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끊어진 곳, 길이 없는가 했더니…

입력 2012-11-03 17:40 수정 2012-11-18 10:32



어제 저녁 청계천에서는 ‘서울 등(燈) 축제’가 열렸습니다. 국내외에서 제작된 3만5천여 개의 아름다운 등불이 청계광장~세운교 아래 1.5km 물길을 수놓았지요. 첫날이어서 그런지 인파가 쇄도했습니다. 긴 줄을 서서라도 행사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겁더군요. 청계광장에서부터 세운상가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행렬에 묻혀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대문과 사소문을 정교하게 본뜬 한양 도성 미니어처, 한글 등 세종의 업적을 드러내는 문화 유산, 조선 군인의 모습을 한 등불들이 은근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고요. 신문고, 전통 혼례, 널뛰기, 연날리기처럼 백성의 일상을 형상화한 작품들도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등의 외부는 전통 한지로 제작된 것 같았습니다.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만든 것도 여러 점 공수돼 왔더군요.     

급강하한 체감 온도도 아랑 곳 없는 듯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따뜻하게 손잡은 가족, 정답게 어깨동무한 친구, 굳게 팔짱을 낀 연인들이 뒤섞여 매우 혼잡했지만 서로 길을 터주고 막히면 기다릴 줄 아는 배려와 아량이 있어 푸근했지요.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형형색색의 등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 모습들을 보며 ‘아차, 디카라도 가지고 올 걸’ 하고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냥 걸을 수밖에요.

산이 다하고 물길이 끊어진 곳에 길이 없는가 했더니
버드나무 어두운 곳, 밝게 피어 있는 꽃 너머로 또 마을 하나

- 육유(陸游, 1125~1210, 중국 남송의 시인)















▲ 경주 계림, 보문단지 <사진: 김선미>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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