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저기를 어떻게 넘겨요?”

뱁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부에게 되묻는다.

 

“한 번 도전해 보라니까! 너라면 가능해!”

뱁새의 사부 김중수 프로가 눈을 반짝거리며 진지하게 말한다.

 

2016년 2월21일 오전.

태국 방콕 근처 아티타야 골프장 5번홀 파4.

320미터짜리 좌도그렉(왼쪽으로 휘어지는 홀) 짧은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꼬시는 사부’와 ‘넘어가지 않으려는 제자’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둘이 전지훈련 왔다)

 

내기 중에 하는 말만 아니라면 '제자의 장타에 대한 사부의 절대적 신뢰'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테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스크라치(한국에서 쓰는 골프 속어로 타당 얼마씩 주고 받는 내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로 붙고 있는 상황 아닌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상수 또는 손윗사람의 꼬임에 넘어가 수 없이 많은 볼을 해저드나 OB로 보낸 뱁새 김용준 프로가 누가 부추긴다고 홀딱 넘어갈 리 있겠는가?

 

거리측정기를 꺼내 든 뱁새가 핀까지 거리를 찍어보니 296미터라고 나온다.

거리측정기 중에 두 번째로 인기가 있는 브랜드(R사 건데 혹시 뱁새가 공식 스폰을 받으면 브랜드를 밝히겠다고 한다)여서 상당히 정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야드로 따지면 320야드가 훌쩍 넘는 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어떻게 원 온을 노린담!’

호수를 가로질러야 하고 그 다음에도 중간 키 나무 몇 그루를 넘거나 그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서 다시 그린 사이드 벙커를 운 좋게 피해야만 온이 될 터다.

물론 그것도 거리를 내고 나서 얘기지만.

 

영 확신이 안 서는지 고개를 한참 갸웃거리는 뱁새는 사부에게 더 이상 대꾸는 하지 못하고 속으로 궁시렁거린다.

 

‘그래 타당 100바트(약 3300원)짜리 내기에서 설마 제자 잡자고 없는 얘기 하겠어?

라며 왼손에 쥔 드라이버를 내려다 봤다가도

 

‘아니야! 괜히 물에 빠뜨리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다시 쳐야 해서 망할테니 그냥 하이브리드로 우측 페이워이로 보내고 100미터 안 팎에서 어프러치로 홀을 노리자’

라며 오른손에 쥔 19도 하이브리드에 눈길 주기를 반복하는 뱁새.

 

한참 머뭇거리던 뱁새가 결국 커버를 벗긴 것은 드라이버다.

‘시원하게 한 번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는가 싶은데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폼이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95미터나 되는 직전 홀 파3에서 기가 막힌 우드 티 샷으로 홀 대여섯 발짝에 붙이더니 퍼팅마저 떨궈 버디를 잡아 제자의 쌈짓돈 3백 바트(전지훈련을 가면 몇 백 바트에도 민감해진다. 갖고 간 돈이 바닥나면 부득이 귀국 하거나 비굴하게 빌어야 하니 백 바트가 한국에서 몇 만원 같은 느낌이 든다. 새가슴 뱁새만 이렇게 생각하나?)를 챙겨간 사부는 제자에게는 원 온을 노려보라고 부추기고는 자신은 5번 우드로 가볍게 티샷을 해 페어웨이 한 가운데 볼을 보낸 상황이다.

(쉽게 말해 ‘사부의 부추김=악마의 속삭임' 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전날까지 사흘 연속 사부에게 60타수대를 얻어 맞고(김중수 프로는 전날까지 사흘 동안 각각 68타 66타 68타를 쳤다) 속된 말로 껍데기가 홀딱 벗겨지기 직전인 뱁새이고 보니 평소의 그답지 않게(글쎄다? 소심하다고 소문이 쫙 났던데?)  소심해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뒷 팀이 전 홀 퍼팅 그린에 올라오는 것을 보자 더 이상 늑장을 부릴 수 없다고 판단한 뱁새는 연습 스윙을 두 번 하고 셋업을 하는 데 클로즈 업 해 보니 이를 악물었다.

 

이어서 몸통을 한껏 꼬은 다음 백 스윙 톱에서 약간 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좋은 템포를 유지하더니 왼발에 체중을 먼저 실은 다음 골반이 왼쪽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목표를 향해 열리고 어깨가 그 뒤를 따라 힘차게 돈다.

릴리스 중에는 그립 끝이 비구선을 가리키면서 오른팔이 주욱 펴진다.

그 때까지도 오른발 뒷꿈치는 바닥에서 5센티미터 남짓만 떨어져 있을 뿐 완전히 들리지 않는다.

(어느 틈에 자세히도 봤네!)

 

‘따~앙’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데 묵직한 소리가 나는 T사 드라이버(드라이버 역시 공식 스폰을 받으면 브랜드를 밝혀 홍보를 해 주겠다는 프로다운 각오를 밝히는 뱁새) 에서 나는 소리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여운이 길게 남는다.

