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타는 어디에 있을까?”

은닉호를 뚫기 위해 온종일 돌 깨는 작업을 하느라 손톱 밑엔 피가 나고 정강이에도 멍이 들었지만, 바닷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내무반 막사로 돌아오자 다시 우타에 대한 그리움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다른 생각들을 밖으로 밀쳐냈다.

천매암을 뚫는 작업은 목수출신인 이응조가 줄자를 만들어 거리를 재고 새하얀 산호초 돌멩이로 천매암의 결을 표시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덕분에 예상보다 작업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 이수는 더 이상 공사방법에 대해 걱정하기보다 우타를 찾아낼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각반을 풀고 윗옷을 벗은 뒤 가슴팍 살갗에 돋은 소금기를 털어내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내일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의무대를 찾아가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이치가와 중대장의 연락병이 내무반으로 불쑥 들어와 ‘서이수 조장’을 찾았다.

중학교 상급생 쯤 되어 보이는 새카만 얼굴의 연락병은 이수에게 ‘우친’을 챙겨가지고 자마미 마을에 있는 우메자와 전대장의 숙소로 오란다고 전했다.
이수는 침상아래 보관해둔 우친 뿌리를 20여개쯤 얼른 챙겨 안고 재빠르게 앞서 달려가는 연락병의 뒤를 따라 컴컴한 아리랑고개를 넘어 자마미 마을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마을이 가까워오자 이수는 혹시라도 우타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씩 마음이 들뜨며 고무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저번처럼 쓸데없이 발소리를 크게 내진 않기로 했다. 스스로 발자국소리를 울리기보다 춤추듯 걷는 우타의 예리성을 청각 뿐 아니라 진동으로도 감지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감각기능을 가동했다.
자마미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사람들이 매일 다니는데도 아열대기후여서인지 길섶엔 잡초들이 무성했고, 듬성듬성 남은 관목들 사이에서 맴도는 바람소리는 풀벌레소리처럼 속삭였다.
모든 감각을 집중해도 사람의 발자국 소리라곤 연락병과 이수의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 얕은 계곡 가장자리에서 둔덕으로 올라온 바람이 이수의 코앞을 스치자 별안간 놀라운 체취가 느껴졌다. 그건 다름 아닌 우타의 몸 향기였다. 우타의 씻은 몸에선 언제나 ‘소시기’ 나무의 상큼한 향이 머물렀다.
수천가지의 꽃향기를 기막히게 구분해낼 수 있는 식물학자 서이수의 천재적 후각이 오랜만에 제 기능을 되찾았다.

‘소시기’는 오키나와 사투리인데, 본디는 상사수(相思樹)로 ‘서로 사랑하는 나무’라는 뜻. 5월에 노란색 꽃이 피면 향기가 온 동네에 퍼지는데, 특이한 건 이 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댓잎처럼 생긴 이파리와 줄기에서 신선한 향기를 내뿜었다.

상사수는 사실 원산지가 대만인데 메이지(明治) 때 일본이 대만을 합병한 뒤 나무까지 식민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오키나와에 옮겨와 방풍림으로 조성했다. 이를 함부로 옮겨 심은 건 일본인들이 이 상사수를 억지로 떼어 옮겨 심으면 나라가 망하는 현상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상사수 현상’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송나라보다 약 4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송(宋)이라는 한 나라가 있었는데, 강왕(康王)이 그 나라를 다스릴 때였다. 강왕은 어느 날 신하인 한빙의 아내 하씨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아내를 뺏기 위해 누명을 씌워 한빙을 감옥에 가두고 하씨를 데려와 궁궐 별실에 감금했다.

한빙은 죄가 없음을 아무리 탄원을 해도 강왕이 듣지 않자 옥중에서 자결하고 말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하씨는 ‘내가 죽으면 남편과 합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몰래 방을 빠져나와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남편을 뒤따랐다.

