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

                                      두목


멀리 차가운 산 비스듬한 돌길 오르는데

흰 구름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드문드문.

수레 멈추고 앉아 늦가을 단풍을 보노라니

서리 맞은 나뭇잎이 이월 꽃보다 붉구나.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風林晩 霜葉紅於二月花.

단풍이 물든 늦가을 산의 정취를 노래한 시인데 《당시선(唐詩選)》에 실려 있다. 백운(白雲·흰 구름)과 상엽(霜葉·서리 맞은 나뭇잎)을 대비시킨 것도 아름답지만 단풍색을 이월화(二月化·봄꽃)보다 붉다고 묘사한 대목이 참으로 놀랍다. 여기서 2월은 음력이니 한창 봄의 시작이다.

이토록 ‘화려한 쓸쓸함’을 묘사한 시인은 만당(晩唐) 전기를 주름잡은 두목(杜牧·803~853)이다. 그는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꼽혔으며, 작풍이 두보(杜甫)와 비슷하다 해서 소두(小杜)로도 불렸다.

그의 자는 목지(牧之)다. ‘춘향가’에서 이 도령을 묘사하는 부분에 ‘풍채는 두목지(杜牧之)’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두목이다. 김만중 소설 ‘구운몽’에도 ‘나이는 십육세요, 그 풍채는 두목지요…’하는 대목이 보인다.

그만큼 그의 용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그는 수많은 여인의 마음을 울리곤 했다. 낙양 자사로 재직할 당시 술에 취해 마차를 타고 거리를 지날 때 기생들이 귤을 던져 마차를 가득 채웠다는 유명한 ‘귤만거(橘滿車)’의 고사도 그래서 나왔다.

26세에 등과한 그는 벼슬이 높았지만 세사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23세 때 이미 ‘아방궁부(阿房宮賦)’를 써서는 진시황의 고사에 빗대어 경종이 화려한 궁전을 짓고 수많은 후궁을 둔 것을 풍자했다. 한편으로는 정치와 병법을 연구하면서 당나라의 쇠운을 만회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는 말의 수식보다 내용을 중시하고 역사적인 소재를 빌려 세속을 풍자한 작품을 많이 썼다. 산문에도 뛰어났지만 시에 더 출중해서 칠언절구를 잘했다.
중·고교 한문 교과서에 실린 이 시 ‘산행(山行)’도 뛰어난 칠언절구다. 한산(寒山)은 늦가을의 싸늘한 산을 뜻한다. 만(晩)은 저녁 시간이라기보다는 시기상 늦은 때를 의미한다. 이렇게 쓸쓸한 경치를 멀리서 조망하며 오른 뒤 인가가 드문드문 보이는 곳을 내려다보다가 서리 맞은 단풍잎 색깔을 붉은 봄꽃과 대비시키는 과정이 신선하다.

그는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단풍잎을 보면서 한때 푸르렀다가 스러지는 인생 여정을 돌아봤을지 모른다. 물론 여기까지만이라면 보통 시정과 다를 게 없다. 그의 눈과 영감이 특별한 것은 그 황혼의 쇠락한 잎이 청춘보다 더 붉고 아름답다는 데에 있다.

젊은 날의 숱한 어려움을 딛고 지나온 삶의 노정이 그 배면에 펼쳐져 있었을까. 쓸쓸하면서도 화려하고 조락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피어나는 가을 단풍의 묘미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뒤편 북악산의 단풍을 화제로 삼았다. 그러자 장 주석이 “참으로 곱다”며 ‘서리 맞은 나뭇잎이 이월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라는 구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요즘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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