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생명을 살린 숭고한 죽음

입력 2012-05-28 21:30 수정 2012-08-22 12:00



아침, 신문의 부음란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합니다. 43세, 심장마비…. 깨알 같은 활자들이 일거에 행간을 무너뜨리고 순식간에 공중으로 흩어집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 가기에는 너무 억울한 나이 아닌가. 부인과 어린 자녀들은 어떡하라고. 멍하니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바보 같은 사람, 이렇게 정직하게 세상에 무릎 꿇고 말다니! 비틀거리며 투덜대고 원망하면서도 끈을 놓지 못하는 나 같은 뻔뻔한 인간도 있는데….

직장 선후배로 함께 일한 짧지 않았던 시간들이 기억의 강물을 거슬러 오릅니다. 훤칠한 키에 선한 얼굴, 꼿꼿한 성품과 깔끔하게 처리하는 일솜씨가 눈에 띄었지요. 지금도 옆에서 “김 선배!” 하고 부르는 것 같은데요. 타계하면서 자신의 신장, 각막, 간, 췌장 등을 기증, 5명의 새 생명을 살려냈다니 더더욱 놀랍습니다. 그의 의미있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 Grieg - Peer Gynt Suite No.1 ‘The Death of Ase’

방황과 일탈을 청춘의 통과 의례로 당연시하던 시절 어떤 예쁜 여자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행동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죽음 앞에서’였는데요. 저자가 반나치 단체 관련 혐의로 18개월간 감방에 갇혀 있을 때 썼던 글들을 모은 옥중 일기지요. 제목만 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힐 것 같지 않아 잔뜩 긴장하고 첫 페이지를 넘겼던 생각이 납니다.

미국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나치 치하의 조국 독일로 돌아가 기독교 목회 활동을 했던 ‘시대의 양심’. 죽음 앞에서 너무도 확고했던 그의 신앙적 면모가 건조하지만 꾸밈없는 문체 속에 녹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구원에 목 말랐던 시절, 선물한 사람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애지중지한 책이었는데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계획이 드러난 후 이감된 강제수용소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남들이 종종 말하기를
감방에서 걸어나오는 내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자에 불과한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갈망하고 병약하고
목졸린 사람처럼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부드러운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좋은 일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에 지쳐 멍한,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들어오기 3주 전, 나치가 무너지기 한 달 전인 45년 4월 8일 증인도, 재판 기록도, 변호인도 없이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교수형이 집행됐지요. 39세라는 짧은 생. 죽기 직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삶의 시작입니다’라고 했다지요. 그의 죽음을 목격한 의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본회퍼 목사가 바닥에 꿇어앉아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모습에 더할 수 없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사형장에서 그는 다시 짧게 기도하고 교수대 계단을 올랐다. 당당하고 침착했다. 몇 초 후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로 50년 가까이 일했지만 하느님의 뜻에 이처럼 전적으로 순복하면서 죽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히틀러를 비판하면서 ‘교회는 바퀴에 깔린 희생자에게 반창고나 붙여주는 일에 만족하지 말고 바퀴 자체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행동주의자. ‘어떤 미친 운전수가 인도 위로 차를 질주한다면 당장 그 차에 뛰어올라 핸들부터 빼앗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여리고 로맨틱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모양입니다. 18세 연하의 약혼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자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쯤 우리 두 사람의 본가에서는 쓸쓸한 날을 맞이하겠네요. 하지만 나는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했지요. 내 주위가 쓸쓸하면 할수록 내가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분명해집니다. 마치 우리의 영혼이 고독하면 할수록 일상의 삶에서 알지 못하던 감각이 발달하는 것과 같지요. 내가 한 순간도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느낀 적이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내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가요? 그것은 외부 환경에 좌우되지 않아요.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나는 날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본회퍼의 지순한 신앙 세계는 영화 ‘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죽음을 축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말년의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세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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