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자녀의 스트레스, 당신은 아시나요

입력 2011-11-29 17:27 수정 2011-12-06 11:02



# 어머니 1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딸이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고나서부터 먹었다 하면 체했다. 가슴에 커다란 덩어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조금만 먹지 않으면 또 배가 고파져 먹고 또 체하고…. 대학 입시라는 것이 뭐라고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 엄마는 위대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엄마가 될 자격이 없나 보다. 아이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화가 치밀어 올라 고함을 질렀다. 그래. 네가 공부 열심히 안 하고 딴 짓할 때 알아봤다고.

그러나, 언제나 (타인과) 서로 도우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던 나는, 나만 바라보는 어리석은 엄마가 되어 내 자식만 잘되길 바랐던 것 같아 정말 부끄럽다.”(주부 ○○○)

# 어머니 2

“(중3인 큰아이에게) 하루 8시간씩 자는 잠 두 시간만 줄이라고, 아직 능력의 절반도 안 쏟고 있다고 말하는 나는 괜찮은 부모인 걸까. (…) 멀쩡한 대학 나와 좋을 것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학벌 문제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내 자식 문제가 되면 모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 (아이들의 고통을) 사회의 구조적 문제 탓이라고 비판하면서 내 마음 속 작은 욕심이 어느 순간 ‘괴물’이 되어, 구조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엔 눈 감는다.”(언론인 ○○○)

# 어머니 3

“며칠 전 언니 딸아이 입시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던 미혼인 ○○언니가 ‘내가 보니까 부모들은 자식 입시 앞에서는 모두 속물이더라’ 하고 한 마디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작년 입시때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들아이는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고2때 첫 사랑을 한데다가 그간 집안을 일으키느라 밖으로만 돌던 나의 손길이 미처 아이에게 미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아주 힘든 순간이 찾아오자 아이에게 미치지 못한 구멍 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온순하던 아이가 무섭게 대드는가 하면 새벽 2시에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도서관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아이와 마음을 맞추어 갔다. 몇 차례 불꽃 튀는 부딪힘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원서를 쓰는 날이 오고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시작되었다. (…) 몇 군데 대학을 선발하고 거의 정리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어머니, 글 좀 쓰시지요?’ 하고 물으셨다. 글 다듬는 일을 20여 년 하고 글에 대한 사모가 깊으면서도 글 앞에선 작아지곤 하는 나였다. 그러나 이 날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너무도 용감하게 ‘네, 글 좀 씁니다’ 하고 바로 대답하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내가 글을 좀 쓰면 아이에게 뭔가 유리한 조건이 돌아오나 해서였다.

그러나 선생님의 다음 말씀은 ‘애들 졸업할 때 <학급 문집>을 만들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보내는 편지>를 좀 써 주시지요’ 하는 거였다. 나는 힘이 호로롱 빠지면서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다. 자식 앞에서 그렇게도 속물이 되고 균형감각을 잃다니! (…) 아이의 <학급 문집>에 나는 솔직한 고백을 했다. 인생의 여러 관문 중 하나인 대학 입시 앞에서 너희들보다 더 많이 휘청거렸다고, 변화 앞에서 갈등했다고.”(시인 ○○○)

위 세 여인의 자녀를 위한 마음은 어머니로서 매우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이기적 발심을 ‘어리석고, 모순이며, 균형 감각을 잃었다’고 용기 있게 진술함으로써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웁니다.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을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입시 제도를 어떻게 하든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합니다.

오늘은 2012학년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하는 날. 전국 1등을 강요한 엄마를 살해한 고3생의 구속이 불과 며칠 전 얘긴데요. ‘빗나간 부모의 교육열’과 ‘출구 없는 자녀의 스트레스’ 악순환이 언제까지 되풀이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지금 도시를 완전 장악해 시계가 제로인 저 안개의 장막이 어느 때 걷힐지 모르는 것처럼.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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