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동치미 국물만 마시던 어머니

입력 2012-12-02 20:53 수정 2012-12-03 12:05



한 겨울날 아침 일찍이 어머니는 김 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엘 갔다. 중학생인 나를 앞세운 채 시오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김을 팔아 내 등록금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늘에는 시꺼먼 구름장들이 덮여 있었다. 금방 함박눈송이를 쏟아놓을 것 같았다.
장바닥에 김을 펼쳐놓았다. 가능하면 빨리 그것을 팔아넘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른 김은 눈비를 맞으면 망치게 되는 상품이었다.
어머니는 점심때가 가까웠을 때 한 상인에게 통사정을 하여 김을 넘겼다. 등록금과 차비를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나서 어머니 주머니에 얼마쯤의 푼돈이 남았을까. 그 푼돈은 가용으로 써야 할 터이다.

이제 어머니와 나는 헤어져야 했다. 나는 장흥행 버스에 올라야 하고, 어머니는 고향 집으로 걸어서 가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점심을 먹여 보내려고 한 팥죽 가게 포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팥죽 한 그릇만 주시오.”
주인이 팥죽 한 사발과 싱건지 한 종지기를 탁자에 놓아주었다.
“차 시간 늦것다. 얼른 묵어라.”
어머니는 나에게 재촉하면서 주인에게 숟가락 하나를 더 달라고 하더니, 싱건지국을 마셨다. 아침에 먹은 것 때문에 속이 불편하다면서.
나는 어머니의 속을 다 알고 있었다. 당신도 배가 고프지만 아들한테만 먹이고 그냥 굶고 가려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잡수시오.”
내가 말해도 어머니는 고개를 젓고 싱건지국을 한 종지기 더 달라고 해서 마시고 또 다시 한 종지기 더 달라고 해서 마셨다.
나는 혼자서 팥죽을 먹었다. 한데 그 팥죽 덩어리가 스펀지처럼 퍼석거렸다. 어머니가 정말로 속이 불편해서 팥죽을 먹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면서.
팥죽집을 나오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돈이 좀 넉넉하면 돼지고깃국이나 좀 사서 먹여 보낼 것인데….”

차부로 가자 버스가 출발하려 했다. 나는 달려가서 차에 올랐다. 어머니는 나에게 제때에 밥 잘 지어 먹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고 나서 목에 두른 수건을 풀더니, 한 자락을 머리에 쓰고 다른 한 자락을 목에 감아 힘껏 조였다. 함박꽃 같은 눈송이들이 봄날 벚꽃잎들처럼 휘날렸다. 출발하는 버스 창밖으로 눈보라 헤치며 걸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그 어머니는 90세이시고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있는데, 눈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내 머리 속에, 흰 목수건을 머리에 쓰고 6킬로미터의 눈보라 길을 걸어가시는 그 어머니의 모습이 어제의 일인 양 떠오르곤 한다.



- 한승원 ‘한겨울에 싱건지국만 마시던 어머니’

추운 겨울날 자식 등록금을 만들기 위해 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15리를 걸어 장에 가던 어머니. 김 판 돈으로 자식에게 팥죽을 먹이고 자신은 동치미 국물만 마시던 그 어머니는 작가의 어머니이면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입니다. 억척스러우면서도 씩씩했던 여인들의 아름다운 희생, 생각만 해도 고개가 수그러드는데요. 싹이 나고 열매가 익었던 차진 계절엔 마냥 잊고 살다가 낙엽이 다 지고 밭은 바람 부는 겨울이 되자 새삼 그립습니다. 언제고 거부하지 않아 더욱 간절한 품이….






▲ 수니- 내 가슴에 달이 있다(임의진 詩, 수니 曲)

이번 겨울은 초반부터 강추위가 온다고 합니다. 예보에 의하면 추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사나흘 간격으로 한파가 왔다 풀리기를 반복한다는군요. 소위 삼한 사온이지요. 여러 날 계속 추울 땐 우리 몸이 그에 적응하지만 기온이 널뛰기를 하면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아진다니 조심해야겠습니다. 한파와 함께 국지적인 폭설도 잦을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지금이 12월 초, 잊을 것과 버릴 것 좀 챙겨봐야겠네요.






▲ 이승훈- 비 오는 거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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