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태가 아름다운 사람들

입력 2012-11-14 00:46 수정 2013-05-30 14:25



“인간이 외로운 건 일평생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외로움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두려움 없이 어둠을 응시할 리 없다.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뒷모습 같은 진실과 마주치려면, 목이 꺾이는 죽음을 각오한 채 맹렬한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 백영옥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자음과모음)’

뒷모습은 진실입니다. 꾸밀 만한 방편이 없습니다. 무방비 상태의 민낯이 남에게 읽힐까 조마조마합니다. 뒷모습은 쓸쓸함입니다. 아파도 손길 한 번 느낄 수 없고 사랑의 포옹도 없습니다. 그 외로움이 자신에게 읽힐까 두렵습니다. 뒷모습은 수줍음입니다. 도무지 익숙하지 않으며 낯설기만 합니다. 주저주저하는 모습이 세상에 읽힐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뒷모습은 묘하게도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입니다. 손택수 시인은 병든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불문학자인 김화영 교수는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뒷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벌거벗은 엉덩이는 그 멍청할 정도의 순진함 때문에 아름답다. 뒷모습은 단순 소박하다. 복잡한 디테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한 판의 공간, 한 자락의 옷, 하나의 전체일 뿐이다. 무희나 패션 모델이나 조각상의 벌거벗은 등은 하나의 평면처럼 빛을 고루 반사한다.” - 김화영, 미셀 투르니에 & 에두아르 부바 ‘뒷모습(현대문학)’ 중 ‘역자의 말’

이제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 1923~1999)의 영상 세계로 들어가 보지요. 그는 독학으로 사진술을 배운 프랑스 작가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중 파리에 있는 에콜 에스티엔느에서 사진 요판술을 공부한 것이 학력의 전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7년 코닥 상을 수상했으며 고급 예술지 ‘레알리테’에 오랫동안 작품을 실은 이후 독자적으로 활동했고요. 1984년에는 사진부문 국가대상을 받았습니다. 여행을 통한 열린 시각으로 노동자, 어머니, 노인, 어린이 등의 뒷모습을 주로 찍은 독특한 철학의 소유자입니다.


▲ 에두아르 부바, 인도, 1972


▲ 에두아르 부바, 뤽 상브르 공원, 파리, 1946


▲ 에두아르 부바, 일본


▲ 에두아르 부바




▲ 에두아르 부바, 퐁뇌프


▲ 에두아르 부바, 바랑주빌, 노르망디


▲ 에두아르 부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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