유서를 발견한 강왕은 화를 참지 못해 두 사람을 합장해주기는커녕 절대 서로 껴안을 수 없게 두 시체를 조금 떨어트려 마주보게 ‘세워서’ 매장했다. 그러자 며칠 뒤 두 사람의 무덤에서 2그루의 나무가 싹터 올라오더니 빠른 속도로 자라나, 두 나무는 줄기가 서로 기대어 엉키고 뿌리도 얽혀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강왕은 2그루의 나무를 딴 곳으로 옮기라고 했는데, 신하들이 그 무덤에 가보니 한빙과 하씨가 원앙새 1쌍이 되어 그 나무위에서 지저귀다가 함께 하늘로 날아갔다. 이 때 옮겨 심은 나무들을 ‘상사수’라 했는데, 이 나무는 온 세상에 퍼져 향기를 뿜으며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만들지만, 송나라는 제, 초, 위의 연합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대만에 있는 ‘상사수’를 억지로 떼어와 오키나와로 옮긴 일본도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이수는 ‘사랑’이 ‘식물’의 현상으로 표출되는 이 이야기의 진실을 굳게 믿고 있으며, 자신과 우타의 영혼도 언젠가 식물을 통해 표상될 것으로 예감했다.

< 사랑하는 사람을 강제로 떼놓으면 하늘도 노한다>

마을에 들어서자 소시기의 향은 엷어졌고, 마을 중앙에 있는 우메자와 전대장 숙소의 불빛이 무대조명처럼 어둠을 밀쳐내며 환한 반원형 공간을 형성했다. 마을에 불이 켜진 곳은 이 집뿐이었다.

골목을 지나 먼저 대문 안으로 들어간 연락병이 우메자와 전대장의 숙소 앞에서 이수가 왔다고 큰 소리로 보고하자 방문이 열리며 이치카와 중대장이 고개를 쑥 내미는데 약간 취기가 올라보였다. 이수가 경례를 한 뒤 중대장에게 우친봉지를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이봐!, 여기까지 왔으면 방에 들어와서 우리 전대장님께 인사하고 가야지!”

이수는 소금 냄새가 나는 후줄근한 군복을 걸치고 전대장을 대면하기가 꺼림칙한데다 일개 조선인 군부가 자마미의 최고위 장교인 전대장과 한자리에 앉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머뭇거렸지만, 이수를 노려보는 이치카와 중대장의 눈빛이 너무나 단호해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신발을 벗고 헛기침을 하면서 3개의 등불이 켜져 있는 넓은 방안으로 들어서서 우메자와 전대장에게 경례를 부쳤지만 전대장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치카와 중대장은 확고한 태도로 이수를 전대장에게 소개했다.
“대장님, 이놈 제 아우인데, 아와모리 한잔 먹여 보내도 되겠습니까?”
“어? 뭐어? 아우라고?...그럼, 당연히 한잔 줘야지.”

이수는 자신의 절여진 소금냄새가 방안 분위기를 깨지 않을까 신경 쓰며 이치가와 옆자리에 소리 나지 않게 앉았다.
이치카와 중대장은 요즘 우친이 상처를 빨리 낫게 하는데 효능을 가진데다, 숙취에 굉장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우친 숭배자가 되었다.
그래서 자마미 주민들에게 수소문을 해 우친 한 자루를 얻어 이수에게 식용할 수 있도록 가공해달라고 한 뒤 틈나는 대로 섭취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도 우메자와 전대장에게 우친 자랑을 계속하다가 결국 연락병을 통해 우친 뿌리를 가져오라고 이수에게 부탁한 모양이다.
이수가 중대장의 옆자리에 앉자 그는 이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어깨를 가볍게 손을 얹었지만, 이수는 이 자리가 너무나 불편했다.
이파(李波)...소설가.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연구소장,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 도키와대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콘텐츠개발업체 (주)기업&미디어 발행인.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지난 15년간 도쿄 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계속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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