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당신' 어디로 가고 있나요

입력 2012-01-11 17:56 수정 2013-09-08 12:21



유럽의 옛 성당이나 수도원의 위치를 보면 길이 끊긴 ‘막다른 곳’이 많습니다. 산의 정상에 우뚝 솟아 있기도 하고 깎아지른 벼랑에 아슬아슬 걸쳐 있기도 합니다. 주위가 조용해야 수도 생활에 유리하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반영되었겠지요. 더불어 이러한 ‘터 잡기’에는 오묘한 공간적, 종교적 상징이 숨어 있는데요. 인간의 영혼은 탈출구가 안 보이는 현실의 한계와 절망의 끝에 직면해야 진정 신의 뜻을 이해하고 기도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게지요. 신은 그때 ‘길’을 제시하고요.

그리스 감독인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가운데 일명 ‘길 3부작’이 있습니다. ‘안개 속의 풍경’ ‘영원과 하루’ 그리고 ‘율리시스의 시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나선 오누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소년과 여행하는 노시인 이야기 등 쓸쓸하면서도 사회 의식이 엿보이는 로드 무비들입니다. 극단적인 원거리 숏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은 영화 세계를 시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거론할 때 자신의 이름이 빠지면 섭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있지요. 작곡가인  엘레니 카라인드로(Eleni Karaindrou, 사진). 앙겔로풀로스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 대부분의 OST를 맡아온 파트너인데요. 단순히 스토리를 떠받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일개 파트로 기능하는 음악'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 전체를 리드하는 곡들을 씁니다. 완성도 높은 '영화 음악의 문법'을 환히 꿰뚫는 안목을 지닌 듯 싶네요.








1946년 그리스 중부의 작은 산간 마을에서 태어난 카라인드로. 그래서인지 자연 풍광을 음악으로 묘사하는 재주가 뛰어나고 작업 방식도 독특합니다. 영화를 다 찍은 후 화면을 보면서 곡을 만드는 일반적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제작이 시작될 때 이미 기본 테마를 완성시킵니다. 어떤 작품은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모든 음악을 끝내버리기도 합니다. '울부짖는 초원'이 대표적 경우이지요.

비잔틴 성가와 발칸 민속 음악풍의 슬프고도 서정성 넘치는 곡조는 영상의 짙은 페이소스에 품격을 부여하고요.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같은 목관 악기가 주조를 이룬 메인 테마 등 특유의 신비한 음악 언어는 우리 인생의 '길'을 오래 응시하게 만듭니다. '월드 뮤직'이 단순한 '이국 취향'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수난과 저항을 겪어온 세계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습니다. 그 매혹적 재능과 감수성은 어디서 터득한 걸까요.

“비와 바람이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던 소리, 시냇물의 흐름, 이웃들의 노래, 하얀 눈의 침묵, 산간 마을 광장에서 울려오던 플룻과 클라리넷 연주, 아낙네들의 합창, 탈곡기 소리, 교회음악 속에 들려오던 비잔틴 멜로디, 어둠 속에서 수없이 빛나던 별들의 숨소리가 내 음악의 본향입니다.” - 엘레니 카라인드로






▲ 영원과 하루








▲ 울부짖는 초원






▲ 안개 속의 풍경






▲ 학의 멈춰진 발걸음






▲ 율리시스의 시선






▲ 트로이 여인들






▲ Dust of Time






▲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 실황 앨범 ‘뿌리뽑힌 자들을 위한 비가’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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