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내려가서 에이 포 용지 몇 장 하고 볼펜 좀 빌려 올래?”

꽤 늦은 시간인데도 사부 김중수 프로가 뱁새 김용준 프로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넵!”

사부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뱁새가(글쎄다? 롱 퍼팅 방법은 사부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고 제 입으로 얘기하더니? 캑) 잽싸게 1층 사무실로 내려간다.

 

2016년 2월 중순 어느 날.

이제 막 도착한 태국 방콕 아티타야 골프장에 가까운 작은 리조트.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날씨는 후텁지근하다.

사무실 맞은 편 식당에는 한국 사람 여럿이 술을 마시고 있다.

(나중에 인사하고 보니 이들 중 상당수가 제자들 데리고 전지훈련 온 한국 프로다)

 

“종이와 볼펜 여기 대령했습니다!”

날듯이 3층 방까지 뛰어올라가 사부에게 물건을 내미는 뱁새.

 

사부는 책상 앞에 앉아 A4용지로 종이접기를 하는가 싶더니 다시 펴서 볼펜으로 줄을 이리 저리 긋는다.

 

‘뭘 하시는 거지?’

뱁새는 사부 어깨 너머로 쫑긋하고 바라본다.

 

사부가 숫자를 써 넣는데 꼭 달력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랬다.

사부가 그리고 있는 것은 달력이다.

2월 중에서도 두 사람이 이곳에 머물 기간만 표시한 달력.

 

뱁새와 사부는 이날부터 보름간 전지훈련 왔다.

투어에 전념하는 이들은 몇 달씩 오기도 하는데 두 사람은 겨우 이만큼 시간을 낸 것이다.

 

뱁새는 전지훈련이 평생 처음이다.

물론 겨울에 지인과 외국에 나가서 사나흘 골프를 친 적은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보름 일정으로 오로지 골프만을 위해 와 본 적은 없다.

그것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부를 모시고.

 

때는 2016년 2월 중순.

그 전 해 10월 말 뱁새가 KPGA 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것은 이미 독자도 알 것이다.

그 이후로 김중수 프로를 사부로 모시고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뱁새가 무려 100일 가까이 하프 스윙만 연습한 사실(사부 안 보는 곳에서는 풀 스윙도 했다고 하더니? 흠흠)도.

 

사부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뱁새에게 동계훈련을 가자고 했다.

(당시에는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후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골프라면 ‘환장’하는 뱁새가 마다할 리 없다.

그래서 둘은 부랴부랴 짐을 꾸려 태국에 왔다.

(그래도 뱁새가 사부 모신다고 비행기 표도 제가 끊었다고 하니 아주 위 아래도 몰라보는 녀석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동계훈련은 한국에서 연습한 것을 실전에 써 먹는 것이다”

사부는 동계 훈련을 이렇게 정의했다.

 

“동계 훈련 와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그 전에 하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여기 와서야 새로 연습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사부는 그런 것은 놀러 오는 것이지 동계훈련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초보 프로 뱁새가 무슨 말인지 짐작만 할 뿐 다 알 턱이 있겠는가?

 

뱁새는 그저 ‘사부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만 담고 왔다.

또 ‘사부에게 잃을 것이 뻔하니’ 내깃돈으로 쓸 바트화를 약간 두둑하게 챙겨왔다.

(아 참. 실력이 부족함을 알고 로스트 볼도 넉넉히 가져가지 않았니!)

 

‘앞으로 보름간 뭘 할 지 혹은 뭘 했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사부가 달력을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새벽 5시면 사부는 뱁새를 깨운다.

(‘노친네가 잠도 없나?’하고 뱁새가 푸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둘은 5시30분부터 주는 아침밥을 최대한 든든히 챙겨 먹는다.

‘끄윽’하는 트림 소리가 나고서도 더 우겨 넣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밤에 미리 얼려둔 생수를 여러 병 백팩(등에 지는 가방)에 담는다.

바나나 따위도 식당에서 챙긴다.

 

그리곤 이 닦을 새도 없이 둘은 골프 코스로 나간다.

일찍 첫 홀에 들어서기 위해서.