 

볼이 빨랫줄을 그리며 날아간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깽짱로이!”

뱁새 캐디가 탄성을 지른다.

태국어로 '굿 샷'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치고도 믿기지 않아 뱁새가 얼떨떨해 하는데

사부의 캐디가 한국어로

“오빠~! 굿 샷!”이라며 엄지를 추어올린다.

(태국에는 한국말을 장난스럽게 하는 캐디가 적지 않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올라갔을라고?”

겸언쩍은 듯 혼잣말을 하며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뱁새.

 

뱁새와 사부는 타고 캐디 두 사람은 뒤에 매달린 채 카트는 페어웨이를 시원하게 달린다.

김중수 프로 볼 근처에서 카트를 멈추고 뱁새는 재빨리 내려 그린 주변을 훑어본다.

볼이 없다.

지나와서 보니 아무리 잘 맞아도 한 방에 그린에 올라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대 반 후회 반'으로 뱁새는 호숫가 러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그곳에 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충 돌아보니 볼이 없다.

 

“물이 튀지는 않았는데. 혹시 벙커에 빠졌나?’

하고 그린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뱁새 눈에 그린 위에 볼이 두 개 보인다.

 

하나는 조금 전 어프러치를 한 사부의 볼일 테다.

 

그럼 다른 하나는?

 

‘설마? 진짜로?’

뱁새 가슴이 콩닥거린다.

 

여느 때 같으면 혹시 실수로 퍼팅 그린을 찢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뱁새가 볼 쪽으로 뛰다시피 총총 걸음을 한다.

 

진!짜!로!

 

뱁새가 한 마크가 분명히 보인다.

홀에서 예닐곱 걸음 떨어져 있는 바로 그 볼에서 말이다.

 

퍼팅 그린에 올라온 사부 김중수 프로도 ‘이글을 얻어 맞을 경우 뱁새에게 얼마를 줘야 할 지’ 이미 속으로 셈을 마쳤을 텐데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굳이 계산을 해 드리자면 이글을 하면 파를 한 사람한테서 9백 바트를 받는다)

 

뱁새는 입이 귀에 걸리고 눈꼬리에는 주름이 한 가득 잡힌 것이 꼭 하회탈 같다.

(하회탈 중에서도 양반탈을 굳이 떠올리는 뱁새. 지금이 어느 시댄데?)

 

얼마나 좋으면 깃대를 빼고 퍼팅을 하는 것도 잊고 캐디에게 휴대전화를 건내 사제가 기념 사진을 찍는다.

둘이서 한 컷.

뱁새 독사진 한 컷.

 

집중한다고 해 보지만 이미 촐싹거리느라승부근성이 외박 나가고 없는 탓인지 뱁새의 이글 퍼팅은 홀 근처에서 힘 없이 멈추고 탭인 버디로 홀 아웃 한다.

 

그래도 좋다고 깡총거리는 뱁새.

 

그럴 만 하다.

며칠 전 전지훈련을 올 때까지 뱁새는 계속 하프 스윙만 했다.

 

백 일 가까이 말이다.

 

에이 과장이 지나치다고?

차라리 뻥이면 좋겠는데 사실이다.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뱁새는 밝힌다.

 

사부가 있는 연습장에서는 풀 스윙을 못하게 해서 처음 몇 주 동안은 진짜 하프 스윙만 했다고 한다.

 

그러다 너무 지루해서 견딜 수 없으면 가끔 다른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서 사부 몰래 풀 스윙을 해봤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사부 아카데미에서 하프 스윙을 하는 시늉을 하면

“너 어디 가서 풀 스윙 하고 왔지?”라고 사부가 귀신 같이 알아챘다나?

(어떻게 아는지 지금도 뱁새는 모를 일이다. 표정이 티가 나나?)

 

명색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사람이 백 일 가까이 하프 스윙만 하니 얼마나 좀이 쑤셨겠는가?

 

시키는 사부나 묵묵히(글쎄다 요령 꽤나 피운 것 같은데?) 따라 하는 제자나 어지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성과가 조금 전에 나타난 것이다.

296미터를 날고 굴러서 올라온 저 뱁새의 볼을 두 사람이 가슴에 담고자 한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는가?
 

(그나저나 그립 끝이 왜 비구선을 가리켜야 하는 지 오늘도 말 안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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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smithkim@gmail.com

 

백일간 하프 스윙만 연습해 스윙이 엄청나게 좋아진 뱁새 김용준 프로가 296미터 짜리 파4 홀에서 원 온을 시켜 홀 예닐곱 발짝에 붙여 놓고 사부 김중수 프로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멀어서 안 보이지만 뱁새 김 프로 입이 귀에 걸렸다. 저 뒤에 보이는 호수를 건너 온 것이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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