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과 장맛비 그리고 'A Single Man'

입력 2014-07-25 22:17 수정 2015-01-15 15:50
낮술

김수열

인생에게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비 내리는 낮술을 안다

살아도 살아도 삶이 내게 오지 않을 때
벗이 있어도 낯설게만 느껴질 때
나와 내가 마주 앉아 쓸쓸한
눈물 한 잔 따르는

그 뜨거움

'살아도 살아도 삶이 내게 오지 않을 때'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Abel Korzeniowski, 1972~ )의 음악은 어떨는지요. 고전적 영화음악의 아련한 멜로디가 살아있으면서도 클래식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곡을 쓰는 작곡가이자 첼로 연주가입니다. 음표와 음표 사이의 순간적 공간에 빚어내는 슬픔의 떨림이 웅숭깊습니다. 2010년 공개된 영화 'A Single Man' 사운드 트랙으로 유명세를 탔지요. 활동권이 폴란드와 독일, 슬로바키아 등 중부 유럽에 머물고 있는 신예지만 장면에 딱 들어맞는 긴장감 묘사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 Abel Korzeniowski - Stillness of the Mind ('A Single Man' Soundtrack)


▲ Abel Korzeniowski - Satin Birds, Part 2 W.E


 

 

 

 

 

 

 

 

 

 

 

 

 

 

 

 

 

코르제니오프스키가 주제곡을 만든 'A Single Man'은 제목처럼 상당히 고독한 내용의 영화입니다. 16년을 사귀던 동성 연인을 교통 사고로 잃은 조지 팰코너(콜린 퍼스)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상실하거나 단절되는, 또는 새로이 정립되는 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습니다. 감독은 디자이너 출신인 톰 포드. 주인공 콜린 퍼스의 허한 눈빛과 표정 연기가 영화 전편을 이끌어갑니다.

노년의 대학 교수는 쇠퇴한 열정에 대한 갈망, 불공정하거나 지나치게 공정한 척하는 세상에 대한 환멸,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욕정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마침내 삶을 정리하려는 그 앞에 매력적인 제자 케니가 접근합니다. 이제 과거의 연인을 잊고 케니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마음을 굳히기 시작하는데…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다른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몇몇 순간들이야"라는 대사가 특히 기억에 남고요. 후회할 때 기회는 오고, 행복하기 시작하면 다시 기회는 간다는 우리 삶의 오묘한 방정식을 절감하게 합니다. 루즈한 컷과 낮은 영상 채도가 눈길을 끄는데요. '심리 변화를 색감으로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은 구찌(Gucci)를 되살린 인물로 평가받는 톰 포드 감독에 힘입은 바 큽니다. "패션의 역사는 톰 포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말한 디자이너마저 있습니다.

굵은 장맛비가 지칠 줄도 모르고 내리는 밤이네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 Elena Kamburova - Dozhdik Osennij(가을비)


▲ Mayte Martin - Veinte Anos(중독된 고독)

내가 아프다고 할 때 "약 먹어" 하지 말고 "어디가 아프니? 많이 아파?"라고 해주세요.
내가 사랑한다고 할 때 "그래" 하지 말고 "나두 사랑해"라고 해주세요.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 "응" 하지 말고 "나두 많이 보고 싶다"라고 해주세요.
내가 힘들다고 할 때 "나두 힘들다" 하지 말고 "힘들 때 내 어깨에 기대"라고 해주세요.
내가 헤어지자고 할 때 "그래 헤어지자" 하지 말고 "사랑해. 가지 마"라고 해주세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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