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무섬 마을, 부석사의 봄

입력 2012-05-10 18:53 수정 2012-08-22 13:50



소설가 윤대녕은 작품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 앞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삼 년 만에 다시 소설집을 낸다. 각별히 고독을 챙기며 살았던 지난 해에 여러 편의 중,단편을 쓸 수 있었다. 자정에 작업실에서 퇴근할 때면 막사발에 냉수를 받아놓고 아침에 출근하면 그것을 마셨다. 하루하루 그 일을 되풀이하면서 내가 과연 삶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나를 산짐승처럼 틈틈이 살폈다. 길을 잃으면 안 되겠기에 보다 숨을 낮추고 되도록 말을 꺼렸다. 그렇게 생의 한가운데를 어두운 숲처럼 더듬더듬 관통하면서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작가처럼 생의 한가운데를 제대로 통과하고 있는지, 행여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꽤 오래 됐지요. 침침해진 눈을 비벼야 초점이 잡히는 인생의 어두운 방이 검은 숲일 수 있고 안개 뿌연 강변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 지가. 그렇다면 나를 그곳으로 견인하는 ‘모든 어찌할 수 없음’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오늘의 삶과 문학 그리고 사랑…. 만만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역시 그리움의 문제인가요. 나 또한 ‘지금 길을 잃으면 안 되겠기에’ 맑은 두 눈으로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첫 방문지는 경남 창녕의 우포늪. 1998년 람사르(Ramsar) 협약에 등록된 70여만 평의 습지로서 1억4천만 년 전에 형성됐다고 합니다. 시베리아와 호주를 오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라지요. 왜가리, 백로, 따오기가 날고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가시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특히 물안개 자옥이 피어나는 새벽 경치가 일품이라는데요. 낮에 도착해 그 절경은 놓쳤지만 전망대 망원경에 포착된 살아 숨쉬는 원시 생명력의 기운을 받아 그럭저럭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달이 중천에 걸리자 경북 영주의 무섬 문화촌으로 이동했습니다.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과 서천이 만나 휘감아도는 물도리동 마을이지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로서 다수의 고택(古宅)이 보존돼 있는 이곳은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육지 속의 섬’입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영주시 문수면 수도(水島)리인데요. ‘수도’의 한글인 ‘물섬’에서 ‘ㄹ’이 탈락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합니다. 급전을 띄우고 자정이 다 된 늦은 시간에 도착한 일행을 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 그리 좋았는지 모두 어린 아이들처럼 떠들고 마시고 노래했지요.

다음 날 아침 물가에 나가보니 확 트인 시야가 장관이더군요. 바닥이 보이는 투명한 물줄기, 곱디 고운 모래섬, 바깥 마을을 이어주는 낭만적인 S라인의 외나무 다리, 조붓한 오솔길을 걷고 난 후의 막걸리 한 잔…. 그대로 그렇게 눌러앉고 싶었습니다. 경북 영양 출신인 시인 조지훈이 이곳의 김난희라는 여자와 결혼했다지요. 여인에 반하고 경치에 반해 처가(김뇌진 가옥) 마을을 무대로 한 ‘별리’라는 시까지 남겼습니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직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메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 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님아…












정겨움도 만나면 이별이라. 짧았던 이틀 밤을 보내고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영주 시내를 거쳐 소백산의 마구령으로 향했습니다. 험하디 험한 갈지자 도로. 포장이 덜 된 것은 물론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영락없이 멈춰서야 할 만큼 폭이 좁았습니다. 옛날 ‘길 위에서 들꽃 꺾어 혼인하고 주막에서 아이 낳던’ 가난한 장사꾼들이 다니던 곳이지요. 구름도 쉬어간다는 해발 820m 높은 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내친 김에 강원도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월군. 시선(詩仙) 김삿갓 묘역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겨우 알 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말년의 김삿갓이 샘물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며 읊었다는 시인데요. 무상하기 그지없습니다. 다행히 남긴 글과 이름을 기리는 후대 사람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가난하지만 비루하지 않았고 쓸쓸했으나 낙천적이었던 그의 삶을 위로해주는 듯합니다. 주머니는 비었는데 술은 마셔야겠고, 갈수록 주량이 느는 당면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비법(?)이 매우 궁금하네요. ㅋㅋ. 고개를 드니 백발 같은 흰 구름 한 조각이 떠날 줄 모르고 묘역 위를 배회합니다. “인연이 닿아 훗날 다시 오게 되면 내 술 한 잔 올리지요.”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갑니다. 푯말만 보고 지나쳤던 부석사 경내로 진입합니다. 교과서에 나왔던가요. 우리 나라 최고(最古) 목조 건물 중 하나인 ‘無量壽殿(무량수전)’의 빛바랜 글씨체가 눈에 익숙합니다. 국보와 보물이 널렸더군요. 전문가가 아니라면 굳이 절의 창건 연대나 탑 이름 같은 지식으로 문화재를 이해하려들기보다는 느낌이나 감정으로 즐기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학자의 논리가 아닌 예술적 감성이 더 직관적이고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테니까요. 절터가 참 절묘했습니다. 가까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웬만한 산수화 ‘저리 가라’ 할 정도였습니다.

3박 4일이 짧았던 봄 나들이. 역시 ‘그리움’의 발길이었네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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