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누구십니까?”

앞 팀이 세컨 샷 지점에서 볼을 찾느라 뭉그적거리는 사이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서 빈 스윙을 하고 있는 뱁새 김용준 프로 귀에 경기위원 목소리가 파고 든다.

(언제부턴가 누가 이름을 불러도 뱁새라고 들린다나?)

 

고개를 돌려보니 카트 운전대에 끼워놓은 스코어 카드를 살펴보면서 뱁새 이름을 부르는 것 아닌가?

뱁새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걱정으로.

 

“네? 제가 뱁새인데요?”

쭈뼛거리며 뱁새가 답한다.

 

“현재까지 2언더파 맞으십니까?”

속뜻을 종잡을 수 없는 음색으로 경기위원이 뱁새에게 묻는다.

 

“네. 맞습니다. 왜 그러시는지요?”

뱁새가 살짝 가슴을 졸이며 경기위원 눈치를 살핀다.

 

“아! 아닙니다. 그냥, 조금 전에 3언더파로 지나가신 분이 한 분 계셔서요!”

뱁새의 불안감을 읽었는지 경기위원이 씨익 웃으면 답한다.

 

‘휴~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뱁새는 안도하는 한숨을 쉰다.

 

앞 팀이 세컨 샷을 치고 빠져나가자 뱁새는 티잉 그라운드로 올라간다.

 

“혹시 3언더파로 가신 분 이름이 뭔가요?”

티를 꽂고 나서 몸을 일으키던 뱁새가 문득 생각이 난 듯 경기위원에게 묻는다.

 

“김중수 프로님인 것 같습니다”

경기위원이 고개를 잠깐 갸웃하더니 답한다.

 

경기위원 입에서 멘토(후일 뱁새의 사부가 된다) 이름이 나오자

뱁새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생각과 동시에

‘어떻게든 따라잡아야겠다’는 투지가 생긴다.

 

지난 열세홀 동안 뱁새는 버디 두 방에 올 파를 기록하며 2언더파를 쳤다.

후반 다섯번째인 이번 홀은 파5이다.

당초 집에서는  하이브리드로 안전하게 티 샷을 하고 세컨 샷도 끊어 가서 3온 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왔다.

그런 뱁새가 갑자기 하이브리드를 집어 넣고 드라이브를 잡아든다.

숏티를 뽑고 롱티를 꽂은 다음 볼을 얹고 목표를 수정한다.

김중수 프로가 한 타 앞선 채로 지나갔다고 하니 공격적으로 나가보자고 작전을 급변경하는 것이다.

 

때는 2015년 9월14일 월요일.

뱁새는 충남 공주 프린세스CC 서코스 5번홀 파5에 서 있다.

우리는 뱁새가 이 해 10월30일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모르는 독자는 '뱁새도 했는데 나는 왜 못해' 편들을 무더기로 건너 뛰고 온 것이니 꼭 돌아가서 보기 바란다. 눈물겨운 뱁새의 도전을. 흑흑. 지금 생각해도 뱁새가 안쓰럽다)

그러니 이날 현재 뱁새는 KPGA 프로가 아니다.

이날 대회는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GTF) 한국지부 대회다.

뱁새는 이 협회 회원이 되면서 첫 대회에 나와 사부와 인연을 맺었다.

이날 시합도 KPGA 프로 테스트 준비겸해서 출전한 것이다.

 

KPGA 프로 테스트를 준비하느라 샷을 연마하고 있는 뱁새는 이날 시합에서 선전을 하고 있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페어웨이가 좁기로 유명한 프린세스CC에서 용케 OB 한방 내지 않고 잘 달래가며 2언더파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훗날 사부가 될 김중수 프로가 이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 자신보다 한 타 앞서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있지도 않던 '라이벌 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어쭈. 사부 전지훈련 가서 안 볼 때라고 막 쓴다. 라이벌이 어쩌고 저쩌고. 저번 회에는 아마 '청출어람' 애기도 나왔지?)

이 홀은 중간에 연못과 이어진 개울이 있는 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멀어진다.

2온 작전을 펴려면 티샷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멀리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왼쪽으로 가면 바로 해저드행이다.

 

2온을 노려보기로 마음은 먹었어도 막상 뱁새 마음은 긴가민가다.

