다. 이 단자수신은 일종의 성적표로 학동들이 평생 마음깊이 새기지 않으면 아니 될 가르침을 한 글자에 응집시킨 것입니다.
늦잠 자는 버릇이 있는 학동에게는 ‘닭 계(鷄)’를,
똑똑함이 지나친 학동에게는 ‘어리석을 우(愚)’를,
효성이 부족하다 싶으면 ‘까마귀 오(烏)’를,
성격이 급한 아이에게는 ‘참을 인(忍)’ 자를,
남에게 배려가 적고 독선적이면 ‘어질 인(仁)’을,
매사에 서둘러 일을 그르치면 천천히 걷는 ‘소 우(牛)’를,
게을러 학업을 잘 따라오지 못한 학동에게는 ’부지런한 근(勤)‘을 써서 주었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의 시인 몽담 김득신은 머리가 나쁘고 둔하여서 열 살이 되어서야 겨우 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매사에 성실하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이런 몽담을 아버지와 스승은 끝까지 믿어주었다고 합니다. 몽담은 단자수신으로 ‘없을 무(無)’를 성적표로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몽담은 ‘무식쟁이’라는 뜻인 줄 알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으나 훈장님이 ‘몽담은 성실하고 부지런하여 더 당부할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고 합니다. 몽담은 뒤늦은 59세에 소과에 합격해 아버지가 원하던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조선 최고의 독서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렇게 서당에서의 책거리 풍습은 스승의 은혜에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학업보다 인성과 배움의 자세를 먼저 생각했던 조상님들의 교육 철학이 들어 있는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너무나 경쟁에 치우쳐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떨어지고, 최고의 성적만을 요구하는 요즘과 같은 때에 조상님들의 여유와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런 여유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면 더 나은 [미래의 感나무]로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기웅130204(kiung58@empal.com)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HRD를 공부했으며, 쌍용자동차 총무팀장, 인재개발팀장을 거쳐 현재 영업서비스 교육팀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감성 칼럼니스트'로 사내외에서 리더십, 변화관리, 고객만족 등의 다양한 강의활동해오고 있다.
지은책: 내 마음의 한그루 感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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