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입력 2013-08-12 19:22 수정 2013-08-22 16:07

1972년 가을, 서울 어느 고교의 3학년 교실. 쉬는 시간 학생들이 여기저기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중 서너 명은 조선일보에 연재 중이던 소설을 화젯거리로 삼아 킬킬대고 있었는데요. 바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호스티스라는 소재에다 작가의 감각적이면서 세련된 문체가 더해져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의 정서를 파고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에 의해서도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리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쩌면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보다 사회적 파장이 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 '별들의 고향'. 대중적이면서도 참신했습니다.

최인호는 당시 '별들의 고향'을 '호스티스 문학'으로 규정하는 문단 일각에 대해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엘리트와 대중의 이분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게지요. 그는 '청년문화 선언'이란 글에서 "오늘날의 청년문화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서 대표되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라며 "고전이 무너져가고 있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중의 감각이 세련되어 가고 있음을 주목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그들을 욕하기 전에 한 번 가서 밤을 새워보라. 음악에 몸을 맡기고 종전처럼 둘이 추는 춤이 아니라 혼자 떨어져 격식도 없이 몸을 흔들어대는 젊은이들의 감은 눈을 보라. 노름판에 끼어들려면 최소한 판돈은 대고 덤벼들어야지!"

"최인호 문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매력적이다. 그의 모든 작품은 냉정한 분석을 방해하고 독자들의 감수성에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현란한 원색의 매력으로 충만해 있다. 그는 현대 도시인의 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성감대를 찾아내고 그것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데 실로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과장된 수사, 팽팽한 속도감, 관능적인 분위기, 생동하는 문체, 흥미 만점의 구성, 우상 파괴적 제스처 어느 하나도 오늘날의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는 것이 없다."(평론가 이동하)





어쨌든 이 작품으로 26세 최인호는 일약 청년문화의 기수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74년, 같은 서울고 동문인 신인 이장호 감독이 동명의 타이틀로 영화를 만들어 46만 명을 동원합니다. 평균 관객수 2천~3천 명 시절, 그것도 비수기라는 5월 을지로 국도극장 단 한 곳에서 일궈낸 대기록이지요. 이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감각적 대사, 묘한 느낌의 영상, 서정적이고 젊은 음악에 힘입은 바 큽니다.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고 싶어했던 여주인공이 사회적 편견에 짓밟히는 냉혹한 현실을 반영했다고 해서 특별히 젊은 층의 호응을 많이 얻었습니다. 불황에 허덕이던 70년대 한국 영화는 '별들의 고향'으로 인해 마침내 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지요. '초짜' 이장호 감독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하며 아역 배우 출신인 안인숙 역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오릅니다.

"첫 사랑에게서 버림받은 경아(안인숙)는 천성의 밝음으로 슬픔을 이겨내고 중년의 이만준(윤일봉) 후처로 들어간다. 그러나 임신했던 과거가 드러나 헤어지게 되면서 술을 가까이 하게 돼 동혁(백일섭)에 의해 호스티스로 전락한다. 이어 문호(신성일)라는 화가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심한 알콜 중독과 자학에 빠진 문호는 그녀를 다시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고 새벽에 몰래 방을 빠져나온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눈 내리는 밤, 길거리에서 젊은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영화는 주인공인 경아와 문호의 사랑을 중심에 두고 경아가 그동안 만났던 세 남자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내 입술은 조그만 술잔이에요", "오랜 만에 같이 누워 보는군" 같은 대사가 인상적이고요. 당시 17세였던 윤시내가 들려주는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와 이장희가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한 소녀가 울고 있네', '겨울 이야기', '촛불을 켜세요' 등의 수록곡들이 모두 히트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한 잔의 추억






▲ 겨울 이야기






▲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


▲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






▲ 무지개







▲ 휘파람을 부세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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