그래서인지 드라이버 샷을 호쾌하게 날리지 못하고 치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래도 프로 테스트를 한참 준비하던 중이어서 힘이 붙어 있는지 볼은 제법 멀리 날아간다.

 

페어웨이 오른쪽 거의 끝까지 날아간 볼에서 핀까지 남은 거리는 210미터 남짓.

오르막과 그린 왼쪽 앞에 있는 또 다른 연못까지 감안해 넉넉하게 잡는다고 3번 우드를 꺼내 드는 뱁새.

시원하게 세컨샷을 날리는 데 어째 볼이 날아가는 조짐이 심상치가 않다.

 

아니나 달라!

볼은 앞 핀을 훌쩍 지나쳐 그린 저 뒤쪽까지 굴러간다.

 

뱁새는

‘어프러치만 잘 하면 버디 잡을 수 있다. 그럼 중수 형님과 한 타 차이고 남은 네 홀에서 따라 잡으면 돼’하는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중수 형님도 이 홀에서 버디를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데 그렇다면 4언더파가 됐을 것 아냐? 버디를 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하네?’라는 생각까지 한다.

(얼씨구! 자~알 한다)

 

어이 없지 않은가?

하수가 착실하게 실력껏 칠 생각은 안 하고 상수에게 들이대 볼 요량이나 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더라도 경험상 어디 '한 타 한 타 세면서 치면' 결과가 좋던가?

 

어쨌거나 골프 치는 모양새가 이러니 뱁새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래도 뱁새는 '어떻게든 해 볼 셈'으로 홀까지 가는 서른 발짝쯤 되는 길을 현장답사 하며 작전을 짠다.

그런데 그 작전이란  것이

‘일단 칩 샷으로 이글을  노려보고 안 되면 퍼팅을 잘 해서 버디로 마무리 한다’이다.

근거 없는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54도 웨지를 들고 여남은 번은 족히 되게 연습스윙을 하더니 볼을 자신 있게 베어내기는 하는 뱁새.

볼은 그린 위 적당한 자리에 떨어져서 내리막을 타고 홀을 향해 구르는가 싶더니 홀 근처에 와서 급경사에 이르자 속도가 전혀 줄지 않고 계속 굴러 한참 지나간다.

 

홀까지 남은 거리는 오르막 일곱 발짝.

‘잘 하면 이 거리에서도 넣을 수 있다’는 뱁새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과도한 힘으로 분출되고 볼은 다시 홀을 지나 두 발짝이나 굴러간다.

 

'2온이 어쩌고 이글이 저쩌고 하더니 버디는 커녕 파도 쉽지 않은 지경'이 된 것이다.

(속이 시원하다. 큭큭)

 

그제서야 안되겠는지 뱁새가 호흡을 가다듬고 열심히 브레이크를 살핀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를 한참 하더니 볼을 내려 놓고 마크를 집어드는 뱁새.

급한 내리막에 볼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태우는지 스트로크가

‘새색시가 요강 이고 가듯’ 한다.

 

볼은 하시라도 멈춰설 것 같으면서도 찔끔찔끔 구르더니

아! 글쎄!

'꼴까닥' 하고 홀로 떨어진다.

 

‘와우!’

나이도 자신보다 훨씬 많고 낯설기도 한 동반자들 틈이라 차마 큰 소리는 지르지는 못하고 주위에 드릴둥 말둥 하게만 환호하는 뱁새.

그래도 왼손 주먹을 꽉 쥐어 보는 것이 말도 못하게 좋은가 보다.

 

남은 홀은 넷.

 

‘중수 형님은 지금 몇 언더파일까?’

‘따라잡을 수 있을까?’

다음 홀로 이동하는 카트 속에서도 뱁새 머리 속은

‘샷을 어떻게 하고 퍼팅은 어떻게 하자’ 따위로 컨디션을 끌어올릴 계책은 없고

오로지 타수만 생각한다.

 

과연 뱁새는 이런 멘탈로 미래의 사부 김중수 프로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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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가겠다고 기껏 하이브리드를 잡아놓고도 욕심이 목까지 차서 얼마나 힘껏 휘두르는지 자세가 무너지면서 체중이동도 잘 되지 않는 엉터리 샷을 하는 뱁새 김용준 프로. 김 프로를 한 라운드 내내 따라다녀도 결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날이 되어야 그가 우승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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