 

하루에 두 바퀴 도는 것은 느긋하게 굴어도 문제 없다.

그러나 사부는 두 바퀴 돌고 나서 드라이빙 레인지와 숏 게임 그린에서 연습을 하자고 한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적도 지방이니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여섯 시 갓 넘어서 어렴풋이 필드가 보이면 첫 티샷을 한다.

사제지간이지만 내기에는 에누리가 없다.

(뭘 그래? 하루는 사부에게 66타 버디 여덟 방 얻어 맞고 2000 바트나 잃었는데 사부가 반만 받았다며! 쉿!)

 

11시 조금 못 되어서 아침 라운드가 끝나면 둘은 곧바로 숙소로 돌아온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꽉꽉 채워 넣었는데도 어째 그리 배가 빨리 꺼지는지.

 

땀 흘려 운동하면 입맛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며칠 지나니 너무 힘들어서인지 밥맛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뱁새는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힘을 써야 하니까.

 

오후 라운드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곤 한다.

라운드가 끝나면 둘은 지체 없이 드라이빙 레인지로 이동한다.

거기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모기들이 달라붙을 때까지 샷 연습을 한다.

 

천연 잔디 연습장에서 실컷 볼을 쳐 보기는 처음인 뱁새.

사부가 하는 모양을 보니 디봇이 가지런하게 난다.

최소한 잔디를 덜 손상하면서 샷 연습을 하는 것이다.

반면 뱁새 디봇은 가관이다.

쥐가 뜯어 먹은 듯 제 멋대로다.

 

오후 라운드 및 연습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서 씻고 나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시간에는 고참 프로들이 모여 술을 한 잔씩 한다.

뱁새는 애초에 술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쌩 초보 프로가 연습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술자리에서 노닥거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보름간 거의 술자리에 끼지 않는다.

 

술을 가끔 한 잔씩 즐기는 사부도 한 두 번 인사치레로 동석할 뿐 동계훈련 기간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밤에 식당에 내려가는 것을 삼간다.

 

사부가 만든 달력에는 매일 라운드 한 홀 수와 라운드 끝나고 연습한 시간 등이 빽빽하게 적힌다.

중간에 단체 회식자리여서 방콕 시내에 나갔다 온 날과 귀국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36홀을 돈 것이다.

드라이빙 레인지 연습을 거른 날은 하루도 없다.

 

'뭔가 일을 낼 것 같은' 자신감을 얻게 된 뱁새.

'이렇게 몇 달만 연습하면 진짜 투어에 뛰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당시에 했지만

나중에 2부 투어에서 영건들과 붙어보니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되긴 한다.

그래도 동계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2016년 뱁새 샷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사람 됐다”

선배인 김기종 프로가 전지 훈련 다녀온 뱁새 샷을 나중에 보고 한 얘기다.

 

“공도 못치는 **이 플레이는 **게 느리다”

고 매섭게 뱁새를 구박한 적이 있는 그가 한 말이 공치사는 아닐 것이다.

(첫 **과 나중 **이 무슨 말이었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전지훈련을 떠나는 계절이 다시 왔다.

뱁새는 사부와 함께한 평생 첫 전지훈련 기억이 새롭다.

사부 김중수 프로는 현재 베트남에 전지훈련 겸 일 겸 해서 나가 있다.

뱁새도 오늘 베트남으로 나간다.

열흘 조금 못 되는 일정으로.

그런데 사부는 저 위쪽 하롱베이에 있고 뱁새는 저 밑 호치민으로 가는 길이어서 함께 할 수가 없다.

 

‘사부 계신 곳에 가서 한 수 배워야 하는 데’

뱁새는 사부가 그리워 코끝이 찡하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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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뱁새가 평생 처음 간 전지훈련에서 뱁새에게 있는 것 없는 것 가르치느라 애를 먹은 사부 김중수 프로. 그 앞에 놓인 코코넛은 그 직전홀까지 진 사람이 사기로 한 것인데 누가 샀을 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흑흑. 사부는 이 때까지만 해도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금연했다. 담배  끊은 사람은 독하다던데 맞는 말이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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