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형 사랑

입력 2012-10-13 01:02 수정 2012-10-15 15:42
 


“정년퇴직을 하고서도 그때까지 일해 온 만큼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할 때, 무엇이 나머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을 남을 위해 오랫동안 쓸 수 있다면 으뜸일 것입니다. 그것이 곧 자원봉사일 터인데, 평생 봉사해본 경험도 없고 그러한 훈련이 안 된 사람은 남한테 베풀 줄 모르기 때문에, 이들이 준비 없이 그대로 늙으면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요. (중략) 받는 것만 아는 사람이 바로 거지인데, 거지가 될 것인가, 남에게 주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래요. 남에게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부자이지요.”

콘텐츠 미디어 그룹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대표가 생각하는 부자론(論)입니다. 마음 한 켠에 스크랩을 해두고 수시로 되새겨볼 만한 경구인데요. ‘월간 디자인’, ‘행복이가득한집’ 등 10여 개의 잡지를 창간하고 500권 이상의 단행본을 발행한 출판 경영인이자 디자이너, 전시 기획자인 그녀가 신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행복, 만족, 부(富), 기쁨과 사랑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람 냄새 솔솔 풍기는 주변 인사들의 체험과 자신의 느낌을 정리한 60여 편의 글들을 묶은 것이지요.

호주로 유학 간 아들이 좋아하는 순대를 허리에 벨트처럼 두르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 행여 터질까봐 열두 시간 넘게 의자에 몸을 기대지 않았다는 한 어머니 이야기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는 소녀 같은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대외적으로는 대단히 활동적인 남편이 집에만 들어오면 붙박이장처럼 꼼짝도 안 한다고 불평하면서도 모든 것을 수용하는 여자를 보고 ‘아내라는 이름만큼 정답고 마음 놓이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단어가 어디 있으랴. 아내는 남편의 영원한 누님일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합니다.

빚보증 선 게 잘못되어 몇십 억의 부도를 냈던 선배가 예상도 못했던 보험금을 타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새옹지마, 허허실실의 미학을 발견합니다. 나쁜 것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배웠다지요. 삶의 템포와 강약을 조절하는 이런 유연한 사고는 잘 발효된 예쁜 술빛처럼 반짝이며 ‘인생 반전의 성공학’이라는 성찰에 도달합니다.





저자는 나이 듦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원만해진다고 하는데, 별사탕같이 뾰족뾰족한 각들을 닳게 하여 원에 가깝게 만들기까지 누구나 나름대로 연상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략) 요즈음처럼 아름다운 계절이 확연히 느껴지는 풍광 앞에서 ‘그래, 이 계절을 열댓 번만 더 보면 그만이겠구나’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아옹다옹 살지 말아야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살아야지,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야지, 늘 웃으면서 살아야지….”

남편에게 헌신하고 자식들 잘 키워 출가시켰으며 며느리로서도 최선을 다해온 어떤 여인이 어느 날 부쩍 늙은 자신을 발견하고 ‘통곡했다’는 말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략 있는 할머니’가 될 것을 권고합니다.

“인생은 선택이 가득한 삶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누구나 몇 차례쯤 늘 해오던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방법에 반항해보고, 반역해보는 것입니다. 아주 힘이 들 때 오히려 차분하게 깨닫고 철이 들기도 하고, 반면 너무 안정된 것이 오히려 겁이 난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반전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엎은 사람들이 대부분 성공을 하고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소소한 일상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생각거리에 감탄하게 됩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나 가을 꽃잎 한 장 끼울 갈피가 그만큼 많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눈과 대상을 보듬는 따스한 가슴, 그 곳에서 솟아난 샘물 같은 이야기들이 읽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지요. 구체적으로 할 일이 있고 기다릴 것이 있고 누군가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에는 긍정적 체념이 필요하며 남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예쁘다고 만져주고, 고맙다고 선물 보내고, 보고 싶다고 편지 쓰고, 감사하다고 찾아가고, 안타깝다고 봉사하는 구체적 행동을 통해서 실천하는 동사형 사랑 말입니다.”






*** 위 글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공무원연금’ 10월호 기고문입니다. 고품격 영상미가 돋보이는 장미 사진은 성태현 시인이 찍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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