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작별 “아빠, 울어도 괜찮아”

입력 2012-05-25 20:20 수정 2012-05-31 22:04



비지스의 로빈 깁은 지난 4월 첫 클래식 작품 ‘타이타닉 레퀴엠’을 발표한 후 여러 공연을 앞두고 있다가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이 음악은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년을 맞아 자기 아들과 함께 만들었다는데요. 레퀴엠(Requiem)은 원래 가톨릭의 미사 음악으로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이지만 최근엔 교회와 관계 없이 연주회용으로 많이 작곡됩니다. 어쩌면, 결장암 투병 중이던 로빈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감지했을 수도 있겠네요.

생전의 로빈은 한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지스의 엄청난 성공에 대한 어떤 업보(Karmic Price)를 치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지요. 깁 형제의 어머니인 바바라 깁 여사 또한 지인들에게 ‘집안이 저주(Curse)를 받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녀는 현재 91세로 언론의 눈을 피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지요. 어떤 형태의 업보인지, 저주는 또 무슨 의미인지…. 그녀는 왜 은둔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뭔가 공개하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건지요. 여하튼….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며 아이돌 그룹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막내 앤디 깁은 서른이라는 팔팔한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심장 마비였고요. 로빈의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도 같은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지요. 53세. 요즘 평균 수명으로는 단명한 셈인데요. 삼 형제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병사한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평생 노래 부르며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졌으니 모두 좋은 곳으로 갔겠지요. 팝 역사상 최고의 하모니 그룹을 완전 해체시킨 ‘생명의 인수분해’ 앞에서 새삼 ‘웰 다잉(Well-Dying, 품위 있는 죽음)’을 생각해봅니다.

“주님, 제 끝을 알려주소서.
제가 살 날이 얼마인지 알려주소서.
그러면 저 자신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게 되리이다.”
- 「구약」 시편 39장 5절

매일 유언장을 작성한다는 가톨릭 신부들처럼 ‘내일’로부터 자유롭게, 언젠가는 ‘무위로 돌아가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슬픔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노장(老莊)으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죽음’에 대처하는 기술을 경험으로 말하는 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몇 년 전 신간 리뷰 했던 글들인데요. 그대로 옮깁니다.

# 아빠,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미카엘 마르텐셴 지음/ 김진아 옮김/ 21세기북스(2007)

절망은 가끔 예기치 않게 우리를 찾아온다. 어느 날 꽃잎으로 왔다가 눈보라처럼 사라진 사랑 때문에 좌절하며 고단한 세상사의 뒷 켠에 똬리를 튼 허무의 그림자에 상처받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경우는 자녀가 아플 때다. 특히 불치병이라는 선고와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는 의사의 최후 통첩을 받은 부모의 가슴엔 대못이 박히고 하늘이 무너진다.

이 책은 백혈병에 걸린 딸의 짧은 생을 그린 투병기. 아빠의 눈에 비친 주인공 소피아의 힘겨운 투쟁, 엄마의 절절한 모성애와 세 살 터울인 언니 사라의 사랑 등 1460일 간의 좌절과 희망을 담았다. 생후 9개월에서 네 살까지의 여정.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첩첩이 눈물겹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소피아는 불같이 화를 냈다. 시장에 가서는 이것저것 사달라며 보채기 일쑤였고, 안 된다고 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온 가게가 떠나갈 듯 악을 썼다. 우리는 언제나 그 애에게 KO패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수술 후 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에 줄담배를 피우는 아빠. ‘병이란 놈은 야생 동물처럼 뒤에서 공격하고 가족과 인생을 망쳐놓는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하나. 정말 생지옥’이라며 절망한다. 하지만 이내 ‘애 엄마는 어떻겠어? 나라도 힘을 내야지’ 하며 마음을 돌려세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수술과 재실패. 마침내 가족들은 ‘소피아는 우리 소유가 아니다’라는 작지만 위대한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아름다운 소풍’을 끝낸 아이와의 ‘굿바이’.

“아빠,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 외 지음/ 심은우 옮김/ 살림출판사(2008)

죽음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영원한 불청객. 살아 있는 자의 주위를 맴돌며 결정적 순간을 노리는 검은 염탐꾼. 한 생명의 목줄을 잡았다하면 휘몰아치듯 이승의 문지방을 넘어가기도 하고 몇 달 혹은 몇 년이란 길지 않은 유예 기간을 두고 괴롭힐 때도 있다. 불치의 나락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마지막 사투는 대개가 속절 없지만 운명의 거대한 힘을 인정하고 최후를 준비하는 의연한 모습들도 자주 목격된다.

‘마지막 강의’의 저자인 랜디 포시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47세.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컴퓨터 공학 교수. 한 아름다운 여인의 남편이자 여섯 살, 세 살, 18개월 된 세 아이의 아빠.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어느 누구보다 당당한 가장. 작년 9월 있었던 고별 강연으로 방청석 사람들을 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천만 명의 눈시울을 적신 남자다.


 ▲ 랜디 포시 가족.

“2006년 여름, 윗배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얼마 후 황달이 찾아왔고 의사들은 간염을 의심했다. 하지만 결과는 췌장암. 환자의 절반이 발병 6개월 내에 죽고 96퍼센트가 5년을 넘기지 못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주치의는 종양은 물론 담낭과 췌장의 3분의 1, 위의 3분의 1 그리고 소장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을 감행했다.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줄었고 걷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치료 효과가 있었는지 2007년 1월엔 종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힘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2007년 8월의 정기검진 결과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꺾을 정도였다.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 이제부터는 항암 치료가 아닌 생명 연장을 위한 화학요법만이 대안이라는 얘기였다. 부부는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잠에서 깨어나 같이 울고, 다시 잠을 청하고, 또 깨어나 울었다. 하지만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는 이렇게 태어났다.

그는 마지막 강의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했다. 인생의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법, 다른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 방법, 모든 순간을 값지게 사는 법을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세요. 항상 준비하세요. 사과하세요.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즐기세요’ 등. 모든 것을 초월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용기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아이들과의 추억 만들기에 바쁜 랜디 포시. 그에게 진정 기적은 없는 걸까.

*** 랜디 포시는 2008년 7월 결국 사망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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